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춘추> 대전 블루스
<문화춘추> 대전 블루스
  • 대구신문
  • 승인 2009.07.13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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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테너인 그가 노래방에 들어서자마자 마이크를 뽑아들고 부른 노래다.

그는 좁은 노래방 공간을 소리로는 더 이상 채울 수 없도록 밀도 있는 소리를 내뿜었다. 트롯의 애절함이 고밀도의 테너 소리에 얹혀서 실현된 그 감동은 내 살갗을 뚫고 들어와 온 몸과 마음을 휩싸고 돌았다.

글로는 그 소리의 맛과 마음의 느낌을 제대로 옮길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

노랫말도 되새길수록 맛이 느껴진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라고 외치며 노래는 시작되지만 사실 떠나는 사람은 이별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내뱉지도 않은 말이었지만 이별을 당한 사람에게 이 소리는 노래의 시작처럼 벽력같이 크고 놀랍게 들렸을 것이다. 설정된 이별의 공간과 시간도 의미심장하다.

대전역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인생들이 붐비는 곳이다. 영시 오십분은 한계치 시간을 이미 지나서 또 다른 한계치가 다가오고 있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간으로 시침과 분침을 그려보면 두 손 다 들고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는 모양의 시간이 된다.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라고 하지만 완행열차의 기적 소리도 슬피 울고 있고 하늘엔 부슬비가 내려 대전역을 온통 적시고 있다.

또한, 보내는 사람은 비에 젖어 울고 있는 여성인 듯한데 떠나는 사람은 붙잡아도 뿌리치는 열차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런데 그 열차는 서울행 특급이 아닌 ‘목포행 완행’이다. 포구는 역보다 더한 절대적인 이별이 있는 곳이다. 떠나는 그도 이별을 망설이기에 열차는 완행으로 간다.

테너는 코밑수염과 구레나룻을 단정하고도 품격 있게 기르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공연 무대에서보다 더욱 맑고 깨끗한 표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검은색 블라우스에 같은 색 계열의 캐주얼 정장을 세련되게 입은 그는 방금 우리가 마련한 작은 음악회에서 연주를 했었다. 공식 모임을 마치고 아쉬움이 더해진 우리는 그를 감히 노래방으로 초청했고 그도 흔쾌히 응해 주어서 이 밤에 대전 블루스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즐기거나 불러본 적은 없었다. 가사를 오늘처럼 곰곰이 생각해 본 적도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그 날 밤 이후 사흘 째 되는 오늘까지 내 속에서는 그 노래만 계속 흐르고 있다.

인터넷을 뒤져 이 노래를 처음 불렀다는 가수 안정애부터 심수봉, 주현미, 조용필을 거쳐 장사익이 부르는 노래까지를 다 들어보았다. 아무리 들어도 그 날 밤의 감동이 재현되지 않는다. 그 테너는 내게 '대전 블루스’를 처음으로 의미 있게 들려준 사람이 되었다.

‘아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언젠가 그가 좋아한다는 청도를 함께 소풍가기로 했는데 그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이상현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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