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프 성공의 숨은 일꾼…“세계적 축제 만들겠다”
뮤지컬 매력에 푹 빠질 때쯤
문화예술 관련 업무와 첫 인연
낯선일이지만 공부하면서 일해
뮤지컬 매력에 푹 빠질 때쯤
문화예술 관련 업무와 첫 인연
낯선일이지만 공부하면서 일해
국내 뮤지컬 시장의 성장에 발맞춰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산업 브랜드로 육성하고자 기획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은 국내 최초 뮤지컬 페스티벌로 올해 8회째를 맞았다.
딤프는 2007년 첫 출범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국내를 넘어 아시아 대표 뮤지컬페스티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같은 성장세에 힘입어 엄선된 국내외 공식초청작을 비롯해 국내 창작뮤지컬 육성을 위한 창작공연 지원, 미래 인재 발굴시스템의 일환으로 마련된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 등을 통해 한국 뮤지컬 시장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딤프의 성장은 대구시는 물론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및 집행위원회, 지역 공연 관계자, 국내 유명 뮤지컬 제작자 및 배우 등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다.
특히 공직자 신분으로 묵묵히 자신의 업무에 충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도약의 기반을 다지는데 숨은 일꾼 역할을 톡톡히 한 인물이 있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대구시 문화콘텐츠과 박영주(여·42·7급) 주무관으로 딤프와의 인연과 발전에 힘을 보탠 활동 등에 대해 들어봤다.
◇화가를 꿈꾸다 입문한 공직
박영주 주무관은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5살 되던 해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대구로 발령받으면서 대구 사람이 됐다. 유년기를 시작으로 대구에서 초·중·고는 물론 대학(경북대 생물학과)을 졸업했다. 박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유 없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음악과 영화 등 다른 예술 장르에도 많은 흥미를 느껴 보고 들었다. 특히 그림에 소질이 많았던 탓에 화가를 꿈꿨다. 하지만 박씨는 일찌감치 화가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다. 장래에 화가가 되고 싶다는 뜻을 부모님께 전했지만 “열심히 공부하라”며 반대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꿈을 포기했다. 이후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학 시절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물학을 전공한 박씨는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당시 생물 교사 선발 수가 너무 적었다. 대학 졸업 마지막 학기가 되자 취업에 대한 걱정은 더욱 커졌다. 그러던 중 문득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사명감을 갖고 일한 부친의 모습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공무원으로 직업 선택 결심을 굳힌 박씨는 그 길로 공부에 매달렸다.
하지만 4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시험일 때문에 불안감을 안고 공부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간절한 마음과 노력은 헛되지 않아 결국 처음 치른 9급 지방 행정직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이후 신규교육을 받은 뒤 지난 1996년 10월 중구 대봉2동주민센터를 시작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녔다.
이어 중구청 몇 개 부서를 거치다 2005년 대구시 차량등록사업소로 자리를 옮기면서 대구시로 전입했다. 차량등록사업소에서의 업무는 녹록치 않았다. 중고차 이전·등록 업무를 맡았던 박씨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민원인은 물론 중고차 매매업체 직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박영주씨는 “당시 차량등록사업소에서의 업무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였다”며 “반면 많은 사람들을 접하다보니 사람 상대하는 노하우를 익혔고, 현재 하고 있는 문화예술 관련 분야의 일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우연히 맡은 문화예술 분야 업무
1996년 중구청에서 첫 공무원 업무를 시작한 박씨는 초임 시절 함께 근무했던 동료 직원과 3년의 연애 끝에 1999년 결혼을 하는 등 평범한 생활을 이어갔다. 결혼 후 자연스레 아이를 낳고 육아와 일을 병행했다. 하지만 ‘워킹맘’이 된 이후에도 박씨의 마음 속 한 구석에는 늘 그림에 대한 열망이 자리했다. 이는 곧 실행으로 옮겨졌다. 2003년 계명대학교 평생교육원의 그림 수업을 등록해 이후 몇 년 간 퇴근 후 수업을 받으며 못다 이룬 화가의 꿈을 달랬다. 유일한 취미활동인 그림 그리기는 한동안 멀리했던 문화예술 분야를 접하게 해준 매개였던 동시에 삶의 위안이었다.
특히 육아에 여유가 생기면서 지난 2007년 생에 처음으로 뮤지컬을 처음 관람하는 경험을 했다. 박씨가 본 작품은 ‘캣츠’ 오리지널 내한팀 공연으로 이때부터 뮤지컬의 묘미에 빠져들었고, 뮤지컬뿐 아니라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을 관람하기에 이르렀다.
우연이었을까? 박씨는 공무원 생활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2008년 가을 당시 대구오페라하우스 사업소로 발령받으면서 문화예술 관련 업무와 첫 인연을 맺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박씨의 업무는 발령 당시 열리고 있던 ‘제6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와 관련, 예산·회계 등 분야의 행정적 업무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는 기존 직원들로부터 원활하게 업무 인수인계를 받았던 것과 조직위원회의 탄탄한 운영 등의 도움으로 낯선 일이었지만 순탄하게 업무를 처리했다.
오페라하우스 근무 6개월 후 박씨는 조금 더 깊숙이 문화예술 분야 행정 업무를 접하게 된다. 대관과 함께 기획공연 보도자료 작성, 홍보 업무를 맡게 된 것.
박 주무관은 “뮤지컬 등 공연예술에 흥미를 느끼고 있던 시점에 오페라하우스로 발령을 받은 것은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다”며 “좋아했던 분야였던 점과 능숙하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당시 많은 오페라 관련 서적을 구해 공부했고 힘든 줄 모르고 일했었다”고 설명했다.
◇딤프와의 인연 및 공무원으로서 활동
오페라하우스 사업소에서 예상 밖의 원활한 업무능력을 발휘한 박씨는 2010년 2월 당시 딤프의 행정적 업무를 담당했던 부서인 대구시 문화산업과로 자리를 옮기면서 딤프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박씨가 처음부터 딤프와 관련한 실무를 담당했던 것은 아니었다. 문화산업과 발령초기 서무·예산·회계 업무를 담당했다.
이때 박씨는 딤프의 행정업무를 지원했던 팀 직원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기획 등 부분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이후 박씨는 딤프의 기획 등 부분의 행정적 업무를 수행하는 역사적인 인연을 마주한다. 2011년 11월 딤프의 행정 실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딤프의 도약 및 자립성에 중점을 두고 ‘숨은 조력자’ 역할에 집중했다
박씨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시범사업 선정에 따라 정부로부터 받은 특별교부금 7억원으로 ‘뮤지컬 도시 대구’ 홍보영상물을 비롯해 딤프 캐릭터 및 모바일 앱 제작, 한일극장 앞 동성로 지하상가 광장에 ‘뮤지컬 광장’ 조성 등 사업을 추진하는 등 딤프의 폭 넓은 홍보를 위한 투자에 주력했다.
박씨는 “지방브랜드 세계화 시범사업 공모 때 심사위원들이 대구가 뮤지컬 도시임을 잘 모르고 있던 탓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종 선정이 결정됐고, 딤프 업무를 담당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이었다”며 “잠재력이 아주 크다는 점을 집중 부각한 것이 심사위원들로부터 성장 가능성에 대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또 지난해 열린 딤프에서 예산 지원을 통해 지역 극단이 저예산으로 만든 창작지원작인 맥시어터의 뮤지컬 ‘사랑꽃’이 모든 공식초청작을 물리치고 대상을 차지했던 순간을 잊지 못할 기억으로 꼽았다.
박씨는 “지난해 ‘사랑꽃’이 대상을 받았을 때 예산 등 행정적 지원을 담당했던 공무원의 입장이 아닌 대구시민으로서 너무 뿌듯했다”며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과 큰 보람을 느끼게 해준 소중한 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세계적 축제로 발돋움 위한 각오
박씨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딤프를 세계적 축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 대구를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과 같은 글로벌 뮤지컬 대표도시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겠다는 각오다. 또 지역 작품 및 인적 인프라 수준을 끌어올려 대구가 뮤지컬 자생력을 갖는데 관심과 노력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는 물론 짬을 내 해외 유명 공연도시를 찾아 공연을 보는 등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특히 딤프가 단순히 뮤지컬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대구가 다양한 양질의 뮤지컬을 생산하고 유통·공급할 수 있는 종합 뮤지컬 타운으로 조성, 관광산업과 적극 연계해 글로벌 관광도시로 변모시키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박 주무관은 “딤프가 더욱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가족단위 작품을 무대에 많이 올리는 축제 역할을 강화하고 여행사와의 관광상품 코스 개발을 추진 중”이라며 “이 같은 다양한 노력을 통해 대구가 세계적인 뮤지컬 도시와 함께 글로벌 관광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김무진기자 jin@idaegu.co.kr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