한손엔 낫, 한손엔 마이크… 넘치는 끼로 세상을 즐겁게
한손엔 낫, 한손엔 마이크… 넘치는 끼로 세상을 즐겁게
  • 김기원
  • 승인 2014.04.16 2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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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농사꾼 도태환·황무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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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이자 예능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도태환(오른쪽)·황무지씨가 복사꽃 아래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산비탈 복숭아 밭에 봄바람이 쉬어가니 진분홍 복사꽃잎이 꽃비처럼 흩날렸다. 때마침 복사꽃 사이로 두 사내의 노래 소리가 기타 선율을 따라 흐르니, 도원명의 무릉도원이 꿈결인듯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더불어 황홀감이 벅차게 올라왔다. 
  
“복사꽃이 한창이라 장관”이라며 “때 맞춰 잘 왔다”는 경북 경산시 자인면 동부 2리에 있는 복숭 밭의 주인은 농부 도태환(68) 씨다. 3년 전 직장을 은퇴 한 후 선친 대부터 지켜온 밭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

도 씨와 함께 기타 치며 노래한 남자는 경북 경산시 하양읍 서사리에서 소를 키우며 포도 농사를 짓고 있는 또 한 명의 농부 황무지(48) 씨다. 황 씨 또한 가업인 농사 일을 물려받아 20여 년째 축산업과 농업을 병행하고 있는 베테랑 농군이다.

이 두 남자가 이날 복사꽃 아래서 입 모아 노래한 사연은 두 가지다. 도시 인근 시골에서 농부로 살아가면서, 주체할 수 없는 예능 끼도 유감없이 발휘하며 살아가는 겸업 문화인이라는 점이다. 
   
직장 퇴직 후 고향서 복숭아 농사
노래·개그·MC 등 만능 예능인 활약
노인대학·요양병원서 다양한 봉사
1톤 트럭에 어르신 태우고 이동공연도

◇영원한 청춘 도태환

함께 한 두 시간 남짓.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유쾌·상쾌·통쾌 바이러스는 도무지 지칠 줄을 몰랐다. 그야말로 에너자이저 급으로 포복절도할 개그와 풍자가 쉼 없이 쏟아졌다. 시쳇말로 ‘저 똘끼로 어떻게 농부로 살까’하는 걱정마저 들 정도로 끼와 열정이 그의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는 가수, 사회자, 개그맨을 넘나들며 50여년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대구경북의 신바람 공연장을 누벼 온 영원한 청춘 도태환 씨다.

도 씨는 대구에 있는 모 백화점 영업부에서 30여년을 근무하고 3년 전 퇴직해 본격적인 농부의 길을 걷고 있다. 워낙 성실한 성격탓에 정년퇴직을 2년 초과 근무해 64세라는 늦은 나이에 고향에 안착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 할 때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여기서 출퇴근 했다. 내가 장손이기 때문에 고향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농사를 제대로 짓지는 못했다. 직장생활과 예능 일을 병행하는 것만도 벅찼다. 3년 전 퇴직하면서 본격적으로 농부의 삶을 살고 있다.”

직장인으로 살면서도, 고향에 정착해 농부의 삶을 살면서도 그가 놓지 못한 것이 있다면 예능인의 삶이다. 그는 노래면 노래, 개그면 개그, MC면 MC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 예능인이다. 하양문화예술단과 대구문화예술단 소속으로 지역의 각종 축제 사회나 실버장수노인대학과 요양병원 등에서의 노래와 성대모사 공연 등 다양한 무대에서 끼와 열정을 발산해 오고 있다. 생활인으로, 집안의 장손으로 짊어져야 했던 직장인과 농부의 길이 의무감에 의한 환경적 선택이었다면, 예능인은 그가 평생 꿈꿔왔던 로망이자 천직이었다.

- 예능적인 끼는 언제부터 발견했나.

“군에 가기 전에 명절에 동네에서 가요 콩쿨대회를 열었는데, 당시 사회자가 대구에서 왔다. 한데 어느 해에 사회자가 사정이 생겨 올수 없게 됐다. 그때 평소에 콩쿨대회에서 보여주었던 내 끼를 지켜본 관계자가 내게 사회를 보게 됐다.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떨지도 않고 사람들을 웃겨가며 사회를 잘 봤던 것 같다.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겼다.”

- 꿈은 영화배우였다고 들었다.

“영화배우를 하기 위해 서울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양반과 상놈을 엄격하게 따지던 집안의 가풍과 조부의 반대가 완고했다. 그렇다고 조부님을 거스르는 불효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배우에 대한 꿈은 버릴 수가 없어 ‘영화배우 강의론’이라는 책을 어렵게 구해서 보며 혼자 공부하기도 했다.”

- 후회는 없나.

“그때 내가 서울을 갔더라면 지금 영화배우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 영화배우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서울 갔으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지난 50여 년간 대구경북을 누비며 예능인으로 끼 풀이를 해 왔기 때문에 비록 영화배우는 되지 못했어도 아쉬움은 없다.”

-예능인으로서의 본격적인 시작은 언제부터였나.

“월남 파병 군인들이 부산을 떠나기 전 환송식이나 돌아오는 환영식에서 사회자로 진행을 봤다. 이 경험이 계속 이어져 군에 가서도 군인 대상의 위문공연에서 노래와 사회를 봤다. 군 제대 후는 먹고 살기 위해 취직을 했지만, 직장 생활 하면서도 계속해서 무대에 섰다.”

- 직장생활 하면서 예능 활동 시간 내는 것 쉽지 않았을 터인데.

“우리 장모님이 위독하거나 돌아가신 것이 50번은 넘는다. 직장에 장모님이나 가족들 핑계를 대고 공연을 나갔기 때문이다. 직장 상사가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장모님을 여러 번 파는게 가능했다.”

특히 도 씨 끼의 결정판은 성대모사다. 그의 전직 대통령 성대모사는 대구경북 뿐만 아니라 서울에까지 명성이 자자해, 지난해 KBS에 방영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조명한 역사 다큐멘터리 ‘다큐극장’에 박정희 전 대통령 목소리의 더빙 주인공이 돼 전국적인 전파를 타기도 했다.

- 성대모사를 잘하는 노하우가 있나.

“인물의 특징을 잘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전직 대통령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김대중 대통령은 다리를 살짝 절어야 하고, 말하면서 웃으면 안 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혀 짧은 특유의 발음을 잘 살려야 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눈을 반짝반짝 뜨고 말을 딱딱 자르며 총기 있게 해야 한다. 또 노무현 대통령은 ‘맞습니다. 맞고요’ 등의 특유의 추임새를 살려야 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코맹맹이 소리를 맛깔나게 내야 한다.”

퇴직 한 지금 그의 끼는 시골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로도 활용되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그의 부인이 자인시장에서 미용실을 운영해 오고 있는데, 그가 퇴직하면서 미용실을 찾는 손님들을 태워 나르는 운전수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머리하러 자인시장까지 나오려면 길이 멀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장날에 겸사겸사 머리하러 오시기 때문에 짐이 많다. 처음에는 이 분들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차 운행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일이 됐다. 이 때문에 손님도 더 많아 지고, 다들 좋아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다.”

그의 1톤 화물 트럭은 장날이면 이동하는 공연장으로 떠들석하다. 이동 내내 그의 만담이나 옛 이야기들이 쉼없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르신들 재미있으라고 재미난 말을 많이 했다. 그러다 내가 말을 너무 하나 하는 걱정도 됐는데 어른신들이 내가 말을 안 하면 공짜로 차 태워주는데 기름 값이 많이 들어서 저러나 싶은 생각에 오히려 부담이 된다고 말씀해 주셔서 지금은 걱정 없이 이동 공연을 펼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부친 가업 잇기 위해 축산학과 전공
낮엔 웃음치료사, 밤엔 가수로 활동
축사서 기타치고 노래…소들 순해져
매년 농촌체험객 초청해 음악회 열어

◇웃음전도사 황무지

이 사내의 하루는 세 얼굴이 교차한다. 낮에는 대구경북 연수원과 대경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웃음으로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웃음치료사의 얼굴로, 밤에는 김광석거리에서 통기타로 노래하는 가수의 얼굴로 살아간다. 하지만 이 사내에게는 낮 동안의 웃음치료사, 저녁의 통키타 가수라는 두 얼굴 이전에 또 하나의 얼굴이 존재하는데, 축산인과 농부의 얼굴이 그것이다. 아침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자신이 키우고 있는 30마리의 소들에게 먹이를 주고 분뇨를 치우고 포도밭을 소독한다. 그는 남들보다 하루를 서너 배는 넓게 사는 예능인 농부 황무지 씨다.

그가 투 잡(Two-Jobs) 쓰리 잡(Three jobs)의 주인공인 된 데는 현실과 꿈 사이의 타협이라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대학을 축산학과로 진학하고 부친과 함께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인으로서의 의무감에 충실하면서도, 가슴 속 주체할 수 없는 끼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 여러 선택들이었다.

- 예능 끼는 언제부터 발동했나.

“고등학교 때 요들송이 좋아서 혼자 독학으로 배웠다. 이후 대학에서 ‘알핀로제 요들컬럽’이라는 동아리에 들어가 통키타와 요들송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당시 요들송이 내 마음을 흔들었고, 그 흔들림을 지나가는 바람에 그치게 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 데로 음악에 몸을 실었다.”

- 전공은 축산이라고 들었다.

“축산과를 나와 가업을 이으라는 아버지의 바람이 있으셨다. 연예계의 꿈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뜻도 거스를 수 없었다.”

- 웃음치료사는 생소하다. 어떻게 시작됐나.

“신혼 때 차가운 방바닥에서 잠을 잔 이후 안면 근육이 마비되는 와사풍이 왔다. 무슨 방법을 다 써도 낫지 않았는데 우연히 TV에서 황수관 박사의 ‘신바람 웃음건강법’을 보고 저거다 싶어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웃음건강법 실행 4주 만에 마비된 근육이 완전히 돌아왔다. 웃음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를 온몸으로 체득한 후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이 좋은 것을 다른 사람한테도 전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웃음치료 강사로 나서게 됐다.”

- ‘웃음치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어린이는 하루에 300번 웃는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하루 15회도 웃지 않는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크게 웃는것은 보약 10첩보다 낫다’고 동의보감에서도 웃음의 치유력을 언급했다. 웃음치료는 건강하게 웃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함께 웃어보는 것이다. ‘하해히호후’를 ‘웃음의 마중물’로 여러형태로 변형해 웃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를 소화, 치매, 다이어트, 혈액순환 등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 노래 실력도 프로급이라고 들었다.

“김광석 거리에서 매주 금요일에 노래를 부른다. 영천별빛축제나 영주풍기인삼축제 등의 대구경북지역 축제에서도 공연을 한다. 가수의 꿈은 어릴 적부터 간직해왔던 것이었고, 기회가 되면 계속할 생각이다.”

- 노래와 웃음치료 상관관계가 많아 보인다.

“웃음치료 수업에 노래가 유용하게 활용된다. 웃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부터 활짝 열어야 하는데 이 때 노래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내가 웃음치료사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도 노래가 크게 작용한 이유가 크다.”

- 농사와 노래도 상관관계가 있나.

“축사에서 기타 치며 노래연습을 했는데 반응하는 소들이 있었다. 이후 노래와 동물과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생겨 노래를 들려주는 팀과 들려주지 않는 팀으로 나눠 실험을 해봤다. 그 결과 노래를 들려준 소들이 훨씬 순해지고 성장도 빨랐다. 농축산시험연구소에 내 경험을 이야기하고 이유를 물었더니 소들이 노래를 들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해서 성장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해 주었다. 노래의 효과를 알고 나서 포도밭에도 가끔 노래를 들려준다. 음악은 모든 존재를 행복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 음악을 매개로 농촌과 도시를 잇는 가교역할도 한다고 들었다.

“매년 신청자를 받아 포도따기 체험도 하고 음악회도 즐기는 ‘포도밭음악회’를 연다. 7월과 8월 매주 50여명이 참여해, 한해 동안 400여명의 체험객이 다녀간다. 주로 가족 단위로 오시는데 추억도 만들고 색다른 음악회를 즐긴다며 호응을 보내주고 있다.”

- 일석이조인가.

“그렇다. 내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농부로 사니 효도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노래도 부를 수 있으니 좋고, 체험객들에게는 색다른 문화체험을 선사하니 또 좋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닮은 꼴 두 남자의 우정

도 씨는 60대 후반, 황 씨는 40대 후반이다. 20살이라는 나이차가 둘 사이에 존재하지만 이 둘은 경산과 하양이라는 가까운 거리에서 농사일과 무대 일을 서로 의논하며 우정을 과시하며 살아가고 있다. 60대의 도 씨가 젊은 청춘 만담꾼 역할을 자처한다면, 40대의 황 씨는 오히려 묵직한 호흡으로 소소한 일들을 알뜰살뜰 챙기는 타입이다.

“요즘은 수명이 길어져 인생은 칠십부터라고 한다. 나야말로 이제부터 청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자연 속에서 복숭 키우며, 내가 하고 싶은 예능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고, 또 황무지 같은 든든한 동생이 곁에 있으니 나보다 복 많은 사내가 또 있겠는가.” (도태환)

“남들에게 웃음과 노래를 통해 마음의 건강을 선사하고, 또 좋은 먹거리를 직접 생산해서 몸의 건강도 나눠주니 나 또한 복 많은 사내가 아니겠는가. 앞으로도 도태환 형님과 함께 오래토록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유쾌한 삶을 살고 싶다.” (황무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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