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950년 6월'> 5.연적에게 포로가 되다(4)
<소설 '1950년 6월'> 5.연적에게 포로가 되다(4)
  • 대구신문
  • 승인 2009.08.1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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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이 마지막 잔이라며 남은 대로 따르고는`간빠이(건배)’하고 선창을 하자 우리들도 간빠이 하고 재창을 했으며 이것으로 송별연이 모두 끝나 다른 친구들은 보내고 나는 대장이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그대로 남았다.

대장이,“누부야, 술상 새로 봐 온나” 라고 했다.

“그만 묵자 나는 술이 첼라칸다” “사나 자식이 막걸리 두어 잔 묵고 췌마 우야노, 그래가 큰일 하겠나?”누나가 새로 상을 보러 나간 사이 대장이 입을 열었다.

“호진아, 실은 이번 겨울 방학을 하자마자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청요리집 금호관에 보이로취직을 해서 한 달쯤 되었는데 내가 하는 일은주로 음식을 자전거에 실고 배달을하거나 채소를 다듬는 일을 한다,오늘은 한 달에 한번 쉬는 날이고 엄마는 일본에 밀항할라고 부산에 갔는데 잘될지 모르겠으나 자리 잡으면 우리를 데려 가겠다고 했다, 그라고 나는 이세상에서 호진이니가 참, 냉천이라고 불러달라 캤제, 냉천이 니가 제일 자랑스럽고 정말로 고맙다, 이 시골구석에서 이 나이에 미국유학을 간다는 기 보통일 이가, 또 지난 가을 목욕탕 사건 때문에 좆나게 얻어맞고 달리기 연습하는데 니가 돈 천원하고 멜띠기를 보내 줘서 내가 그거 받고 우리엄마, 누부야 하고 같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일본에서 빈손으로 귀국하여 아부지까지 돌림병으로 잃고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은 거다.” 하면서 또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나도 가슴이 찡하여 눈물을 글썽이며,“그때는 내가 말을 잘못해서 생긴 일인데 정말 미안하게됐다.” “아이다 그때 경찰에 있는 느그 큰형님이 안 왔으마 일이 그 정도에서 쉽게 끝났겠나, 정말 고맙다 호진아, 그건 그렇고 니 미국 가마 영순이하고 우리 선새임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있겠나?” “엄마, 아부지 하고도 이별하는데 니말따나 사나이가 고것도 못 참으마 무슨 큰일을 하겠노?” “그런데 니는 영순이하고 선새임하고 누가 더 좋으노?” “그기사 두말하면 잔소리지, 당연히 선생님이 더 좋지.”“그것참 골치 아프네, 영순이 하고는 나중에라도 혼인을 할 수 있지만 선새임하고는 그기 안되잖아 이 바보천치야, 더구나 선새임한테는최중위가 있는데…” “최중위는 버얼써 일선에갔다.” “요새 우리 집에 오는 군인들이 이야기하던데 최중위 집이 서울에서도 큰 부자라 카면서 일선에 가도 후방으로 빠지는 거는 시간문제라 카더라.” 나는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으나 내색을 않고,“그래, 가장 깨끗한 척 하면서도 제일 많이 썩은 기 군대 아이가, 방위군 사건 한번 봐라.” 하면서 신문에서 본 엉뚱한 예기를 끄집어 냈다.

“나도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최중위는 자꾸혼인을 하자 카는데 조선생이 병이 너무 깊어서안 할라 칸다 카더라, 그라고 그런 골치 아픈 이바구는 다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거고 우리같이 배고픈 사람들은 이 좋은 안주에 술이나 실컨 마시자.” 하고 대장의 누나가 새 상을 들여오는데 커다란 쟁반 위에 처음 보는 청요리가수북이 담겨있고 빼갈도 병체로 올려져 있었다.

내가 눈이 휘둥그래지자 대장의 누나가,“도련님 너무 놀라지 마시와요, 아니지, 관롄가 뭔가를 올렸으니 서방님이지, 서방님 이 술은 소첩이 사는 겁니다,술값은 작년 가을에 받은 것으로 충분 하나이다.”대장도 거들었다“내가 우리주인 쭝궐러(중국사람)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만든 최고급 요리인데 우리 누부야가돈 안주면 내 월급에서 까라 캤더니 호진이 하고 먹는 거라면 돈줄사람 얼마든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잘 묵어라 카더라.” 대장의 누나는 내 옆에 바싹 다가앉아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서방님 이제 미국가시면 영순이도 잊어버리고 조선생도 잊어버리고 소첩만 기억해 주시와요, 자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드시와요” 라고 하자,“누부야 술챘나,자꾸 서방님 서방님 카지 마라, 사람 민망 하그로…” “야 이자슥아, 내가 니 보고 서방님이라캤나, 호진이는 이제 어른이 됐으니 기방출입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장가를 갔으마 첩사이(첩)까지도 둘 수 있다, 알기는 아나, 총각딱지는 천사(도리 없이) 내가 떼줘야 되겠네 호호호…” “지랄하지 말고 요리나 묵어라” 하고 대장이 그 특유의황소 눈알을 부릅뜨자 누나가 조금 주춤해 졌다.

우리는 모처럼 귀한 요리를 안주로 하여 빼갈을 계속 들이켰으며 나는 아버지의 체질을 닮았는지 독주를 주는 대로 받아 마셨고 대장의 유행가 소리와 누나의 여자냄새도 정말 좋았다.

술이란 정말 좋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부자들이 기생집에 드나드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또 대장은 미국 가면서 점심이라도 사먹으라며 기어이 돈 이백 원을 내 주머니에 넣어주었고 나는 끝내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심한 갈증으로 잠이 깨어 더듬거리며 윗목에놓인 자리끼 한 그릇을 다 들이키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뿔싸 나는 아랫도리가 벗겨져 있었고내 옆에는 대장의 누나가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알살로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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