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역사 이어온 ‘큰장’…없는 것 빼고 다 있다
100여년 역사 이어온 ‘큰장’…없는 것 빼고 다 있다
  • 김지홍
  • 승인 2014.08.1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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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희망찾기> 대구 중구 대신동

영남권 대표 ‘서문시장’ 7개 지구

침구류 ‘대표적’…전국 60% 유통

미싱·금은방·양말 등 ‘명물거리’

계성학교 근대건축 등 문화유산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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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대신동에 있는 서문시장 입구. 대구 중구청 제공
‘장(場)’을 따라 만들어진 동네. 대구 중구 ‘대신동(大新洞)’.

‘큰장’이라는 ‘대(大)’와 ‘새로 생긴 동네’라는 뜻의 ‘신(新)’을 붙여만든 명칭이다. 1920년 대구읍성 서문 밖에 있는 못이 메어지면서, 이 곳에 만들어져있던 ‘장’들이 ‘큰장’을 이루게됐다.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도 여전히 상권이 모여 만들어진 교통과 행정 수요가 발생하는 번잡한 지역이다.

특히 영남권에서 손에 꼽히는 대표 전통시장 ‘서문시장’과 역사가 묻어나는 명물거리, 문화유산이 돋보인다. (편집자주)

◆대신동 역사

대구부 서상면에서 ‘신정’이라 불렸던 이 지역은 1946년 ‘대신동’이라는 명칭을 갖게 됐다. 대신동은 1949년 대구시에 편입, 1963년 종로·중부출장소가 중구로 승격되면서 대구시 중구로 편입됐다. 그 후 구간 경계를 일부 조정하면서 대신1동과 대신2동을 나눴으나, 1998년 통합해 하나의 ‘대신동’이 됐다.

대구읍성의 서문(西門) 밖 약 300m지점에서 지금의 달서천 주변이 하천부지에 자연스럽게 장이 형성됐는데, 서문시장의 발단이다. 약령시와 인접한 곳이기도 하다. 수백년동안 ‘장’으로 이어오다가 경부가로와 현풍, 성주 등을 잇는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상거래가 활성화됐다. 1920년에 근처에 있던 천황당 못을 메우면서 ‘큰장’이 만들어졌다.

이곳은 동서남북(東西南北)이 모두 이어진다. 북으로 상주·김천·안동으로, 남으로는 고령·현풍·창녕과 서로는 성주·거창·합천과 연결된다. 동으로는 청도·경산·영천으로 교통의 요충지이자,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품도 다양하게 거래된다. 이곳은 조선시대 1669년 헌종 10년대부터 3대(강경·평양·서문) 시장으로 꼽혔다.

◆대구 상권의 중심

△서문시장

전통시장의 메카. 대구 성곽의 서쪽인 서문 밖에 있었다고 ‘서문시장’이다. 지난 1960년대 불이 나 목조건물이 사라지고 70년대 새로 개장됐다. 모두 7개 지구의 상가로 만들어지면서 시장 규모는 더 커졌다. 한때 경기 침체와 의류 산업의 쇠퇴로 점포 수가 줄어들었고, 지난 2006년 서문시장2지구에서 또 한번의 큰 화재가 났다. 시장은 위축됐지만 지난해 완공되면서, 현재 6천여개 가게는 여전히 서문시장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제1지구(포목·면직·한복·이불 등), 제2지구(의류·원단·신발 등), 제4지구(주단·수입품 등), 제5지구(스텐·도자기·잡화 등), 동산상가(주방기물·도자기·청소용품 등), 아진상가(홈용품·가방·악세사리 등), 건해산물 상가(건어물 등)로 구성되있다. 시장 지하에는 유명 먹거리가 많아 장을 보러온 손님들과 관광객들로 매일 붐빈다.

서문시장을 찾는 손님을 위해 25억원의 사업비도 투자됐다. 고객 휴게 공간을 비롯해 지구별 상가별 CCTV 설치와 아케이드 설치·보수, LED 조명등 교체 등 시설 현대화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서문시장 축제’도 볼거리다. 97년부터 열리고 있는 이 축제는 부보상 퍼레이드와 풍물패, 길놀이, 한복패션쇼, 서문가요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매년 10월쯤 찾아온다. 서문시장 상가연합회 주최로 열린다.

△큰장길 침구류 거리

전국에 침구류 60% 유통. 대구 큰장길 640m 거리에 70여개 침구류 가게. 이 가게들의 협력 업체만 800여개다. 여기에서 거래되는 이불은 우리나라 전국을 넘어 미국, 캐나다, 동남아, 일본 등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 이 큰장길 침구류 거리는 연간 매출액 5천억원의 규모다.

1990년대 초부터 서문시장 내 침구·수예 등 침구 관련 가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시장 내는 이불과 같은 부피가 큰 물품을 관리하고 옮기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자 서문시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대구 중부소방서 맞은편 골목길부터 큰장길에 침구류 가게들이 속속 들어섰다. 이제 이 거리에서 대규모의 상권이 움직인다. 이 상권이 가능한 것은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품질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명물거리

△대신미싱골목 : ‘재봉틀’ 과거 어머니의 향수가 젖어있다. 서문교회 북편 옛 제일은행 건물에서 건영화물 사이 골목에 1970년대 낮은 지가와 저렴한 임대료라는 이유로 일부 사업자가 이주해 미싱 영업을 해왔다. 90년대까지 점차적으로 미싱 가게가 모이면서, 대구 섬유산업 경기와 맞물려 전성기가 이뤄졌다. 현재는 50여개 업소가 판매와 수리업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가정용·공업용 등 재봉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대신금은방거리 : 서문시장을 중심으로 베·무명 등이 활성화가 되자 결혼 혼수와 예물용으로 귀금속을 파는 전문업소가 들어섰다. 금은방 20개소가 활발한 영업을 하면서 금은방거리가 됐다. 동산네거리에서 큰장네거리 구간도로 양쪽으로 70여개에 이르는 가게들이 모였다. 이곳은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와 함께 들리는 필수 코스였다. 지금은 20여개의 귀금속 업체가 영업 중이다.

△양말골목 : 계성초등학교 입구에서 남쪽 방면 좁은 골목에 알록달록 양말들이 판매대에 가득차있다. 양말 가격은 일반 가게들보다 저렴하다. 지금은 18개 업소가 이곳에 영업 중이지만, 30년 전만해도 원일상회와 대구상회를 시작으로 대신동, 남산동 주변에 100여개의 양말 가게가 문을 열었다. 서울과 강원, 제주도 등 전국으로 유통되고, 일부 가게는 일본까지 상거래가 이뤄졌다. 여전히 명물거리로 꼽힌다.

◆문화유산-계성학교

계성학교 내에 선교사들이 세운 건축물들이 한옥과 양옥이 절충된 건축양식을 보이면서 근대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서구 건축의 도입 과정과 함께 건축 상황을 잘 보여준다. 모두 일제강점기 때 지은 건물들로 계성학교의 교장과 선교사들이 직접 설계했다.

△계성학교 아담스관(유형문화재 제45호) : 대구 최초의 선교사인 아담스가 미국 선교사로부터 건축비를 받아 1908년에 세웠다. 영남 최초의 서양식 양욕(洋屋) 교사(校舍)다. 붉은 벽돌과 함께 쌓은 석재는 대구 읍성을 철거한 성돌이다. 외관은 종탑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지붕은 우리나라 전통 요소를 담아 박공지붕에 동기와를 이었다.

△계성학교 맥퍼슨관(유형문화재 제46호) : 1913년 9월에 세워진 붉은 벽돌 2층 건물로, 전체 면적 455.4㎡ 규모다. 아담스관의 북편에 있다. 계성학교 2대 교장이었던 라이너 선교사가 아담스의 부친인 맥퍼슨에게 지원받아 지었다. 출입구에는 사각탑이 있고 그 왼쪽과 오른쪽이 대칭이다. 지붕은 모임지붕에 한식 기와를 설치했다.

△계성학교 핸더슨관(유형문화재 제47호) : 계성학교 4대 교장인 핸더슨이 블레어 선교사가 미국에서 모금한 자금으로 1931년에 2층으로 세웠으나, 1964년 3층으로 증축했다. 건물은 고딕 양식이지만 르네상스 양식도 느껴져 서양 건축양식의 도입 과정을 보인다.

◆이웃사랑 실천

대신동 주민센터에는 서문시장의 명물거리를 활용해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시장과 맞물려 유동인구가 많은 대신동은 지난 6월 기준 4천87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타 동에 비해 적은 수지만 이들의 이웃 사랑은 주목할 만하다.

△물품나눔 코너 : 주민센터 민원실 앞에서는 물품나눔 코너가 있다. 양말 골목이나 침구류 등 전국 의류가게 밀집 지역인 가게에서 팔고 남은 물품을 기증받아 기초수급자와 독거노인 등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주민센터를 찾아온 주민들도 물품이 필요하면 일정 금액(옷 1벌 2천원·양말 2켤레 500원)을 ‘물품 나눔함’에 넣고 가져갈 수 있다. 나눔함에 모인 모금액은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된다. 지난 설 명절에는 모금액 150만원으로 백미를 구입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나눔 쌀독 : 대신동은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옛말처럼 나눔 쌀독을 운영하고 있다. 누군가 쌀을 채워넣을 수도, 필요한 사람은 쌀을 퍼갈 수도 있다. 취지는 주변에 쪽방 거주자나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지만, 주민센터에서는 주민들의 양심에 맡겼다. 주민센터 앞에 설치된 이 쌀독은 항상 열려있다. 지난 2005년부터 만들어진 이 쌀독은 매년 2~3포대씩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쌀독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많은 양의 쌀을 부어놓고 거가나 아예 여러 포대의 쌀을 동 주민센터에 맡기는 주민들도 있다. 주민센터는 지금까지 3천900㎏정도 백미를 기부받았다. 쌀독의 양을 봤을 때, 하루에 어려운 이웃 3~5명 정도가 쌀독을 이용하는 것으로 주민센터는 전했다.

◆앞으로의 대신동

대신동은 낡고 오래된 주택이 모여있는 지역으로, 거주 환경이 매우 열악해 주민들은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이에 지난 2003년 신남네거리 주변의 태왕아너스스카이 아파트 재건축을 시작으로 2012년 대신2-2지구 1천147세대를 재개발하면서 대단지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다. 재개발은 대신2-3지구까지 진행되면서 개발 예정지로 정해졌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공원이나 복지 등의 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대신동은 서구와 달서구가 가까이 있어 대구 도심인 중구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한다. 앞으로 도시철도 3호선이 오는 연말에 개통되면, 지하철 2호선 신남역(옛 서문시장역)이 동시에 통과되는 더 큰 교통의 요지로 거듭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유한 대신동장은 “대신동은 유동인구가 많지만, 끈끈한 정이 많은 곳이다. 대신동을 둘러보면 도심 속 과거와 현재가 함께 있어 그 매력도 대단하다”며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앞으로 한층 더 주민에게 다가가는 동 행정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김지홍기자 kjh@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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