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를 넘어…이웃사랑에 중독된 ‘천사 경찰’
임무를 넘어…이웃사랑에 중독된 ‘천사 경찰’
  • 승인 2014.05.2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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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중부경찰서 동인치안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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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몸노인·기초생활수급자 등 200여명 보살펴
하루 10가구 방문 후 일거수일투족 꼼꼼히 메모
사비 털어 생필품·군것질거리 등 챙겨 전달
“더 좋은 것, 맛있는 것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
친근한 이미지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봉사도


“어서오이소. 오늘 웬일이시라예” 동인치안센터 문을 열고 한 80대 할머니가 들어오자 경찰관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는다. 이철민(57) 대구 중부경찰서 삼덕지구대 동인치안센터장이다. 구부정한 허리를 툭툭치며 들어오는 할머니 손에는 뻥튀기 과자가 가득 든 비닐 봉지가 들려있다. 할머니는 “아이고. 머리 했나? 얼굴이 훤하네”라며 반가워 한다. 그러더니 과자를 좀 줄테니 바구니 하나를 내달란다. 이 센터장은 손사레쳤지만, 바구니 가득 과자를 담아준다. 따뜻하고 정감 있는, 마치 이웃과 같은 경찰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27일 오전. 이철민 센터장은 오늘도 센터 뒤에 세워둔 자전거를 꺼낸다. 어디로 갈지 망설이지 않는다. 발길 닿는대로, 시간이 되는대로, 홀로 살고 있는 어르신들을 찾아간다. “나 말고 구청이나 복지센터 등에서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관리해주겠지. 그래도 마음이 그러나. 내가 맡은 일이 이런건데. 주민들 하나하나 챙기는 이 일이 얼마나 보람차고 재밌는데” 이 센터장이 말했다.

보통 하루에 10명. 이 센터장 컴퓨터 안에는 노인복지활동 일지 폴더가 있다. 활동 일지에는 하루하루 찾아간 어르신들에 대한 건강 상태 등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다. 어르신들을 더 잘 알고 싶고 혹시나 단 한 명이라도 까먹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다. 털털하고 서스럼없는 그의 성격 뒤에 세심한 부분까지 있다.

이 센터장이 자주 찾아가는 사람만 200여명이다. 홀몸노인이 90여명이고, 기초생활수급자가 110여명이다. 이 센터장이 다녀온 집에 대해서는 노인복지 활동일지에 꼼꼼하게 기록된다. A4용지의 200페이지 가량 적혀있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처음에는 하루에 5면 채 만나뵙지 못했는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요령이 생기게 되니까. 하루에 어르신 10분은 거뜬하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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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센터장이 동인동에 살고 계시는 80대 할머니 댁에 직접 찾아가 안부를 전하고 있다.
이 센터장이 동네에서 가장 관심을 쏟고 있는 할머니가 있다. 90세를 눈 앞에 두고 있는 할머니다. 이 할머니를 알게 된 것은 할머니가 직접 경찰서로 찾아오면서 부터였다. 잠옷 바람으로 헐레벌떡 경찰서로 뛰어오신 할머니는 “우리집에 도둑 들었어. 빨리 와줘”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치매기가 있는 이 할머니는 종종 간밤에 도둑이 들었다며 신고를 했다. 항상 전화로 신고를 했지만,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이 센터장은 할머니를 집에 모셔다드리려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방 문고리는 세가닥 끝으로 꼬아져있었고, 방은 온갖 옷가지와 양말 등이 가득했다. 보일러도 고장나있었다.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고, 방안에는 쥐가 돌아다녔다. 이곳에서 할머니는 자식들과 연락이 끊긴 채 혼자 살고 있었다. 동네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세 들어사는 남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치매기가 온 것이었다. 이 센터장은 할말을 잃었다.

근처 장기요양센터에 전화를 해 할머니에게 가사도우미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집에는 도둑이 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할머니를 위해 CCTV를 설치해줬다. 치매 증상이 있는 할머니가 외출하면 자칫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 목걸이도 걸어줬다. 목걸이에는 ‘보호하고 계신 분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바랍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적어뒀다.

지난달에는 중구보건소에 부탁해 치매 정밀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줬다. 서울에 사는 할머니의 조카와도 연락이 닿았다. 육군 장교인 조카는 이 센터장에게 거듭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더니 직접 대구경찰청장에게 편지를 써 이 센터장의 선행을 알리기도 했다.

이 센터장은 “동인동의 일대가 2~3년 전에 동 주민센터가 통합되면서 한명 한명을 돌보기가 인력이 부족하다”며 “복지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이 법과 현실의 괴리가 커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센터장은 “이 동네에 살고 있는 한 80대 할아버지는 시각 장애인인데, 기초복지지원이 40만원이 나온다. 혼자 살면서 월세로 15만원 나가니까 30만원 채 되지 않는 돈으로 한달을 생활하고 있는데, 정말 생활하기 어려운 분”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중구 동인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 중에서 65살 이상 노인 인구가 20%에 이른다고 한다. 그 중 홀몸어르신들이 많은데 이들에게는 꼭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센터장은 동네 어르신들의 몸상태는 물론이고 가족이 누구인지까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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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센터장이 평소에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90대 할아버지를 데리고 인근 병원을 찾았다. 이 할아버지는 제대로 거동하기가 힘들어, 이 센터장이 옆에서 부축을 해줘야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 센터장은 어르신들을 찾아뵐때는 절대 빈 손으로는 가지 않는 게 원칙이다. 생필품이나 군것질거리를 알뜰살뜰 챙긴다. 이렇게 챙기는 게 맛에 산다고 이 센터장은 말했다. 세심한 부분도 절대 잊지 않는다. 당 수치가 높은 어르신들에게는 ‘사탕’보다는 생필품을 챙겨드린다. 그는 오히려 더 미안하다고 한다. 사비를 털기 때문에 더 좋은 것, 더 맛있는 것을 드리지 못한다는 점에서다.

이 센터장은 지난해 2월 동인치안센터장으로 발령 받았다. 그전에는 장애인이나 노인단체 등을 맡아 10년 가량 정보관으로 일했다. 센터장으로 발령왔을 때 담당업무 중에서 ‘경찰 민원업무 처리 및 지역주민 봉사활동’이라는 임무가 눈에 들어왔다.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라는 의미였다. 그 때부터 이 센터장은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봉사라면. 봉사라고도 할 수 있죠. 하지만 우리 임무이고,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나도 모르게 그냥 이 업무에 미쳐버린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에덴복지센터 복지사들과 함께 어르신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해주기 시작했다. 경찰복을 입은 채로였다. 이 센터장은 경찰관이 ‘이웃’이라는 친근한 이미지를 주민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다. 하루에 2번씩 어르신들을 찾아뵀다. 이 도시락 배달은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동네 어르신들과는 서스럼없는 친구 사이가 됐다. 어르신들의 말벗이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 센터장은 어르신을 찾아뵐 때 보람도 있지만 항상 미안하다고 한다. 일주일 넘짓한 시간이 흘러 찾아뵐때면 항상 어르신들은 “어디 간 줄 알았어”라고 한단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섭섭해 할까봐 이 센터장은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이 센터장은 “어르신들 방에 들어가면 특유의 어르신 냄새가 나요. 보통 노인내라고 하는데 냄새가 지독하죠. 하지만 난 그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구수하게 느껴지네요. 중독인가봐요”라며 웃었다.

김지홍기자 kjh@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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