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주부 열정 하나로 북스타트의 새지평 열다
전업 주부 열정 하나로 북스타트의 새지평 열다
  • 김정석
  • 승인 2014.10.18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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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인물>이창순 북스타트 활동가
큰아들 한마디에 자원봉사 결심
“배워서 남주자”…재능기부 나서
초등학교 돌며 북스타트 활동 시작
전문적인 교육 위해 자격증 획득
“부모-아이, 책과 함께 놀면서 소통”
모호한 북스타트의 개념 재 정립
이창순222
이창순 북스타트 활동가는 “북스타트는 엄마와 아이가 책을 통해 친해지고 다른 이들과의 공동체의식을 갖는 것이 북스타트”라고 정의했다.
오늘 만든 낱말카드로 아이들 공부시키려 하지 마세요. 같이 노는 데 사용하세요.”

지난 10일 오후 대구 중앙도서관 내 북스타트실에서는 네 번째 북스타트 교실이 열렸다. 이날 참여한 10여명의 아이와 엄마들은 한글날을 맞아 색지를 접고 오리고 붙여 한글 낱말카드를 만들었다. 칭얼대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함께 낱말카드를 만드느라 엄마들의 이마에는 어느새 구슬땀이 맺혔다. 그래도 수업 한 시간이 지나고 나자 아이들은 저마다 손에 형형색색의 낱말카드를 꼭 쥐고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4주차 북스타트 수업을 진행한 강사는 이창순(여·45) 북스타트 자원활동가. 귀여운 앞치마를 입고 따뜻한 미소를 지은 채 수업을 진행하는 이창순 활동가는 엄마들에게 농담을 던지고 아이들에게 장난스러운 꾸지람을 하면서도 1시간 동안 알찬 정보들과 놀이 방법들을 솜씨 좋게 가르쳐주는 베테랑이었다.

그녀가 수업 중간중간 엄마들에게 당부하는 말은 딱 두 가지였다. “공부 시키려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이들 울리는 엄마 제일 싫어합니다.”

‘북스타트’를 통해 아이들을 책과 친해지게 만들고, 책을 통해 엄마와 아이가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창순 활동가는 “억지로 아이들의 머리에 지식을 집어넣기 위해 공부시키고, 아이의 마음은 이해하려 들지 않고 엄마 마음대로 아이를 이끌어 아이를 울리는 것은 아이는 물론 엄마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창순 활동가는 중앙도서관에서뿐만 아니라 대구지역 초등학교와 도서관 곳곳을 종횡무진하며 북스타트를 전파하고 있다.

이날 교육도 부지런한 이창순 활동가가 맡고 있는 여러 일들 중 하나다. 대구지역에서 ‘북스타트 활동가’를 자처하는 10여명의 인물들 중 이창순 활동가에게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이가 없다고 하는데, 대구신문이 그녀를 만나 ‘북스타트’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들었다.

◆북스타트?…“책으로 서로의 간격 좁히는 것”

북스타트 코리아 홈페이지에 소개된 북스타트의 개념은 ‘북스타트 코리아와 지자체가 함께 펼치는 지역사회 문화운동 프로그램’이다. 와닿지 않는 설명이다. 조금 더 읽어 내려가보면 ‘그림책을 매개로 아가와 부모가 풍요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대화를 통해서만 길러지는 소중한 인간적 능력들을 심화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북스타트의 역할’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여전히 아리송하다.

이 설명만으로는 북스타트의 개념이 모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하는 프로그램을 북스타트로 이해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아이들이 읽기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것을 북스타트로 알고 있다.

이창순 활동가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북스타트에 대한 착각’을 나열하는 것으로 북스타트에 대한 개념 정립을 도왔다. 어린 나이에서부터 책을 많이 읽게 해 아이를 똑똑한 아이로 만드는 것은 북스타트가 아니다. 지자체가 어린 아이가 있는 가구에 책을 무료로 나눠주는 사업 역시 북스타트가 아니다. NIE(신문활용교육)처럼 책을 보조교재로 활용해 어린이들에게 수업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보통 엄마들은 내 아이가 더 똑똑해지기만을 기대하며 북스타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로그램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를 억지로 앉혀놓고 과제를 시키고 심지어는 엄마가 직접 과제를 해치워 버려요. 하지만 프로그램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이는 스스로 과제에 참여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엄마는 물론 다른 가족과도 친해지게 됩니다.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이해하고, 다른 가족과의 공동체의식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 바로 북스타트입니다. 책은 그 과정의 효과적인 도구가 되는 것이고요.”

이창순 활동가는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종이를 하나 오리더라도 아이가 직접 할 수 있게 엄마가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남들보다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 필요도 없고, 과제를 반드시 수행할 필요도 없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무언가를 해내고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책을 비롯한 다양한 놀이도구를 통해 엄마와 아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 그것이 바로 북스타트라는 설명이다.

◆배워서 남 주려다 만난 북스타트의 길

이창순 활동가가 대구지역에서 가장 열정적인 북스타트 전도사가 된 것은 아들이 그녀에게 뱉은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

5년 전쯤, 전업주부였던 이창순 활동가는 집안일에만 전념하며 남편과 두 아들과 지냈다. 여느 때처럼 남편은 출근하고 둘째는 어린이집으로, 첫째는 초등학교로 등교하던 어느 날이었다. 첫째가 집을 나서며 그녀에게 물었다. “엄마는 오늘 뭐해?” 이창순 활동가는 “엄마는 오늘 집에서 집안일 해”라고 답했다. 첫째는 곧장 “그럼 오늘 엄마는 노는 거네”라고 말했다. 이창순 활동가는 아들의 말을 듣고 순간 ‘띵’한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 엄마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비춰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창순 활동가는 주저않고 자원봉사활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제일 먼저 찾았던 곳이 바로 지역 복지관이다. 복지관에서는 이 활동가에게 “할 줄 아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또 다시 그녀는 ‘띵’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밑반찬을 만드는 정도의 일은 할 수 있었기에 한 달에 두 번씩 복지관에서 밑반찬 만드는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이제 그녀는 아들에게 “엄마는 오늘 복지관에 봉사활동하러 가”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자원봉사활동의 매력에 빠진 이창순 활동가는 그때부터 도서관에서 마련한 문화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꽃집에서 꽃꽂이를 배우기도 했다. ‘배워서 남 주자’는 생각이 들어 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자 애썼다. NIE와 논술도 배웠다.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기에 머리로 할 수 있는 일들 중심으로 자신의 ‘재능’을 쌓아나갔다.

어느 정도 ‘남에게 무언가 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자 이창순 활동가는 서부교육지원청에 자신의 이름을 등록해 재능기부에 나설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1년간 간간이 초등학교에 재능기부를 나섰다. 서부교육지원청에 이어 대구시교육청에도 등록을 했고, 그때부터 대구지역 초등학교 곳곳을 돌며 책놀이나 토론 등 책을 이용해 할 수 있는 놀이들을 가르치는 활동을 하게 됐다. 북스타트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도 이 시기였다.

◆“세월 지나도 손에 쥔 책 놓지 않을래”

대구지역에서 북스타트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2007년이다. 조금씩 번져나가던 북스타트 운동은 2009년에 이르러 비교적 활발히 이뤄졌고 중앙도서관에서 북스타트 운동 활동가를 양성하는 강좌도 개설됐다. 이창순 활동가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북스타트 자원활동가를 위한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프로그램의 이수에는 중앙도서관에서 북스타트 자원활동가로 6개월을 활동하는 조건이 붙었다. 처음에는 그녀 자신도 북스타트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게 잡히지 않았다. 그저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을 중점적으로 했다. 하지만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북스타트를 점차 이해해 나갔고,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책읽어주기 강의도 하면서 스스로도 북스타트를 통해 배움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북스타트에 푹 빠진 이창순 활동가는 본격적으로 북스타트의 전문가가 돼야 겠다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북스타트에 대한 모든 것들을 익혔다. 민간단체가 발급하는 ‘북시터(Book-Sitter)’ 자격증도 획득해 북스타트 전문가가 됐다. “자격증을 땄지만 여전히 북스타트를 공부하는 과정에 있다”고 이창순 활동가는 말했다.

지금 이 활동가는 중앙도서관, 남부도서관, 북부도서관 등 대구지역 시립도서관에서 북스타트 교육에 나서고 있고, 대구지역 초등학교들로부터 초청을 받아 아이들에게 책과 함께 노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또 그녀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엄마들과 소통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북스타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엄마와 아이들을 ‘밴드’에 초대해 엄마와 아이가 함께 놀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게시하고, 사랑스런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싣는다. 엄마들의 피드백도 활발해서, 며칠 전에는 한 엄마의 제안에 따라 단체로 영천와인터널 구경도 다녀왔다.

이제 그녀는 50살이 됐을 때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녀가 그리는 그녀의 모습은 세월이 지나도 손에 책 한 권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다.

“작은 트럭에 커피머신을 설치해놓고 책장에 그림책도 여러 권 꽂아두고 시골을 돌아다니며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시골에 계시는 어르신들에게도 책을 읽어줄 계획이예요. 파마하는 법을 배워서 할머니들을 앉혀두고 뽀글이 파마를 시켜주면서 곁에서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상상해곤 해요. 나이가 들어서도 ‘찾아가는 북스타트 버스’를 타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김정석기자 kjs@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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