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의 몫
산 자의 몫
  • 승인 2014.07.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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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락 수필가
김병락 수필가
무더운 한낮이었다. 갑자기 창밖에서 ‘쾅’ 소리가 나고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전해왔다. 순식간에 사람이 몰려들었고 이내 표정들이 일그러졌다. 아스팔트 위엔 여기저기 혈흔들로 얼룩져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말로만 듣던 교통사고, 엄청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몇몇 목격자들은 제정신이 아닌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건널목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느긋하게 파란불 신호를 보고 건너가다 그만 변을 당한 것이다. 두 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렇게 사람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는 말인가. 한날한시도 알 수 없는 게 사람 운명이라 했거늘 이건 너무도 허망하다.

산 자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웽웽’ 해서 불만이 높았던 구급차가 막상 오늘 이 시간은 도착이 더디게 느껴지고 더욱 간절해진다. 빨리 와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초조하고 애가 탄다.

송강 ‘장진주사’ 시의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여 주리어 매고가나 유소보장의 만인이 우러예나’처럼 결국 죽어 담요 한 장에 덮여 영영 사라지고 마는구나. 모두 힘들게 살아가고 있건만 한 치 앞을 못 보고 가버리다니 이를 어찌하나. 죽은 자의 부모와 자식들은 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한 생명이 이토록 나약하게 가는 것, 나방 한 마리가 불빛에 ‘타닥’ 하고 타죽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막힌 도로를 뚫고 멀리 구급차가 온다. 죽은 자를 위해 산 자는 평소 늘 해오던 일이라 침착하게 처리한다. 똑 같은 생명을 가진 인간일진대 그들은 전혀 다른 이질의 물체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묵묵했다. 이제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더는 슬픈 광경을 보지 않게 해 주어야 하리라. 그들은 뻣뻣하게 굳은 시체를 싣고 다급하게 떠났다.

주변 사람은 다행히 점심시간 바로 전이라 더 큰 사고를 막았다며 안도한다. 경찰이 와서 현장을 조사하고 모였던 이도 하나둘 떠나간다. 각자 발길을 돌리며 깊은 생각에 잠긴 저 산 자들의 모습, 참 나약하고 서글퍼 보인다. 꽉 밀렸던 차들도 멈칫멈칫하다가 조금씩 뚫려 주변은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갔다. 한 시간 남짓 동안 쉬이 지워지지 않을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들이 시시각각 벌어지니 불안하다. 지금도 수많은 것들로 어지럽고 혼돈되어 틈만 나면 조용한 곳으로 탈출을 시도해 보지만, 얼마 안 가 현실로 돌아와 갇히고 만다. 어찌 됐던 우린 연약한 인간임이 틀림없다. 아무리 강하다고 항변을 해도 문명과 자연 앞엔 속수무책이다. 결국 스스로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이치를 벗어나지를 못한다.

이날 사고원인은 급발진으로 추정하는 것 같다. 승용차가 백 미터 이상을 내달려 횡단보도에서 한 사람을 치고 반대편 차선으로 가서 또 치고 연이어 차량 세 대를 추돌한 뒤 멈추었다. 이럴 때는 첨단 과학이고 뭐고 원망스럽다. 인간이 만든 덫에 고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면 정작 부질없는 고생인 것 같다. 차가 편리해서 원동력이 되긴 하지만, 그로 인해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는가. 숙달된 우린 어쩔 수 없이 그게 최상인 줄만 알고 머무르게 된다.

오후 내내 일손이 잡히질 않는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송강의 주량이라도 타고났으면 오늘 저녁에 진탕 취해보고도 싶지만, 그것마저 내겐 허여되지 않은 걸 어떡하나.

저쪽에서 구급차 소리가 또 요란하게 들린다. 앞차가 잘 비켜주지 않거나 체증이 될 때 소리는 더 요란하다. 그 누구도 언뜻 길을 내어주지 않고는 못 배긴다. 어쩌다 그도 저 속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기에 더 그렇다. 우리 살아있는 한 영원히 저버릴 수 없는 경종일지도 모른다. 희미하게 꺼져가는 숨소리, 그 고통을 겪는 환자와 보호자는 얼마나 불행한지를 생각해 본다.

살아생전 부모에게 효도하고 많이 베풀며 최선을 다하라고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천년만년 살 것 같이 이기적이며 마음을 열지 않는 자는 결코 참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도 익히 봐 왔다. 그건 내 자신을 위해 후회 없이 살아야 하겠지만, 종내 죽은 자를 위한 산자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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