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950년 6월'> 3.술래잡기와 퇴학소동(1)
<소설 '1950년 6월'> 3.술래잡기와 퇴학소동(1)
  • 대구신문
  • 승인 2009.07.02 09: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학년이 되자마자 전교생의 아침조회 시간에 교장선생님의 소개를 받아 교단으로 올라온조영희 선생님은 활동사진에서나 본듯한 서양여자 차림을 하고 경사(서울말)로 부임인사를했으며 우리 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우리들은 의무교육의 실시로 갑자기 학생이불어나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져 이학년 까지는 교실바닥에 앉아 공부를 했으나 이제 책, 걸상이 생겼고 새로운 선생님과 새 짝꿍에 대한기대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선생님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다른 여선생님들과는 달리 항상 긴 양머리에 모자를 쓰고양장을 하고 높은 구두를 신고 양산은 물론 더운 날씨에도 잠자리 날개 같은 장갑을 끼고 길을 지나가면 모두가 한번씩 처다 보았고 동네청년들은 휘파람을 훽훽 불어대기도 했다.

학교 안에서는 물론금호장의 장꾼들이나우물 터의 동네 아낙네들까지도 한동안 조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뿐이었으며 우리들은 처음 들어보는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콩쥐팥쥐,이솝우화 등에 취해 정신을 잃었고 나도 영순이가 마음에 좀 걸리기는 했지만 점점 우리선생님에게로 기울어지기시작했다.

나는 사모관대 차림으로 말을 타고 선생님에게 장가가는 꿈을 꾸기도 하고 자나깨나 양머리에 예쁜 모자를 쓴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하루에도 몇 번씩 선생님이 세 들어 사는 정길이네집을 들락거렸으며 만나봐야 꾸벅 절하며 인사하는 것 뿐이면서도 방 앞에 높은 구두가 없으면 실망을 하고 힘없이 돌아서곤 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선생님에게 전할 방법도 용기도 없이 가슴앓이만 하고 있었을 뿐 뾰족한수 가 없었다.

나는 같은 학년 아이들 보다 한두 살 아래에다운동에 소질도 없고 연약했으나 그날만은 다행히 술래에서 벗어나 정길이 집으로 숨어 들었다.

그날도 외출을 했는지 선생님 방 앞에는 높은구두가 보이지 않았다.

그 집 대문 앞에 있는 배꼽마당은 평소 우리들의 놀이터로 어지 자지하며 양 발로 제기차기를 하거나 자치기, 등말타기, 술래잡기 등을 했으며 집안에는 디딜방아도 있었고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목욕탕이 있어 명절 때면 장작을한아름씩 안고가 식구 수대로 더운물로 목욕을하곤 했다.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서면 깨끗한 시멘트바닥에 물긷는 펌프가 있었고 소나무 판자벽에는옷을 벗어 거는 대못이 박혀 있었으며 양철 바케츠와 바가지도 있었다.

내 딴엔 위장을 한답시고 일부러 바깥문은 열어놓고 다시 오른쪽 판자 문을 열고 들어가 안으로 걸어 잠 구어 버렸다.

그곳에는 목욕물을 데우는 커다란 무쇠 솥이있었고 두꺼운 송판으로 만든 솥뚜껑도 있어 숨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는데도 술래인 정길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니 설마 자기집에 숨었으랴 싶어 엉뚱한 곳으로 찾아 다니는 모양이었다.

날은 푹푹 찌는데 바람은 한 점도 없고 더 이상 견딜 수 가 없어 망설이고 있는데 멀리서 희미하게,“못 찾겠다 개똥파래이, 보리밭에 문둥아 해빠졌다 나온느라(술래가 못 찾은 사람을나오라고 알리는 소리=못 찾겠다 꾀꼬리).”하는 정길이의 목소리가들려왔다.

내가 쾌재를 부르며목욕탕 솥뚜껑을 열고막 일어서는데 갑자기바깥문 닫는 소리, 안으로 잠그는 소리, 펌프질하는 소리가 나고 잠시조용하더니 쏴- 하고 바가지로 물을 덮어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길이 요 녀석이 술래를 하다가 더위에지쳐 목물을 하러 온 줄 알고 깜짝 놀려주기 위해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가 관솔이 빠져나간 판자구멍으로 내다보니, 아이고 맙소사하느님, 나는 그만 우리선생님의 알살(알몸)을본 첫 번째 남자가 되고 말았다.

(영순이 말처럼 내가 선생님을 책임질 수 있었으면…)여름방학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좁은 시골바닥에 괴상한 소문이 나돌더니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주막집에서부터 빨래터로, 군부대로 소문은계속 번져 나갔고 아낙네 둘만 모이면, “신문날 일이제, 조선생이 그기 없단다.” “뭐가 없는데?” “야 이 문디야 니는 소문도 몬 들었나, 나야 할 곳에 그기 안 났다 안카나” “아이고 우야꼬라(어떡해), 처녀가 이 일을 우야겠노, 누가배를 맞춰봤으이 알지 안 그랬으마 우예 알았겠노, 누가 맞춰 봤겠노?” “그기사 뻔할 뻔자지,총각선생 아이마 군인장교 아이겠나”“누가 재미 볼 꺼 다 보고 혼인 안 할라고 일부러 소문낸거 아이가?” “그라마 김기원 선생은 인자 달(닭) 쫓던 개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뿟네”이와 같이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