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여름밤은
일찍이 등불을 끄고
창가에나 조용히 누워있는 것이 멋이 있네.
한밤내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에
흐려진 가슴을 씻기우고 누워 있으면
꽃밭에 쭈그린 청개구리보다 오히려
내 마음은 화려하이.
아침마다 서울을 가자면
저 먼 삼정리에 이르는 길
혹은 더 먼 마을의 들길까지에도
수북히 수북히 괴어 있던
그 허어연 들국화들도 지금쯤은
비를 맞겠지.
지금의 내 눈, 내 귀만큼이나
어둠에 예민해져
그 허어연 목덜미로 비를 맞겠지.
비가 오는 한여름 밤은
일찍이 어린것들 달래어 잠재우고
창가에나 조용히 누워있는 것이 멋이네.
(이하 생략)
▷전남 해남 출생. 중앙대학교 졸업. 대학 재학중 `영도’ 동인으로 활동, 1956년『문학예술』추천으로 등단. 박희진· 박재삼 등과「60년대 사화집」동인으로 활동. 현대문학상(1961)수상. 서울신문 문화부 차장 역임. 시집「춘하추동」등이 있다.
이 시인은 스스로 자신의 시작(詩作)을 외로운 집착으로 설명한바 있다. `비가 오는 여름밤’은 가난한 시인· 선비의 궁핍한 생활 속에서나마 소중한 자연의 한 형상에서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서정성을 잘 풀어헤치고 있다.
이일기(시인·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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