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종교의 관점에서 본 생로병사
<팔공시론> 종교의 관점에서 본 생로병사
  • 승인 2009.07.1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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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성형외과 원장, 의학박사)

일본의 종교사상가인 히로사치야가 쓴 `병마에 휘둘리지 않는 생활태도’ 라는 책을 읽었다. 아열대 지방에서 생겨난 불교는 사막에서 발생한 유대교나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일신교와는 달리 다신교란 차이점이 있다.

사막의 종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외계와 환경은 죽음의 세계, 즉 죽음은 인간의 외부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한편 생명이 무엇인가는 구약 성서에서 아담을 하느님이 진흙으로 빚어 만들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어 숨을 쉬게 만들었다고 하는 것처럼 생명은신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인간의 목숨은 내부에 있고 죽음의 세계와 투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병과 싸우는 문화는 결코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아프고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싸우는가? 지려고 싸우는 것이다.

지더라도 자신이 훌륭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이다. 병과 싸운다고 해도 과거에는 음식으로 몸에 기운을 북돋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래서 체력을 강화하기 위해 건강기구나 체력단련법을 개발하여 병에 지지 않도록 해왔다.

그런데 파스퇴르, 코호 등이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발견하여 이것이 병의 원인임이 알려지면서 병에 대한 공격이나 방어태세도 변하였다. 결국 자기의 내부에서뿐 아니라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외부에서 침입하는 것이 병의 원인이라면 그것과 투쟁하여 밀쳐내지 않으면 병에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의학은 발전하여 왔지만 그 밑바탕을 이루는 투쟁문화의 연장선에는 `투병의 사상’이 깊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암이란 투병의 사상을 가지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암과 싸우는 것은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과 싸우는 것이 아니고 자신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은 그 차이를 알고 있지만 투병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항암제나 방사선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병소를 없애려는 기술을 발달시켜 온 것도 그런 현상의 하나이다.

서양의학은 외부의 적에 대해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열심히 싸우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열대 지방에서 탄생한 불교에서는 병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부처가 출가한 동기에 대한 설화가 있는데 여기에는 생로병사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어느 날 석가가 궁전의 동문을 지나 바깥에 놀러 가려고 할 때 한 노인을 만났다.

시종에게 저 사람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 시종은 저 사람은 노인입니다. 왕자님도 지금은 한창의 젊음을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저 같은 모습이 될 것이라고도 하였다. 저 늙은 모습이 인간 본래의 모습인 것을 알고 석가는 놀러 가는 것을 멈추고 궁전에 돌아가 사색에 잠겼다.

또 다른 어느 날 남쪽의 성문을 지나다 마을에서 병에 걸린 사람을 보았다. 석가는 그 추한 아픈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누구인가 물었다. 시종은 병자입니다. 왕자님은 지금은 건강한 몸이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인간은 저 모습이 본래의 모습이라고 답하였다. 그 날도 석가는 그대로 궁에 돌아가 사색에 잠겼다.

다른 날 서문을 지날 때 장례 행렬을 만났다. 석가는 저것은 무엇인가 물었고 시종은 죽은 사람입니다. 왕자님도 언젠가는 저 모습이 됩니다. 지금은 생명의 활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인간은 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어느 날 북문을 지날 때 성스러워 보이는 스님을 보았는데 석가는 이 같은 모습으로 되기를 결심하고 출가하여 깨달음을 터득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생로병사’를 생각하는 원점이다. 결국 `생로병사’라는 것은 인간이 본래 자기 내부에 갖고 있는 것으로 젊음이나 건강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면 사막의 종교들과는 반대 입장인데 즉 우리 안에 로가 있고 병이 있고 또한 사가 있으며 주위의 환경이나 음식물은 우리의 생명을 지탱해 준다는 것이다. 이는 죽음이라는 세계가 자신의 바깥에 있지 않고 자신의 안에 있는 것으로 어디까지나 처음부터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이지 바깥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사막의 종교에서는 병은 외부에서 침입한 것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지더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로병사’가 우리들의 내부에 있다고 보면 그것과 싸우는 것은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이 된다. 만약 석가가 설파한 대로 이 `생로병사’가 인간 본래의 모습이라 한다면 이와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외부 세계는 적이 아니고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것이므로 함께 같이 살아가자는 발상도 가능하다. 불교에서는 생과 사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로와 병도 당연히 그 선상에 있으므로 싸울 것이 아니라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필자는 결론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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