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미뢰....음식과 바람난 수필가의 ‘맛있는 이야기’
<신간>미뢰....음식과 바람난 수필가의 ‘맛있는 이야기’
  • 황인옥
  • 승인 2015.06.10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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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지음/학이사/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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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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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이요~~”

시골 시장터에서 각종 곡물을 튀기는 아저씨의 ‘뻥이요’ 소리와 함께 ‘펑’하면서 잘 튀겨진 새하얀 쌀튀밥이 눈송이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 쌀튀밥이 엿기름과 뭉쳐서 얇게 펴 발라 자르면 달콤하면서도 아삭한 강정이 완성된다.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강정 만드는 과정이다.

김은주씨의 어머니가 어릴 적 만들었던 강정은 과정이 좀 달랐다. 바닷가 자잘한 돌맹이를 잔뜩 주워 그 사이사이를 쌀로 채워 불 위에 얹어 놓으면 돌맹이 사이에서 쌀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튀어오른다. 그렇게 튀겨져 나온 쌀튀밥과 엿기름을 섞으면 비로소 강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대개 여기서 강정 만들기는 끝이 나지만, 자연요리연구가인 김은주씨는 공정 하나를 더 추가한다. 봄철 산과 들에서 채취해 말려놓은 각종 들꽃과 푸성귀들을 강정 위에 시골소녀처럼 소담하면서도 순박하게 얹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강정은 음식이라기보다 차라리 아트다. 만들어지기가 무섭게 서울 인사동 멋쟁이들의 차 상 위 다식으로 시각과 미각을 희롱한다. 중견 수필가인 김은주 씨는 요즘 자연요리연구가로 더 통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릴 적 엄마가 쌀튀밥을 돌로 튀기고 산과 들에서 따온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주시던 기억이 머리속을 맴돌았어요. 내가 아니면 누가 엄마의 소중한 음식 이야기를 세상과 나눌까 싶어 시작하게 됐어요.”

최근 출간된 수필가 김은주의 수필집 제목이 흥미롭다. ‘미뢰(味?)’. 맛을 관장하는 신체 기관이 수필집의 제목이다. 이 제목은 은유라기보다 책의 내용을 가장 잘 드러낸 직설이다. 책에 물을 묻혀 비틀어 짜면 청도 각북의 푸성귀와 아트보다 더 아트 같은 그녀의 강정이 뚝 뚝 떨어져 나올 것만 같을 정도로 책에는 그녀가 청도에서 강정이라는 전통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시골 아낙의 도시 적응기가 그득하다.

부산일보와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이미 2권의 수필집을 낸 중견 수필가이지만, 현재 그의 몸과 마음을 오롯이 관장하는 것은 음식이다. 자연요리 연구가로 대구와 청도를 오가며 채집음식을 만들고 있다.

채집음식은 말 그대로 자연에서 직접 채집한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유기농, 생채식, 로컬푸드를 넘은 건강 열풍에 마침표를 찍는 웰빙 종결자다. 원시의 식생활로 돌아가 각종 비료와 농약으로 찌든 식품에 병들어 가는 육신과 정신을 맑게 하자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채집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죠. 하지만 저희 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음식들을 해 오셨어요. 미래를 꿰뚫은 선각자라기보다 6남매 자식들에게 좋은 음식을 해 먹이고픈 모성애의 발현이었겠죠. 제 음식들은 제 몸이 기억하고 있는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요리법에 제 감각이 추가된 것이라고 할까요.(웃음)”

지난 8일 만난 김 씨는 온통 음식이야기만 했다. 세 번째 수필집을 내고 한 번도 받기 어렵다는 신춘문예에도 두 번이나 당선된 중견수필가인 그녀가 아닌가. 수필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예전에 수필 쓰기가 대단히 의도적인 글쓰기의 전형이었다면, 현재의 글쓰는 물이 넘쳐서 밖으로 흘러넘치듯이 저절로 나온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글을 작정하고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어릴 때 부터 워낙 책을 많이 읽어서 그것이 흘러넘치다 보니 글이 나온 것 같아요. 직접적인 계기는 주변의 친한 친구들의 죽음을 보며 삶이 벼랑 끝으로 내 몰릴 때 쏟아지듯 글이 나왔죠. 지금은 제 삶이 온통 수필의 재료가 되고, 또 제가 행복에 겨우 일을 하다보니 작정하고 쓰지 않아도 일상에서 글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녀는 지금의 삶을 ‘음식과 바람났다’는 표현을 썼다. 글과 음식 중에서 무게 중심이 음식에 옮아가 있다고도 했다. 그만큼 음식에 대한 애정이 강해 보였다. “글이 묵은 정(情)이라면 음식은 춘색 가득한 새 정(情)이지요. 사람들이 모두가 ‘그 힘든 일을 왜 하냐’며 뜯어 말렸지만 제가 하고 싶어 한 일이라 음식을 하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하고 무아지경처럼 몰입해 하고 있죠. 벌써 5년차지만 행복감은 더 큰 것 같아요. 청도 각북에 박혀 있지만 제 음식으로 세상과 크게 소통하고 있으니까요.”

이 책이 사람의 감성을 촉촉하게 적시는데는 비슬산에서 제철 재료 채집 이야기와 강정 만드는 일 외에도 지슬 할매와 옆집 할아버지 등 시골 어르신들과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들도 한 몫한다. 과장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그녀의 시골생활이 사람들의 마음을 새콤달콤하게 잡아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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