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벽화거리, 허허실실
김광석 벽화거리, 허허실실
  • 승인 2014.11.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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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교 시인
대구 중구 방천시장 김광석거리(행정명: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 세 들어 산 지 3년. 필자는 2012년에 들어와 2014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인보호구역’이라는 집필실을 두고 시를 쓰고 있다.

이 거리가 세인(世人)들 입에 오르내리며 폭발적 관심을 끈 건 작년 여름부터다. 2013년 1월엔 MBC 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 스타 김광석 특집’편이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올랐다.

이때 잠깐 김광석 거리가 소개되었고 곧 이어 그 분위기를 타고 5월엔 경북대학교 대학축제에서 ‘김광석의 밤’ 특집으로 그와 인연이 있는 여러 대중가수를 초청해 그의 노래를 불렀다. 그해 8월엔 JTBC ‘히든싱어-김광석 편’이 방영되면서 김광석 벽화거리는 그야말로 유명세를 탔다. 이후 대한민국 여느 관광지만큼이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고, 지난 5월 황금연휴 때에는 밀려갈 정도로 거리 가득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나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 낙후 지역이 상업지구나 새로운 주거지역으로 변질되는 형태)’이 가속화되었다. 서울 홍대문화가 상업화되는 데는 그래도 몇 년이 걸렸다. 김광석 거리는 정확히 6개월이다. 상주하던 예술가들은 이런 현상을 미연에 막고자 의견을 주고받았으나, 젠트리피케이션 그의 진격은 속수무책이었다.

경제적 이익을 쫒는 점포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수십 년 동안 장사하던 분들은 하나 둘 밀려났다. 전부터 있던 점포가 욕심을 내어 여러 개 점포를 ‘알박기’도 하고, 또 외부에서 유입된 자본으로 새로운 고깃집이 하나 둘 들어섰다. 음식점, 술집이 즐비한 먹자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예술가들도 그들의 작업공간을 자본에 내어주고 밀려나야 했다.

대개의 건물주는 예술가가 밀려난 공간을 고깃집이나 술집, 카페 등으로 바꾸길 원했다. 그들은 예술가보다 최소 4~5배의 세를 지불할 의사가 있기 때문이다. 거리문화는 차츰 변질되었고 전부터 뜻을 펼치고 있던 예술가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이런 일련의 행태는 지자체의 안일하고 비전문적 대응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관광객(사람 숫자)만 많이 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저급한 의식수준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다. 마침 최근 벽화 리뉴얼 작업과 맞물려 빛(?)을 더했다. 벽화 그리기 작업은 공모와 심사를 했음에도, 관할 지자체(중구청)는 그리는 내내 작품에 대해 도를 넘는 칼질을 했다. 노란색 나비는 특정 대상을 생각나게 한다는 둥, 김광석과 안 닮았다는 둥, 색감이 어떻다 등등. 심지어 심사 통과해 완성된 작품이 메인(?)이라는 이유로 지자체 압력에 의해 지워지고 말았다. 예술가는 없고 구청 편의주의가 판을 친 벽화그리기였다. 외에도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적이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예산을 지자체가 지원했기 때문이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예술작품 완성시키는 데 자본이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면 창작자는 예술가일까 기술자일까’ 또 애초에 벽화 작업을 건설사에 맡겼다고 한다. 벽화를 단순히 기술자를 사서 그림 하나 그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저 수준 이하의 발상이라니. 가히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거리의 벽을 시설물로 볼 것인가 예술 공간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의견차이라고 하기엔 너무 졸렬하다. 하물며 여기는 김광석 거리다. 김광석은 대체 공무원들에게 어떤 사람일까 따져 묻고 싶다. 김광석은 지상파를 통해 유명해진 가수가 아니다. 방송보다는 관객을 직접 만나는 현장(무대)을 통해 기억되고 추억된 사람이다. 유명한 예술가가 아니어도 재능 있는 예술가 또 시민이 함께 꾸미는 거리여야 한다. 지자체는 예산을 편성하고 사후 관리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그 역할이 한정되어야 한다. 다른 벽화 거리는 몰라도 이 거리에서만큼은 예술가가 예술가로서 작품이 작품으로서 평가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일반 관광지나 여느 거리와 똑같은 잣대로 보는 편협한 시각은 결국 예술가를 죽이고 ‘김광석거리’를 죽이는 것이다. 예술가가 있고 김광석이 있고 노래가 있어 사람들이 붐비는 것인데, 예술가가 사라지고 나면 이 거리는 먹자골목으로 탈바꿈된, 저급상업화의 길로 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 이후 풍경은 상상하기도 싫지만 외부자본과 상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황폐한 골목 그리고 상처받은 주민만 남을 것이다. 예술가들도 더 이상 찾지 않는 죽은 거리가 되는 것이다. 김광석거리 허허, 실실 웃음만 나온다.

필자의 글을 읽을 때쯤이면 여러분은 쫓겨난 시인을 읽겠지만, 다행히도 김광석 거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몇몇 예술가를 아직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겐 따뜻한 격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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