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3시부터 5시까지 여왕의 행차가 재현된 구간은 옛 경주여중앞에서 신한은행 네거리를 거쳐 대릉원 후문쪽을 연결하는 중앙로와 팔우정 삼거리를 거쳐 경주역과 신한은행 네거리(2.5㎞) 까지, 1진 `선덕여왕 그 화려한 부활’, 2진 `신라의 기상’, 3진 `신라의 영광’ 순으로 이어지면서 재현됐다.
이날 행사는 약 2만여명의 관람 인파가 발디딜틈 없이 시가지를 꽉 메우면서 1천367년전 즉위한 여왕의 행차를 실감나게 연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여명의 인원과 말, 깃발, 무기류 등 당시를 보여주는 여러가지 소품과 함께 여왕즉위 1천367여년만에 부활된 행차재현은 시민과 관광객들을 열광시켰다.
1진 행렬에는 인도하는 역을 맡는 관직인 나부통전이 앞장서고 대열 흐름을 진행하는 대고병(큰북의 수레를 끄는병사)과 대고수(북을 치는 병사), 행차 기수, 사신기(청룡,백호,주작,현무의 네 신을 그린 의장기), 의장기수, 전군대장 및 군사, 음성서 지휘자, 음성서(궁중의 취주악단), 도반(춤과 묘기의 재주꾼)및 춤추는 무용수가 뒤를 이었다.
2 진은 이내객(여왕처소의 근위병)을 선두로 왕의 깃발을 든 기수병이 앞장선 가운데 선덕여왕은 이내무관을 앞세우고, 뒤로는 시녀, 호위군, 대등(신라 귀족), 기마호위 김춘추(29대왕) 및 김유신장군, 십화랑(화랑중 뛰어난 10명)과 , 원화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3진은 외객기마무관(왕 행차 맨뒤의 군사를 지휘하는 무관)과 외객군사에 이어, 집가인(왕의 수레를 관장하는 하인)과 유인(제사나 점복을 주관하는 신하), 약사(어의), 급벌참전(죄인을 벌하는 관직), 군주와 조인, 그리고 이공(왕의 잡사담당)등 여러 종류의 관직신료와 시녀들이 뒤를 따르는 가운데 신라금관을 형상화한 금이와 관이, 선덕여왕의 업적인 황룡사 9층 목탑과 첨성대 모형이 여왕의 행차 마지막을 장식했다.
캐나다 교포인 김모(여·50·캐나다 터론토거주 교민) 씨는 “경주에 와서 이런 모습을 보니 너무 멋졌다. 돌아가면 선덕여왕행차 재현를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해 우리교민들에게 널리 자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시 우외진 기획문화국장은 “관광객들이 몰린것은 `드라마(mbc 방영 선덕여여왕)’의 영향으로 전국민의 관심속에서 치러진 행사여서 흥행이 성공할 수 있었다”며 “조연들의 복장 등 다소 미흡한 부분도 지적되고 있는 만큼, 보완하여 ’천년 고도경주를 상징하는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자리하는데 손색이 없도록할 것” 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오는 10월까지 시내와 보문관광단지에서 총 11차례에 걸쳐 여왕의 행차가 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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