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수 닭들의 전쟁
<팔공시론> 수 닭들의 전쟁
  • 승인 2009.06.2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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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암탉을 사이에 두고 다투는 수탉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싸움의 양상도 다양하고, 결과 또한 예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수많은 복병들이 잠복해 있다.

어느 날 두 마리의 수탉이 한 마리의 암탉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이 두 마리의 수탉은 자기가 이기면 암탉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웠다. 그러나 둘 다 만만치 않았다. 결국 두 마리 모두 치명상을 입고 죽고 말았다. 암탉을 차지하고자 한 꿈은 죽음으로 끝나 버렸다.

다음 날 또 다른 두 마리의 수탉이 한 마리의 암탉을 두고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역량이 서로 비슷한 호각지세(互角之勢)로 오랫동안 승부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승자가 나타나지 않자, 기다리다 지쳐버린 암탉은 다른 수탉에게 가 버렸다.

얼마 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또 다른 수탉 두 마리가 이긴 쪽이 암탉을 차지한다는 약속 아래 싸움을 시작했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 끝에 한 쪽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애초부터 암탉은 이 두 마리 중 어느 쪽에도 흥미가 없었다. 이 암탉은 다른 수탉에게 가 버렸다.

암탉을 사이에 둔 수탉들의 전쟁은 그 이후에도 계속된다. 이번에도 수탉 두 마리가 암탉을 사이에 두고 싸우기 시작했다. 수탉들 간의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암탉은 이 둘 모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수탉 두 마리가 서로 거친 말로 욕설을 하며 상대에게 사정없이 상처를 입히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 수탉에 대한 흥미를 아예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어느 수탉도 이 암탉을 차지하지 못했다. 닭들의 전쟁에는 암탉을 사이에 둔 수탉들의 전쟁뿐만 아니라 수탉을 사이에 둔 암탉들의 전쟁도 있다.

이번에는 암탉 두 마리가 수탉 한 마리를 두고 싸움에 들어갔다. 암탉들의 전쟁도 수탉들의 전쟁만큼 치열했다. 욕설은 물론이고 서로 격렬하게 싸우느라 둘 다 온 몸의 깃털이 다 뽑혀 볼썽이 사나워졌다. 본디 암탉의 무기는 아름다움에 있다. 애써 가꾼 아름다움이 사라지자 수탉은 흥미를 잃었다. 물론 수탉은 아름다운 암탉을 찾아 떠나 버렸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닭들의 전쟁은 수탉들의 전쟁이다. 때로 수탉들의 전쟁은 예상 밖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싸워서 이긴 쪽의 암탉이 되겠다고 선언한 한 마리의 암탉을 사이에 두고 두 마리의 수탉이 장렬한 싸움을 시작했다.

생사를 건 싸움 끝에 이긴 수탉이 지붕위에 올라가 하늘을 향해 승리의 포효를 질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암탉은 눈물을 흘리며 싸움에서 진 수탉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었다. 그러고는 진 쪽을 위로하면서 둘이 부둥켜안고 숲 저편으로 사라졌다.

정치권의 정쟁을 암탉을 사이에 둔 수탉들의 전쟁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먹고 살기 힘든 국민을 생각하기는 하는지... 차라리 암탉을 사이에 두고 암탉을 차지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장렬하게 싸우는 수탉들의 전쟁을 보면, 솔직하기라도 하다.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국민들에게 관심조차 없는 정치권의 정쟁은 솔직하고 희생적인 수탉들의 전쟁과 비교하고 싶지 않다. 암탉을 사이에 둔 수탉들의 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닭들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일이고, 따라서 지금까지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살펴보기만 해도, 암탉을 둘러 싼 수탉들의 전쟁은 단순하지 않다.

이제 현명해져야 하는 수탉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그리고 과욕이 아닐는지 모르지만, 정치권에도 기대를 건다. 아무리 정치인이라 해도 이제는 조금은 나은 방법을 궁리할 때도 되었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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