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과거로의 시간 여행
<대구논단> 과거로의 시간 여행
  • 승인 2009.07.2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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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규 (대구보건대 안경광학과 교수)

일주일 전 해외 산업체 및 대학과의 교류협력을 위해 5일간 몽골을 다녀왔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트라에서 며칠간 공식일정을 다 마치고 가까운 외곽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시내 중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사진으로만 접하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그 속에서 무리를 지어 풀을 뜯는 가축들,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어린 양치기 소년들, 그리고 한없이 순박하고 선해 보이던 사람들 …. 그것이 몽골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자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추억이다.

몽골에서 우리나라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비교적 좋다고 한다. 원래 자기나라 땅인 내몽골을 빼앗아 갔다는 피해심리가 만연해 중국인들과는 특히 사이가 좋지 않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인해 일본인들에 대한 이미지도 아직은 앙금이 조금 남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트라 시내에는 호화빌딩이나 고급차를 구경하기가 힘들었고,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구형 중고 자동차들과 버스들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다.

고려시대 우리나라와 오랫동안 충돌했던 아픈 과거도 있지만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한 몽골. 13세기경,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몽골이 지금은 아시아에서 가장 못사는 국가로 전락해 현재 몽골의 전체적인 경제수준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그래서 짧은 기간이지만 몽골에 머무는 내내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웠던 우리나라의 40~50년 전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의 풍습이 그러하듯 몽골 유목민들도 찾아온 손님들에게 아주 친절했다.

모르는 사람이나 외국인이 찾아와도 금방 집에 있는 튀긴 빵(보르체크)이나 마주(아일락)를 내놓으며 반갑게 맞이했는데, 대접이 이쯤 되면 방문한 손님들도 무언가 내 놓아야 하는 분위기로 흐르게 된다.

보통 사탕이나 담배, 학용품 등 아주 작은 것에도 무척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그런 몽골 사람들의 모습에서 과거 미군병사들에게 “기브 미 초콜릿”이라며 과자와 껌, 사탕, 연필 등의 선물을 바라던 수십 년 전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위도 때문에 몽골의 여름은 낮이 유난히도 길었는데, 밤 9시가 넘어도 주위가 밝아 시계가 없으면 시간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해가 저물고 별이 총총 박힌 몽골의 밤하늘은 너무나도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어린 시절 들판에 누워 바라보던 우리나라의 밤하늘도 그만큼 아름다웠을까?

몽골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철저하지 못해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때도 있었다. 10시에 온다던 버스가 11시가 다 되어서 모습을 도착하는가 하면, 오후 3시에 보내준다던 승마용 말이 6시가 넘어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단다.

그래도 현지 사람들의 모습에서 조급함이나 미안한 기색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의 만만디가 울고 간 나라가 몽골이란다. 대국적 기질 때문인지 그들의 시간관념 속엔 `내일 또 내일’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어 오늘 안 되면 내일 하고, 내일은 또 내일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과거 우리나라에도 약속시간보다 늘 늦게 나타나는 한국 사람들의 시간관념을 빗대어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사용하곤 했었다. 약속과 시간관념을 철저히 여기는 국가의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얼마나 한심하게 여겼을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지금 몽골에서는 한국을 `솔롱고스’라 부른다. `솔롱고’는 무지개라는 말로, 아름다운 무지개 같은 나라라는 뜻이다. 거리에 달리는 자동차의 상당수가 한국 차이고 생필품의 대다수가 한국제품인데다 우리나라와의 국교 수교 이후 지금 몽골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다. 과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한국처럼….

개방의 물결과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급격한 변혁을 겪고 있는 과도기의 몽골이 문명의 이기를 향해 돌진하는 과정에서 자칫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순수한 태고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5일 동안 있었던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끝이 났지만, 눈에 담기 송구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던 자연과, 하루 종일 초원을 헤집고 다닐 때 해맑은 미소를 건네던 몽골 아이들의 순수함, 그리고 그 땅이 품고 있는 초자연의 대 섭리를 십 년, 이십 년 후에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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