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유해 동물이 된 비둘기
<팔공시론> 유해 동물이 된 비둘기
  • 승인 2009.07.0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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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성형외과 원장, 의학박사)

올해 5월31일 자로 집비둘기가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유해야생동물은 `국민재산과 생활에 피해를 주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현재 멧돼지, 고라니, 참새, 까치 등 15종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금까지 여러 국제 행사에서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으로 사랑을 받아 왔고, 과천시나 경기도의 지방 자치단체 상징물이 되었다.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각각 3000마리가 방사되어 하늘을 날았다. 30여 년 전 피부과 전공의 시절 주임교수의 지시로 비둘기 배설물내의 `크립토코쿠스’라는 곰팡이 균의 지역분포를 알기 위해 전국 30개 도시를 돌아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학자는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최소한 자국의 통계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은 돌아가신 주임교수의 평소 지론이었는데 일본에는 이미 이 곰팡이의 지역분포가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없으니 당시 선배 의사의 박사논문의 자료로 사용될 통계자료 수집을 위해 막 전공의가 된 필자를 차출하여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게 하였다.

필자도 병원 외래에서 고생하기 보다는 유람 삼아 한 번에 보름씩 두 차례 놀러 다닌 기억이 새롭다. 대전 위 15 곳, 대전 아래 15 곳 등 30개 지역이었고 특히 서울은 넓다고 핑계 대며 서울 시청과 어린이 대공원으로 나누어 두 번에 걸쳐 채취를 하러 갔었다.

당시 서울 시청 옥상에는 비둘기 사육장이 있었는데 직원의 안내로 들어갔더니 거대하게 건조된 황갈색의 비둘기 배설물이 먼지, 떨어진 깃털과 함께 계단식으로 쌓여 있어 수 천 마리에 이르는 새의 숫자에 이어 또 한 번 놀란 기억이 있다. 비둘기 배설물의 채취는 주로 공원이나 학교를 이용하였다.

여기에는 대개 비둘기 사육장이 있었고 사다리를 빌려서 이를 타고 채취하고 있노라면 공원에 놀러 온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뭘 하려고 그렇게 힘들게 채취 하냐고 물으며 아마 무슨 약에 쓰려는가 보다며 쑥덕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어렵게 채취한 비둘기 배설물은 비닐봉지에 담아 날짜와 지역을 쓰고 다시 포장 하여 매일 우체국 등기소포를 이용해 병원으로 보냈다.

이 연구는 세균학 교실과 피부과가 같이 하였는데 당시 세균학 교실의 담당교수는 필자에게 이것을 모두 한 곳에서 채취하고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아 보낸 것은 아닌지 농담 섞인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다 옛날 이야기이다.

이 연구로 남부지방뿐 아니라 중부지방과 위도 상 제일 높은 춘천에 이르기까지 이 곰팡이 균의 서식분포가 확인되었다. 이 곰팡이는 당시에는 임상 증례가 별로 많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근래에는 항암제를 복용하거나 면역결핍질환에 걸려 저항력이 떨어진 사람들에게 기회 감염으로 걸릴 확률이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피부증상도 나타날 수 있지만 대개는 폐렴이나 뇌수막염으로 진행된다. 미국의 통계로는 치사율이 12%이며 환자의 85%가 에이즈 감염환자라고 한다. 최근에는 대만이나 태국 등 아시아권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비둘기 등의 조류에서도 같이 감염된 사실이 확인되어 도심에서 활동 중인 조류의 방역에 비상이 걸렸는데 공원이나 광장에서 비둘기를 사육하거나 먹이를 주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 법규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비둘기는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온 텃새이다. 비둘기의 종류는 300여 종이며 우리나라에는 멧비둘기, 집비둘기 등 8 종류가 산다고 한다. 멧비둘기는 사람보다 한반도에 먼저와 살았으며 집비둘기는 20세기 들어 급증하였다.

이조실록에는 중국 사신에게 집비둘기 세 쌍을 선물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수도권 지역에 100만 마리 정도로 추정되는 비둘기는 유럽에서 수입해 방사된 집비둘기들이 풍부한 먹이를 먹고 엄청난 번식을 한 탓인데 비둘기의 천적인 매나 황조롱이 도시에서는 살 수 없어 비둘기가 계속 늘어 나고 있는 것이라고도 한다.

서울시는 앞으로 먹이를 줄이거나 먹이에 피임약을 섞는 방식을 활용한다고 한다. 서울시 관계자가 시청 옥상에 비둘기를 몇 마리나 키웠는지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고 한 신문 기사를 읽었다. 다른 신문에서는 81년부터 서울 시청 옥상이나 한강 둔치 등지에서 가축처럼 기르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미 필자가 74년에 서울 시청에서 비둘기 배설물을 채취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새삼스레 은사의 말씀이 회상된다. 학자는 자기 전공분야에서 자기 나라 통계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후학들인 우리에게는 따끔한 지적이다.

과연 나는 우리 통계를 가지는데 최선을 다 했는가 자문해 보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우리 모두 자기 분야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통계를 가지고 있다면 이는 개인에게는 작은 일로 생각되겠지만 국가 전체로 본다면 거대한 나라의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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