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의 북한식당 평양관에서 생긴 일
장춘의 북한식당 평양관에서 생긴 일
  • 승인 2014.09.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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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월
8.15 해방 전 치가 떨리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치하 만주제국의 수도였던 장춘에 제12차 만주기행으로 지난 9월초 들린 바 있다.

하얼빈에 일본관동군 731부대가 있다면 이곳 장춘에는 영화 ‘마지막 황제’로 잘 알려진 만주제국의 수도 위황궁이 있다.

현재 장춘에는 중국 조선족 대형문예잡지 ‘장백산’과 길림신문사가 오랜 기간 조선민족의 혼과 얼을 대변해 오며 조선어로 펴내는 유력한 지면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족 소설가이며 현재 ‘장백산’ 문예잡지사 총편인 리여천 사장이 마련한 대화호텔에서의 만찬은 그야말로 성대했다. 여기서 성대했다는 말은 고급음식을 성대하게 차렸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북한에서 경영하는 식당이라서 하는 말인데, 개업한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이름하여 평양관인데 홀마다 접대하는 북한처녀가 있었는데 북한인민기 뺏지를 달고 있었으며 스물 한 두 살, 아니 열 아홉 스무 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물을 따루어 주고 음식과 술을 날라다 주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노래 부르는 북한처녀 한 둘이 들어오더니 북한 노래와 ‘고향의 봄’을 부르는 것이었다.

다시 또 다른 북한처녀가 들어오고 하면서 분주하게 교대를 해 가며 몇 차례 가무는 계속 이어졌다. 마지막 연주에서는 세 명의 북한처녀가 노래를 부르고 뒤에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북한처녀도 따로 있었다.

이런 광경 앞에서 한국에서 간 우리 일행은 신기하다 할까 호기심이 일어서일까 사진을 찍어대었다. 도맡아 접대하는 북한처녀가 사진 같은 건 찍으면 안 된다고 하기에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남(?)의 땅에 와서 시시비비꺼리를 만들면 입장이 곤란할 수 있다는 걸 잘 아는 터라서.

그러나, 한국인인 우리 일행을 대접하는 ‘장백산’ 리여천 사장의 입장에서는 망신이랄까 말이 아니다 싶었는데 그 처녀더러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단호히 꾸짖으며 평양관 경영책임자를 불러오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북한처녀들이 북한인민기 뺏지를 달고 들어와 노래 부르는 것만으로도 웬지 안스러웠는데 접대하는 그 어린 처녀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너무나 안스러워 보였다.

그 아가씨가 무슨 죄 있겠냐마는 리여천 사장 왈, 같은 민족끼리의 만남인데 서로 기뻐하고 반가워해야 할 일인데 사진을 찍지 말라니,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이런 모습을 한국 가서 언론이나 잡지 인터넷에 퍼뜨리면 소개되어 더욱 교류가 잘 되고, 남조선과 북조선이 서로 오가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동북삼성(만주)에서나마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 널리 알려지면 상호 민족교류가 심정적으로 전달되며 통일도 앞당겨질 수 있고 것 아니냐고, 이럴려면 ‘반갑습니다’나 ‘또 만납시다’나 ‘통일의 노래’, ‘고향의 봄’ 같은 노래를 불러 무엇하느냐고 심하게 꾸짖는 것이었다. 그 북한처녀는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북한이 중국 만주땅에 들어와 식당을 경영하며 외화벌이를 하는데 그냥 외화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에 대한 지식인으로서 같은 문학인으로 본보기가 되는 질타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조선족들은 북한에 대해서도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어 역시 동족으로서의 민족애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통일이 뭐고 민족공동체가 뭔가, 서로 어깨 같이하고 소통하는데서 비롯되어야 하는데 손님 받아 음식이나 팔고 노래는 양념으로 불러주는 북한당국의 사고방식에 대한 경고로 받아 들여져 속이 후련했다. 북조선에서 중국 만주땅까지 와 시키는 대로만 하며 아무 힘없는 나약한 그 북한처녀가 안스럽기 그지 없지만 리여천 사장의 그 단호하며 명분이 확고한 가치관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더욱 새겨 두어야 할 일로 안다. 한국에서 간 우리 일행이 숙소로 머문 이곳 대화호텔 사장도 조선족으로서 대화보일러를 개발해 장춘에서는 성공한 기업가로 통하는데, 북한의 평양관이 이곳 대화호텔에 문을 연 모양이다.

사소한 일 같지만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닌 우리 한민족의 운명이 달린 동족간의 만남, 이 보다 더 빛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민족애는 없고 외화벌이 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비정한 현실을 만주땅에 가서도 체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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