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신장(新疆)사태와 중국 민족정책의 위기
<팔공시론> 신장(新疆)사태와 중국 민족정책의 위기
  • 승인 2009.07.0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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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로 (논설위원)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성과 못지않게 문제점도 많이 남겼다. 계층 간의 소득 불균형, 도시와 농촌의 성장 속도의 차이, 동부 연해 지역과 서부 지역의 경제적 격차, 그리고 소수민족과 한족의 민족 갈등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민족 갈등은 난제 중의 난제가 되었다. 이번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의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시작된 유혈 사태는 티베트 사태에 이어 또 하나의 과제로 등장하였다.

신장지역이 중국의 직접 지배 아래로 들어온 것은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59년부터였다. 이때부터 시작된 위구르인들의 저항은 청조 지배기간 내내 40여 차례 무장 봉기로 이어졌다. 특히 신장의 서남부 지역인 카스를 중심으로 한 야쿠브 베그(Yakub Beg)의 독립국가 건설 운동(1864-1877)은 그 대표적 사례였다.

당시 동남연해지역을 서양 열강에게 내어주면서까지 좌종당(左宗棠)은 이들의 진압에 전력하였다. 이후 좌종당은 우루무치 인근의 이리(伊犁)에서 러시아와 `이리국경조약’을 체결하였고 신장성이 설치(1884)되면서 청조의 군사적 지배가 행정적 지배로 전환되었다. 위구르인들은 신해혁명 후 두 차례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세웠지만 1949년까지 모두 좌절되었다. 그들의 후계자들은 지금까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을 전개하고 있다.

신장지역은 위구르인들과의 민족 갈등이 첨예한 곳일 뿐만 아니라 현대 중국 사회문제 중 주요 문제를 대부분 갖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신장성의 면적은 전체 중국의 16%나 되지만 거주 인구는 2천 만 명으로 채 2%가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 위구르인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투루판, 악수, 카스, 호탄 등 서남부 지역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

위구르인들은 중앙아시아 이슬람 국가들과 민족적으로나 종교 문화적으로 밀접하기에 그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또한 변경의 오지로써 사막과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전형적인 오아시스 농업지역에 거주하기에 동부 연해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낙후한 삶을 살고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그동안 소외되어 있던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의 정책의 일환으로 위구르인들의 문화와 전통을 보호하면서 그들의 자치를 허용하는 한편 경제적으로 낙후한 이 지역의 개발과 문화적 통합을 통해서 하나의 통일국가로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중국이 이 지역을 주목한 것은 천연자원뿐만 아니다.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려는 외교정책과도 관련이 있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제2의 개혁개방’이라고 불리는 `서부대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투자에 착수하였다. 서부 개발을 통해 중앙아시아 국가의 발전과 호응하며 러시아 등과 국경 무역을 확대시키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연결하여 동부 지역과 균형 발전도 도모하고 있다.

중국의 서부 개발정책에 따라 한족의 이주가 늘어났고 투자도 확대되었다. 그 결과 우루무치 등 신장성의 동북지역의 도시에는 한족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들이 지역 정치와 경제 및 상업 활동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우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지역 경제를 장악하자 위구르인들은 낙후한 지역으로 밀려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오지로 밀려난 위구르인들은 빈곤화를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우루무치 사태는 중국이 서부개발을 통해 위구르인들과의 경제 문화 통합을 추진하면서 민족 갈등의 잠재적 위협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아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소수민족의 `보호와 개발’이라는 구호 아래 추진된 서부개발이 위구르인들이 기대하고 있던 지역 간의 불균형 해소와 소외된 지역의 개발로 나타나기 보다는 우루무치 등 동북지역에 대한 한족들의 경제권 장악으로 나타나 갈등을 부추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민족 갈등으로 야기된 이번 사태는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핵심인 `보호와 개발’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통해 민족 통합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위구르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불만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중국 정부의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균형의 회복이야말로 위구르인과의 민족 갈등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뿐만 아니라 21세기 중국 사회의 과제들을 해결하는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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