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처럼 누군가에게
사정없이 덤벼 보았으면
거침없이 주먹질을 해 보았으면
나도 너처럼 누군가의 창문을 거세게
흔들며 소리내어 엉엉 울고
미친 듯이 흘러 들어가 보았으면
그러나,
그러나, 사랑이여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가만이 제자리에 서 있는 것 하나로도
슬픔이 된 나의 사랑이여
하늘에서 잠시 머물다가 뼈 없는
지상의 살 속으로 누가 지나갔는가
그 젖은 땅속에 나는 또다시
채송화를 심는다.
▷`서설시’ 동인으로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여성시인 황영숙의 `소나기’는 비 가운데, 사정없이 덤비고 거침없이 주먹질 하고 때로는 `부수고 부수어서 누군가의 가슴에 / 미친 듯이 흘러 들어가’는 소나기다.
소나기는 천병만마(千兵萬馬)를 몰아 휘달리는 거침없는 위세를 지니고 있음을 시인은 자신의 내면의식과 결부시켜 읽는 이의 가슴을 적시는 시적 테크닉을 보여 주고 있다.
감성의 소나기를 통해 나약한 실체에 대한 강한 자의식은 그 존재의 애절함을 은유적으로 잘 표출하고 있는 시편이다. 예고도 없이 찾아와 억세게 쏟아 놓는 소나기와는 달리 `소리내어 엉엉 울고 / 몸부림쳐’ 볼 수도 없는 심상을 대위법으로 나타낸 데서 시선이 모아진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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