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950년 6월'> 6.선생님 시집가던 날(1)
<소설 '1950년 6월'> 6.선생님 시집가던 날(1)
  • 대구신문
  • 승인 2009.08.2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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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생님은 학교에서 십 리쯤 떨어진 채약산(산 이름) 밑 과수원 집의 고명딸로 태어나 일찍부터 경성(서울)으로 올라가 공부를많이 하여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으나 몸이 약해서 요양을 겸해 고향에 있는 우리학교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자취방에는 가끔 본가에서 어머니가 와서 며칠씩 묵다 가고 머슴들이 쌀이나 반찬거리, 과일 등을 가져다 주는 것을 보았다.

나는 퇴학소동 이후 선생님과 더욱 가까워져우리 반은 물론 전교에서 유일하게 선생님의방에 무상출입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으며우리누나도 가끔 선생님의 일을 도와 주고치마저고리도 여러 벌지어 주기도 했다.

나는 선생님의 입맛에 따라 바람같이 달려가 피난민이 차려놓은 건설빵집에서 빵이나 도넛을 사 오기도하고 때로는 청국집에서 낯선 요리를 시켜먹기도 했다.

나는 하루 하루가 꿈만 같았고 선생님이 이야기 해 주던 동화 속의 왕자가 된 기분이었으며 장날이 되면 선생님이 앞장을 서고 나는군용전화선으로 만든 장바구니를 들고 뒤따랐으며 길에서 만나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꾸벅꾸벅 절을 하면 나는 덩달아 헛기침을하며 으스댔다.

“호진이는 장차 커서 뭐가 될래?” “선생님요,지는요 고등고시 공부해서 경찰서장이 될랍니더, 시험에만 합격하면 나이가 암만(아무리) 적어도 서장이 될 수 있다 캅디더.” 아버지의 서찰(편지)을 들고 대구경찰서로 큰형님을 찾아갔을 때 마침 찝차에서 내리던 경찰서장의 그늠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호진아 네 말이 틀린 건 아닌데 세상에는 그보다 더 지위가 높고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단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우선 영천군내에서 한해에 한두 명밖에 못 들어가는 경북중학교에들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에 가야한단다.” 하며 그 비싼 운동화까지 사 주었다.

나는 그 운동화를 학교에 갈 때만 신었고집에 오면 먼지를 털어 방안에다 두고 신주모시듯 했다.
선생님은 기침을 자주하며 늘 약을 먹었고가끔 대구에 있는 큰 병원에도 다녔으며 몹쓸병에 걸려 오래 살지 못 할거라는 소문도 들리고 결근을 하기도 했다.

이럴 때는 지서 옆에 있는 재생의원의 의사가 달려오고 나는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떨며옆에서 잔심부름을 했으며 선생님도 혼자 있기가 무섭다면서 밥을 하러 온 누나랑 나와함께 자기도 했다.
일본에서 살다 온 육학년 짜리 킨타로가 이를 보고 내게 말했다.

“호진아, 문디가 아 잡아 묵는 거 니 알제, 느그 선새임이 문디병에 걸리가 니 잡아 묵을라칸다 카더라, 선새임하고 같이 자지 마라.”“이새끼가 뭐라카노, 우리선생님이 문디병에걸렸다고 누가 그카드노, 니가 지어냈제, 이새끼 쥑이뿔라.”하고 커다란 돌덩이를 집어들자 킨타로는 혀를 날름거리며 천리 만리나내뺐다.

이러던 와중에 경상북도 장학관이 우리반수업을 참관하게 되어우리는 며칠 전부터 교실청소를 하고 못다한환경정리용 장식물품들은 토요일 오후에 선생님 본가에 가서 머슴들과 같이 만들기로 했다.

얼빵(어리숙)하게 생긴 중머슴(중간 나이의머슴)이 선생님과 나를자전거에 태우고 금호강 다리까지는 잘 갔으나 과수원 길로 접어들면서는 길이 나빠 자전거를 끌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에 아이를 몇 둔 어른이 아니면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금방 장가를 간 동네 청년들 정도는, “돌쇠야, 느그 색시 이쁘드나, 첫날밤에 니 뭐했노?”하다가 지게 작대기로 얻어 맞기도 하고,“칠바우야, 오늘 내 영천장에 갔다가 뚝다리밑에서 똥떡 꿉어 파는 느그 엄마 만났데이,느그 엄마가 내보고 찔찔 울면서`우리 칠바우쫌 딜다 주소’카드라, 니 느그 엄마한테 안 갈래?” 하다가 머리를 쥐어 박히기도 했다.

나는 또 중머슴을 놀려주고 싶었다.

“수자네 술도가에서 일하는 영달이는 자전거에 술통을 열 개씩이나 실고도 자동차보다더 빨리 가는데 니는 사람 둘 실었다고 못 타고 가나?” “쪼만한 기(조그마한 게) 몬하는소리가 없네, 선상님이 다치까바 끄직고 가는기다.” “피- 못 타면서, 다 큰 기 자전거도 못타고 끄직고 가네, 동네방네 소문 내 보자, 대구 금달래(미친 여자)한테 장가보내자.” “이자슥이…” 중머슴이 애가 달아 나를 때리려는시늉을 하자 선생님은 허리를 잡고 웃으며 좋아했다.

과수원 길을 벗어나자 산길 양쪽에 구절초꽃이 온 산을 하얗게 덮고 있었으며 우리는 선생님 집 과수원이 내려다 보이는 산모퉁이 풀밭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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