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조각품의 진정한 모습은 모든 사람들의 고민을 그 혼자 표현하는 것 같아 세계인들이 명품으로 꼽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진짜 그 모습을 한 사람을 보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내 자신이 고민과 번뇌로 한 평생을 살아가는 기막힌 운명을 경험하게 될 줄이야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 사단은 바로 이러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공중목욕탕을 찾았다. 나보다 먼저 목욕탕에 온 사람이 없을 것이라 여기며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공중목욕탕 둘레석에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동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모양이 조금 그와 달랐다. 양쪽 다리를 벌리고 앉았고 공중탕 속으로 오줌을 누고 있었다. 벨기에의 브뤼셀 광장에 있는 오줌 누는 꼬마는 서 있었는데 여기에 있는 동상은 둘레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달랐다.
일주일 전에 이 목욕탕에 왔을 때 동상은 없었는데 언제 만들었나. 빠르기도 하구나 하면서 살펴보니 사람의 황인종 피부 색깔과 어쩌면 그렇게 닮았나 감탄했다. 나는 이 동상을 보기 전에 다른 목욕탕에서 물개와 잉어 상에서 입으로 물을 토하는 장면을 봐 왔기에 그것보다 더 정교한 것으로 여길 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그 동상이 움직이는 데에는 기겁을 했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고 그를 곁눈으로 살펴보니 얼굴이 험상궂고 팔뚝에는 문신을 하고 있었다. 제지하면 싸움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나는 그때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제지 못한 내 자신이 처량하고 불의를 보고도 나서지 않는 내 자신이 미웠다. 내가 비겁하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불의와 타협하다니 그로부터 번민에 빠진 자아(自我)를 알게 되고 괴로움을 당하고 살았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명확한 답을 알게 되었으니 그것은 『아버지의 오토바이』라는 책에 있었다.
‘정의! 도대체 아들아, 네 놈이 말하는 정의가 무엇이냐? 아버지의 정의는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는 거였다. 처자식이 딸린 아비한테 세상이 말하는 정의 따위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야. 제 좋은 일, 제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무책임한 강자가 되기보다는 책임을 아는 약자로 매일 힘겨운 싸움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이야!’라는 글귀였다.
김태준 성서병원 응급실 주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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