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퍼주는 여교장의 행복론
밥 퍼주는 여교장의 행복론
  • 승인 2014.10.0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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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 대진초등학교장
박경선 대구 대진초등학교장
대구시 교육청 교육목표가 행복교육이요. 우리학교 교육 목표 역시 행복한 학교 만들기이다. 교장의 학교 경영관 역시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가 행복한 사람으로 사는 것에 모든 교육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나는 행복교육을 밥주걱으로 퍼 올리고 있다. 우리 학교에는 아침 등굣길에 노인 스마일 봉사단 열여섯 분이 등굣길 교통을 돌아가며 서 주신다. 토요일이나 공휴일에 이 어르신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여 식사 대접 한 번 하려고 통지해두었고 책 읽어주는 학부모 명예교사들도 초대하여 내 손으로 밥한 끼 해드리려고 통지해 두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기쁜 소식을 보내준 전 임지 학교 유치원 선생님을 초대했다.

「교장선생님, 잘 지내셨지요? 유치원 교사 이향기(가명)입니다. 기쁜 소식! 내년 2월이면 저도 드디어 아기 엄마가 된답니다. 예전에 “다른 애들만 키우지 말고 어서 선생님 아기도 키워야지” 하고 말씀하셨지요? 그때 교장선생님 말 속에 따뜻함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정말 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어 말할 수 없이 좋아요. 건강하게 더도 덜도 말고 2월에 꼭 만나자고 유치하지만 태명도 이월이라 지었어요. 많이 기다리고 소중하게 생긴 아기라서 태교도 하고 아기 낳기 전에 여유도 가지고 싶어서 10월 1일부터 휴직했습니다. 조금 여유가 생기니 그동안 교장선생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은혜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저도 교장선생님만큼 연륜이 쌓였을 때 주변에 행운이라 생각될 만큼의 은혜를 베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정말, 항상 감사합니다. 여전히 바쁘시겠지만 건강 더 잘 챙기시고 즐거운 가을 계절 보내세요. 사랑합니다. 2014년 10월 교장선생님을 본받고 싶은 유치원 교사 이향기 올림」

유산 후, 마음고생이 심했던 향기 선생님이 기쁜 향기를 전해왔다. ‘넉 달 뒤에 아기를 만날 수 있겠구나.’ 향기 선생님을 닮은 눈망울 초롱초롱한 아기를 들여다볼 생각에 가슴이 뛴다. 향기 선생님은 나에게 교직의 보람을 안겨준 또 한 사람이라 소중하다.

어느 날 『학교에 간 사자』그림책을 들고 가서 그 반 아이들에게 한 번 읽어봐 주라하고 뒤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동화 속에 쏘옥 빨려들게 구연동화 하듯이 잘 읽어주었다. 글씨도 모르고 말로 느낌을 발표하기도 어려운 3, 4, 5세 반이라서 그림으로 느낌을 표현하게 해보라 하고 돌아왔다. 나중에 아이들이 그린 느낌 그림을 가져왔는데 그림이 살아있었다. 기교라고는 전혀 없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피카소 그림 같은 선들이 정겨웠다. “이 그림들을 연결하여 동화 한 편 지어보면 어때요?” 한 번도 동화를 써본 일이 없는 선생님께 뚱딴지같은 주문을 하는 원장 앞에서 향기 선생님은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방학 동안 시간 여유를 두고 천천히 한 번 지어보세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요”하며 등 떠밀어 보냈는데 몇 달 뒤에 정말 재미있고 깜짝 놀랄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황칠을 해놓은 아이의 그림까지 버리지 않고 다 주워 담아 이야기로 연결한 마음이 고마웠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너무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유명 출판사 두 곳에 그 그림책을 추천해주었는데 두 출판사 모두에서 자기네가 출간하고 싶다고 탐을 내었다. 하는 수 없어 먼저 응답이 온 지식산업사에 원고를 넘겨 올해 5월에 『나와 사자 이야기』책이 시중에 나왔다. 내 책이 나왔을 때도 한 번도 출판 기념회를 한 적 없었지만 『나와 사자 이야기』책 출판 기념회를 한다고 현수막까지 만들어가서 밥을 사주며 ‘이런 게 작가로서 사는 보람이구나’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 선생님이라 소중한 인연이다. 집에 초대해서 밥 한 끼 해먹이고 싶어서 얼른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고령에 우리 전원주택을 마련했어요. 사진보고 맘에 들면 부군 선생님과 놀러와 하룻밤 묵고 가세요. 뱃속 아기한테도 힐링이 될 거예요.”

요즈음 나는 이렇게 산다. 집에 손님들을 초대하여 내 손으로 밥 한 끼 해 주는 재미로 산다. 갓 시집가서 삼층밥을 짓던 내가 육십에 접어들어서야 “이 김치하고만 밥 한 그릇 다 먹어도 맛있겠다”는 등의 음식 칭찬을 듣는데 그 재미도 솔솔 하고 손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맛도 솔솔 하다. 우리 집 이름도 베나(베풀고 나눔)의 집으로 지어 두었고 방명록도 만들어 두었다. 석 달 동안 176명의 손님들이 밥 한 끼 먹고 가기도 하고 하룻밤 묵고 가기도 했다. 그동안 남편은 이 집에서 그림 한 장 못 그렸고 나도 글 한 편 못 썼지만 밥 해주고 손님 맞는 행복이 그림보다 글보다 더 소중하다. 내 몸 성해서 남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해줄 수 있는 이 건강과 여건에 감사하는 나날이기도 하다. 행복하려면 돈으로 물질이 아닌 경험을 사는 게 좋고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일들을 경험하는 게 좋다고 하지 않는가? 장기적 여운으로 내 마음이 행복감과 만족감에 젖어들 수 있는 이런 일을 나는 요즈음 밥주걱으로 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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