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도전·상생 철학’ 국가경제발전 기여
‘끊임없는 도전·상생 철학’ 국가경제발전 기여
  • 김상만
  • 승인 2014.11.1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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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태 태광공업㈜ 대표

지역 경제계 향해 ‘쓴소리’

동반성장 정부 포장 수상

14세 때부터 사회 진출

1993년 경주서 회사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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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태 회장이 자동차 부품 생산 현장에서 근로자들에게 품질 개선을 지시하고 있다.
“동반성장, 대기업 오너들이 마음을 비워야 가능한 겁니다. 또 공무원들이 대기업보다는 대기업의 횡포에 몸살을 앓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정책을 수립할 때 동반성장이 정착될 수 있는 겁니다.”

지난 17일 동반성장위원회(위원장 안충영)로부터 정부포장을 수상한 손영태(68) 태광공업 대표는 “동반성장의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며 각계의 관심과 노력을 기대했다.

서울 코엑스에서 동반성장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청은 ‘2014년 동반성장주간’를 개최, 대·중소기업간 협력으로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한 유공자에 대한 포상했다.

훈장에는 하성민 SK텔레콤 대표이사와 권문식 현대자동차 사장, 포장은 손영태 태광공업 대표와 박재희 동서하이텍 대표이사가 수훈했다.

이밖에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산업부장관 표창, 산업부장관상, 중기청장 표창, 동반위원장 표창 등 총 60명이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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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태 태광공업㈜ 회장(왼쪽 두 번째)이 지난 17일 동반성장주간 행사에서 정부포장을 받고 있다.
◇‘MR. 쓴소리’ 동반성장 정부 포장 수상

지역에서는 드물게 정부 포장을 수여한 손영태 회장을 18일 경주시 외동읍 모화산업단지에 위치한 태광공업㈜에서 만났다.

손 회장은 “행정가, 연구원들이 책상머리에서 긁적이는 문서로는 동반성장을 이룰 수 없다. 이들이 대기업과 얽혀서 돌아가는 중소기업의 현장을 찾아 몸으로 체험할 때 보다 실질적인 정책이 나오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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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문대로 지역 경제계의 ‘MR. 쓴소리’였다.

이런 자신감은 지난 1993년 7명으로 출발한 태광공업(주)을 21년이 지난 현재 직원 250명의 중소기업으로 성장시키면서 함께 뒹굴고 경험한 뼛속까지 현장에서 다져진 내공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손 회장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매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도 한마디 꼬집었다.

“일자리 만들기 정책수행을 위한 위원회를 살펴보면 현장의 어려움을 전하고 진짜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렇게 해서는 성과를 얻을 수 없다”면서 현장을 아는 근로자, 기업인의 참여를 강조했다.

태광공업은 자동차 램프, 도어트림 내장품, 시트백 등을 생산해 현대와 기아자동차에 납품하는 2차 협력업체다.

최근에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 스바루와 독일 크라이슬러에도 동일제품을 수출, 연매출 6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태광공업도 현대자동차의 노조의 파업 등으로 생산라인이 멈추면 위기에 직면하게 돼 손 회장는 현대차 노조에도 쓴소리를 마다 않는다.

손 회장은 현대차 노조 파업 직전이었던 지난 8월 “현대차 파업은 영세한 협력업체들에는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며 “대기업과 근로자들은 협력업체의 어려운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이어 “현대차 파업으로 운영자금이 부족한 2ㆍ3차 협력업체는 업체당 월 10억~50억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하고 이어 은행권 자금줄도 막혀 부도에 노출되는 상황에 직면한다”며 현대차 노조가 협력업체의 어려움을 돌아보는 상생과 동반성장의 자세를 견지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배고픔을 성실로 극복하다”

1946년 경남 밀양 출신의 손 회장은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내고 14세 때부터 사회에 뛰어들어 갖은 고생 후 오늘날의 태광공업을 일궜다.

친구들이 중학교로 진학할 때 먹고살기 위해 부산의 한 치과에서 치기공 일을 배웠다.

당시 치과의사였던 박말복(작고)씨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밑에서 일하던 어린 소년 손영태의 착실한 모습을 눈여겨보고 앞길을 열어줬다.

기술을 전수하고 2년 후 야간 중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손 회장은 “그때 내가 박말복 원장님을 만난 것은 불행 중 다행 이었다. 그 분이 내게 베푼 따뜻한 마음은 내가 지금껏 살아오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군대 제대 후 부산에 울산으로 옮겨 치기공 일을 하면서도 손 회장은 자신을 보살펴준 박 원장과의 연을 이어갔으며 지금도 박 원장의 아들, 딸과 형제 이상의 정을 나누며 지내고 있다.

치과에서의 생활은 39살이던 1984년까지 이어졌다. 타고난 성실한 자세와 한번 배우면 연구하고 또 다른 기술로 응용하는 자세로 손 회장는 그 업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손 회장은 치기공일을 하면서 항상 목이 말랐다. 당시 월 400만원의 엄청난 수입을 올렸지만 치과 의사와 환자, 정해진 사람들만 만나면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 속에서 항상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게 됐다.

그러던 중 1985년 우연한 기회가 손 회장의 심금을 두드렸다.

당시 손 회장의 치료를 받던, 현대자동차 시트를 생산하는 중소업체인 울산시 한일화성 곽현경 사장이 같이 일할 것을 권유하면서 불혹의 40살에 손 회장의 제 2의 인생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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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외동읍 모화일반산업단지내 태광공업㈜ 전경.
◇나의 삶은 “멈출수 없었던 도전”

손 회장이 일정 지분을 투자하고 한일화성의 이사로 새 출발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변에서는 “20년간 개척한 안정된 길을 마다하고 앞날이 불투명한 무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주변의 만류에도 남다른 정신과 손재주를 가진 손 회장는 그래도 자신감이 있었다.

한일화성 이사로 일하던 중 손 회장은 세계 최고 자동차 전시회로 꼽히던 도쿄모터쇼 등을 돌아보면서 자동차 부품이 ‘쇠에서 플라스틱’으로 급변하는 상황을 눈여겨 봤다.

손 회장은 “이제는 자동차 부품의 살길은 플라스틱으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사출이다”고 직감, 곽 사장에게 제안을 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항상 도전의 길을 마다 않던 손 회장는 1993년 경주시 외동읍에 전 재산을 들여 태광공업의 전신인 태광정밀을 설립했다.

회사 설립 초기 판로개척과 직원수급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손 회장은 현장 근로자와 딩굴며 회사의 살길을 찾았다.

“하면 된다”는 불굴의 투지와 “다함께 잘살아보자”는 상생의 철학은 태광정밀을 태광공업㈜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경주는 이제 나의 고향”

밀양에서 출생, 부산과 울산을 거쳐 경주에서 자리잡고 기업인으로 성장한 손 회장는 이제 오롯이 경주사람이다.

손 회장이 1998년 텃세가 센 경주상공회의소 16대 회장에 출마, 당선된 것은 경주와의 인연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됐다. 경주상공회의소 회장에 다른 지역 출신이 당선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손 회장은 2003년까지 17대 회장으로 연임하면서 상공회의소 빚 18억원을 청산하는 기틀을 마련한 것은 물론, 중소기업 회원사 확대에 일조했다.

또 한가지 큰 족적은 손 회장이 부도난 조선컨트리클럽을 ㈜경주신라컨트리클럽으로 재탄생 시킨 공로다.

경주상의 회장으로 있던 2001년 경주의 자랑이었던 조선컨트리클럽이 부도나 다른 지역 업체로 넘어가 위기에 처하자 손 회장은 골프장 인수추진위원장을 맡아 개인돈 5천만원을 투입, 주주회원을 모집하고 ㈜경주신라컨트리클럽으로 새롭게 출범시켰다.

경영정상화 이후 손 회장은 지분으로 돌아온 3억원을 경주상공회의소 빚을 청산하는데 쏟아붓는 등 경주사랑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경주의 뿌리를 지키는데도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골프장 명예회장으로 가끔씩 라운딩하면서 지난날을 되새겨 본다”는 손 회장은 “골프장 경영을 정상화시키고 또 신라라는 이름을 지어 후대에 남긴 것은 경주에 보람된 흔적은 남겼다고 생각한다”고 자부했다.

◇“직원은 한 가족”

쉴틈없이 불꽃같은 인생을 살아온 손 회장은 이제 태광공업㈜이 후대에도 흔들림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반석에 올리는데 여생을 바칠 각오다.

부인인 유상순(65) 여사와 상면, 상경, 운욱씨 등 세딸, 회사 부사장으로 있는 막내 아들 정우(37)씨를 둔 손 회장는 “어려운 결정을 할때마다 묵묵히 따라주고 응원해준 부인에게 항상 감사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손 회장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항상 직원은 한 가족이라고 생각, 이들의 안정적인 생활과 학업증진에도 신경을 쏟고 있다.

그래서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 회사내 야간대학 설립이다.

손 회장은 “2016년 개학을 목표로 경주 지역 전문대학과 연계해 공장 안에 학위를 줄 수 있는 야간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2개 이상의 전문대학과 양해각서(MOU)를 체결, 2년제 야간대학을 운영해 졸업 학위도 수여하고 직원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한편 전문지식도 함양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방침은 손 회장의 중소기업의 인력수급이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고 또 인재를 양성한다는 계획아래 진행 중이다.

손 회장은 “고졸 취업자들이 안정적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소기업 선진화를 위한 첫걸음 아니겠냐”고 힘줘 강조했다.

한편 2011년 7월부터 2013년 7월까지 동반성장위원회 실무위원, 이후 동반성장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인 손 회장이 이번 동반성장주간에서 값진 정부 포장을 받은 것은 회사 경영에 다양한 동반성장과 상생 프로그램을 도입, 정착시킨 공을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회사내 대학 부설 신설 추진 이외에도 △일병행 학습제 시행(2014년 3월부터 현재까지) △중소기업 공정 혁신 컨설팅을 통한 협력업체 동반성장(2012년 7월~2013년 5월) △자동차 2차 협력업체 협력회 소통을 통한 상생 정책 △경북도, 울산시 산학 협력 체결 및 인턴제 실시 △MIS 도입을 통한 고객사 및 협력사의 정보교류 및 원가절감 △고객사와 동반 해외 아이템 개발 및 생산으로 통한 수출 △품질 확보된 Direct 증착 개발을 통한 원가절감 및 환경 보호 △공조 시스템 등 도입을 통한 원가절감과 경쟁력 확보 △경주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정책 추진 등 꾸준한 동반성장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김상만기자 ksm@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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