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전양면
<기고> 동전양면
  • 승인 2009.07.2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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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평생직장인 공직자의 외길을 퇴직하면 무대 뒤로 사라진다고들 한다. 동전앞면이 각박한 생존경쟁에 `앞만 보고 사는 세속의 삶’이라고 하면 동전뒷면은 느긋하게 인생의 가려진 부분인 `뒤를 보고 사는 자연의 삶’으로 앞만 보고 바빠서 못 다하고 아쉽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려는 제 2의 인생의 또 다른 길 일 것이다.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고 하는데 3번하고도 절반 정도 지난 35년 전 새마을 운동이 한창인 1974년 한여름 청포도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7월 초, 햇살이 눈부시고 따가운 한 낮, 오래된 기와와 함석지붕에 목조건물인 군청청사 군수실에서 낡은 선풍기 한대가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날, 신고를 받는 군수님과 신고를 하는 신규발령자 15여명을 번갈아가며 등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던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이었다.

먼동이 트는 새벽에 어김없이 앰프에서 `새마을 노래’ “잘 살아보세”가 잠을 깨워 조기 청소하러 시가지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쓰레기를 치우고 했었다. 마을안길포장과 퇴비증산, 하곡, 추곡수매는 물론 보리파종, 모내기, 피 뽑기, 벼 베기 등 영농지도에 논두렁 밭두렁을 작업복인 재건 복에 새마을 모자를 쓰고 운동화바닥이 달토록 별보고 출근하여 별보고 퇴근하는 힘든 시절이었다.

자원빈국에다 좁은 땅에 `교육과 수출’만이 가난의 대물림을 극복한다는 지도자와 국민의 혼신의 투지로 공직등용 3년차인 1977년 말에는 선진국의 초석이 되는 경이로운 수출 100 억 달러 고지를 달성을 하여 감개무량했다.

초임 면사무소 근무 할 때부터 상주시청에서 퇴직할 때까지 국가시책과 영농지도에 주민들과 밤낮으로 고락을 같이 했듯이 모든 분야에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불철주야로 열정을 바쳤기에 쌓이고 쌓여서 오늘날 수출대국 신화창조에 일조하고 잘 살게 된 것 같다.

정년퇴직하고 처음 몇 달간은 지겹도록 시간이 가지 않고 `고장 난 벽시계’ 인양 세월이 멈추어 있어 시시때때로 먹고 자고 또 자고하여 세월이 가기만 기다리는 아무쓸모도 없는 동물의 삶을 한동안 살아갔다.

하지만 인생의 절반이상은 동전의 앞면인 양지에서 빠른 시간에 쫓기듯 `내 자신을 위해 살기’에도 바빴다. 나이가 드니 동전의 뒷면인 음지에서 여유로운 시간들을 봉사와 희생으로 `남을 위해서도 살아야’ 빚을 갚는 기분이 들어 힘들고 궂은일도 마음에서 우러나 스스로 하게 되는가 보다.

이 세상에서 모은 재물과 연마한 기술을 동전의 뒷면으로 들어가서 들추어 찾아내 이 세상에 하나, 둘씩 헤아려 채워가며 다 쏟아내고 육신은 비어 빈껍데기로 깔끔하고 가뿐하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인생의 섭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

김 종 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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