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 뉴욕에 점포 오픈, 세계 최고 헤어숍 꿈꾼다
2년 후 뉴욕에 점포 오픈, 세계 최고 헤어숍 꿈꾼다
  • 승인 2014.07.2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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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인>신정헤어라인 대표 찰리 신

불우한 유년시절 보내고 우연히 미용일 시작

치열한 경쟁 속 살아남기 위해 가맹사업 추진

대구 상인점 등 직영 4곳·가맹 21곳 운영

숱한 경영위기,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으로 극복

토종 브랜드, 세계 1등 브랜드 만드는 것이 목표

젊은이들에 ‘할 수 있다’ 희망과 용기 주고 싶어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신정헤어라인신원장인터뷰/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
신정헤어라인 대표 찰리신
“대구의 토종브랜드인 신정헤어라인을 2년 후 미국 뉴욕에 오픈해 세계 1등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자 신정헤어라인 가족 모두의 꿈입니다.” 현재 대구 상인점을 포함한 직영점 4곳과 가맹점 21곳을 운영하고 있는 신정헤어라인 찰리 신(본명 신성득) 대표는 세계 1등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매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대구 상인점을 포함한 직영점 4곳, 가맹점 21곳(구미5, 포항4, 안동, 울산 등)과 내달에는 포항 두호점을 오픈해 운영할 계획이다. 대구의 토종 브랜드를 세계의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위기 탈출의 동력

신 대표는 “개인 브랜드의 한계, 직원교육, 조직화되지 않은 시스템의 미비로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장환경 속에서 좋은 인력 확보의 어려움까지 가중되면서 ‘가치있는 미용실, 체계화된 교육, 직원들과의 미래비젼 등을 공유할 수 있고 꿈이 있는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가맹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기와 절실함’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계기가 됐다”고 강조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한분야에서 꾸준히 자신만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면서 위기 탈출이 가능했다고 한다.

신 대표는 “흐름에 민감한 뷰티분야에서 10년 넘게 한분야에서 앞서나가기 힘들다고 하는데 ‘신정헤어라인’의 이름에 담겨있는 정(情)을 기본으로 항상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경북 성주 출신인 신 대표는 이종 사촌형의 권유로 전문대학 졸업 후 미용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신 대표는 “초등학교 4학년때 대구에 살고 있는 이모의 권유로 대구로 이사왔고 3대 독자이고 아버지가 중 3때 돌아가셔 사춘기 시절에는 가정이 불우하고 위축된 생활을 했었다”면서 “그러다보니 말을 더듬게 되고, 의사표현을 속시원히 바르게 하지못해 장애 아닌 장애가 됐다”며 힘든 유년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이후 그는 “2년제 대학졸업하고 우연히 이종사촌형의 권유로 미용실에 일하게 됐다”며 “사촌형도 미용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인데 대만에 유학 갔다가 지인의 소개로 유학 중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구백화점 맞은편에 ‘카사린밴슨’미용실을 오픈했다”고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 당시 친척들 중에 제일 존재감이 없는 3명이 미용학원 원생으로 선발 됐는데 그 중에 한명이 저였다”며 당시를 회상하던 신 씨는 “미용학원에 등록하고 스파르타식으로 미용실 뒷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던 중 1년만에 사촌형님은 다시 본인의 길로 돌아갔고, 친척 두 사람도 각자 자기 길을 찾아갔는데, 덩그러니 혼자만 남아 그제서야 미용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情)을 기본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기업

10년 넘게 한 분야만 달려오면서 우여곡절과 에피소드도 많았다. 그는 “서울 아트(art)팀 소속 당시 7명이 무대에 올라 7분만에 올림머리를 시연하기 위해 20일간을 합숙하고 드디어 무대에 올랐고, 유일하게 아이롱으로 머리에 웨이브를 시연하게 된 제가 그 무대의 메인이 됐다”고 기분 좋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관중이 너무 많아 무대까지 이어진 전기 코드선을 누군가 밟아서 내 아이롱에 들어와야 할 전원이 안들어오게 됐고, 순간 모든 게 정지됐다. 전국에서 초대된 수많은 사람들과 행사를 주최한 한국 최고의 미용회사의 메인쇼가 정지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저는 마치 각본에 짜여진 듯 일체의 망설임 없이 즉흥적으로 춤을 췄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2분이 하루만큼 길게 느껴질 즈음 전원이 들었왔다는 다급한 목소리에 ‘춤’을 멈추고 머리 미용를 하는데 이상하게 잘 되기 시작했고 그렇게 끝 마무리 하고 무대를 내려왔다”면서 “귀청을 때리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당시의 감동을 전했다.

말레이시아 커트 헤어쇼에 참가해서 어려웠던 상황도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커트 헤어쇼에서 두명이 올라가서 커트를 시연하는 무대였는데 저와 같이 출연하는 사람은 가위를 앞뒤로 돌리는 아트팀 경력의 소유자였다”면서 “그분에게 하루동안 가위 돌리는것을 배우고 한달 앞으로 다가 온 공연을 대비 해서 열심히 가위 돌리는 연습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보통 커트를 20분만에 끝낸다면 저같은 경운 어설프게 가위를 돌려가면서 하니까 커트시간이 1시간 넘게 걸렸다”며 고객들은 “지금 뭐하냐고~”고 짜증내고 직원들은 킥킥 거리며 남 애타는 마음도 모르고 웃고 난리였다고 한다.

15일간 이렇게 시간을 보낸 신 대표는 ‘왜 이렇게 안되지… 습관을 바꾸기가 이렇게 힘드는가’라며 앉아있는 순간 다른 직원이 그냥 가위를 돌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가 가위를 거꾸로 돌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라는 그는 “하루종일 가위돌리는걸 배워서 기차를 타고 내려오다가 너무 몰입한 나머지 거꾸로 기억하게 됐던 것을 알고 정석대로 바로 돌리까 이건 뭐 식은죽 먹기였어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계기로 말레이시아쇼는 대성황을 이뤘고 찰리 신은 스타가 됐다. 신 대표에게도 스타 찰리 신으로 오기까지 어려운 일들도 많았다.

그는 “늘 가만히 있지 못했다. 원래는 게으른 편이었던 것 같은데 저의 불우한 환경이 저를 움직이게 했고 저의 욕심이 저를 노력하게 했는지, 늘 변화하려 했고 도전해 왔다”면서 “지금껏 10년, 20년 미련스럽게 부족한 저와 같이 신정헤어라인을 지켜준 직원들이 저의 재산이고 보람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습니다”라면서 끝까지 직원들을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 씨는 “최근 시장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낮은 브랜드 밸류로 온갖 어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직원 수급의 불균형, 매출감소로 인한 사기저하가 시작되자 미래에 대한 두려움까지 밀려왔다”면서 어느 날 주변을 둘러보니 대형숍은 자신의 미용실만이 우두커니 남아 있었다고 한다.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
신정헤어라인 대구시지점 직원들 모습.
곧 위기가 닥친다는것을 느꼈지만 지금껏 노력한 일들이 사라질 것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 사명(社名)을 신헤어라인에서 신정헤어라인으로,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정을 기본으로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기업/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으로 바꾸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 1년후 법인을 만들고 가맹사업을 시작됐다.

◇꿈은 지칠 때 스스로를 일으키는 힘

직원들에게 신 대표는 항상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가치있는 사람이 되자. 본인의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것/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이라고 말한다. 직위가 높고 낮음이 아니라 가치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래서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나는 누구인가. 나는 자신에게 어떤 노력을 해왔고, 어떤 가치를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를 늘 반문한다.

이런 것 때문에 직원들이 그에겐 가장 무서운 사람이다.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제가 조금만 흐트러지거나 경쟁에서 밀리면 그들이 가차없이 정신차리게 해준다/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고 신씨는 말했다.

미용기술의 꿈을 갖고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신대표는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꿈을 갖고 일을 시작하라고 하고 싶다. 미용실 오픈하는 꿈, 세계적인 유명한 미용사. 미용학교 설립의 꿈, 미용프랜차이즈 대표가 되는 꿈... 꿈은 힘들거나 지칠때 본인을 일으켜세우는 힘/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이라며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꿈이 있는 사람은 힘든 하루하루를 본인의 성공스토리로 만든다/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고 강조했다.

그는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꿈이 있으니까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기술을 배우고, 경영을 배우고, 동료, 고객과의 소통을 배우는 과정이 짧지않는 시간인데 그 시간동안 아무리 좋아서 하게 된 미용이라도 취미활동을 하는게 아닌 이상 고비가 있게 마련이고 그때 꿈이 있는 사람은 쓰러지지 않는다/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며 꿈을 갖고 시작하기를 주문했다.

◇토종브랜드를 세계의 브랜드로 심을 것

그는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저는 일자리 창출이라든지 지역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 뭐 이런 거창한 것은 제가 해 낸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단지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다는 것이 제 자긍심이죠/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라면서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대구 토종의 지역브랜드로, 미용프랜차이즈에 성공한 기업으로 2년 후 뉴욕 맨허턴에 진출해 세계최고의 미용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면서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이것으로 젊은이들에게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나도 할수있다/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는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람이 되겠다/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고 말했다.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
신 대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사회봉사활동까지 펼치고 있어 주변의 호평을 받는다.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요즘은 못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정신지체아동시설에 정기적으로 미용봉사를 하러 갔었어요. 아동들을 보면서 반성하고 얻은게 많아요.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라고 말했다.

그는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앞으로 2년 후 뉴욕에 신정헤어라인 미용실을 오픈할 계획/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이라면서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대구 동성로에서 시작된 토종브랜드를 세계1등 브랜드로 만들고 싶은 게 저의 꿈이자 우리 신정헤어라인 가족 모두의 꿈/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이라고 밝혔다.

그는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성공을 바탕으로 미용 컨설턴트가 돼 세계에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다/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면서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우린 살다보면 이럴때가 있죠. /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그때 내가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이렇게 될줄알았더라면. 그때 이렇게 할 걸, 지금이라면 더 잘했을텐데/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 뭐 그런 때 말이죠.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고 합니다. 오늘도 저는 꿈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news/photo/first/201407/img_137855_1.jpg"라고 덧붙였다.

김주오기자 kim-yns@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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