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실업(失業)이 실패(失敗)는 아니다
<팔공시론>실업(失業)이 실패(失敗)는 아니다
  • 승인 2009.07.1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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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로 (논설위원)

우리나라 실업 인구가 1백만이라고 한다. 경기 침체로 늘어난 실업 인구에다가 비정규직보호법에 대한 국회의 처리가 지연되면서 나타난 일시적 실업 인구의 증가 때문이다. 실업 통계에 빠진 비경제인구들까지 포함한다면 일자리를 갖지 않은 국민이 많아서 실업대란이라 할 만하다. 최근 정부의 긴급 처방으로 실업률에 변화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었다는 비판도 있다.

수년 혹은 수 십 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사람에게 실직은 충격이다. 정년퇴직자들에게도 사회 적응이 쉽지 않은 현실에 한참 일할 나이에 본의 아니게 직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재취업을 위해 실직의 고통과 충격에서 벗어날 수 심리적 치료와 위로가 시급하다.

실직자들은 직장을 잃고 나면 처음에는 그 직장을 원망한다. 자신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회사는 오히려 자신을 내버렸다는 데 대한 배신감 때문이다. 그의 배신감은 점차 주변의 이웃과 가족들에게로 돌아간다. 자신의 억울함은 이해해 주지 않고 무능함을 질책하는데 대한 분노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되다보면 결국 자신을 원망하기에 이르고 우울증과 같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

실직한 후에 제일 먼저 가야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곳 중의 하나가 고용지원센터이다. 실직하자 말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곳을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실패한 죄인이라는 것을 공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고용지원센터에서는 실업 급여를 지급해 주는 것 외에도 취업도 알선해주고 취업을 위한 정보와 구직 활동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준다. 실업자들에게 직업 훈련도 지원해 주니 새로운 직종으로 변신을 시도하는 경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이러한 지원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곳을 찾아 실업 급여를 받고 재취업 교육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는 것은 고용보험에 가입했던 실직자들에게는 당연한 권리이지만 실직했다는 이유 때문에 가기 싫은 것이다.

재취업을 위해서는 교육을 받거나 고용 정보를 얻어야 한다. 고용지원센터에서 특강을 들을 필요도 있고 전문가의 상담도 필요하다. 물론 그곳에서 재취업의 묘수를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심리적 안정과 자신감을 회복하는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곳에서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첫 번째 해야 하는 일이 `실업 인정’이다. 간단한 절차이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에 가족들 등쌀에 떠밀려 실업 인정을 받기 위한 설명회에 참석한다. 그 자리에서 주위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뭔지 모를 위축감 때문에 주눅이 든다. 하지만 다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에 곧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 힘이 되는 동지들을 발견하게 된다.

실직자들에게 직장을 구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없다. 처음 구직 활동을 시작할 때는 정말 내키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실업을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취업을 위해서는 그러한 마음의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들에게 재취업보다 더 시급한 것이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심리적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 된다. 실업의 충격을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하고 이웃과의 새로운 관계를 세워나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실업자 대책이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재취업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심리적 치료를 병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은 실직자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다. 자신의 잘못으로 직장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실직자는 없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말했다. “이곳에 온 사람 중에서 자신이 유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직장을 잃은 어떤 실직자도 본인의 잘못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틀린 말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실업이 곧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위한 계기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때이다. 평생 한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는 있을 지라도 평생 하나의 직장에서 일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서 직장인들이 스스로 직장을 옮기거나 회사의 사정에 따라 새로운 직장을 찾는 일이 점차 빈번해지게 된 오늘날 재취업을 위한 제도적 지원도 그에 맞추어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한 번의 실직을 실패한 인생으로 치부하던 세태를 벗어나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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