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삶 속에서 진보의 가치 이끌어내는 기사 쓸 것”
“민중의 삶 속에서 진보의 가치 이끌어내는 기사 쓸 것”
  • 승인 2015.06.03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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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용 길 뉴스민 편집장

고교시절 두발 제한규정에 반발

학교 벽면 대자보 붙였다가 징계

대학 진학해 전국 곳곳 집회 참가

대안 매체에 대해 관심 갖게 돼

2012년 노조 등 도움 얻어 창간

이우환 미술관 관련 보도로 ‘주목’

현장 목소리 ‘날 것 그대로’ 전달

대안 언론으로서 다양한 시도
머리카락을 자르고 밥을 굶는다. 차로 몇 시간씩 걸리는 거리의 길을 걷는다. 뜨겁게 달아오른, 혹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절을 하고 또 한다. 발이 부르트거나 갈라지고 온몸에 피멍이 든다. ‘고행’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자들이 세상과 맞서는 고전적인 무기다. 하지만, 보수적 색채가 강한 대구에서 낡은 무기로 대중의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다. 집회라도 벌일 때면, 교통마비와 소음 등 시민 불편이란 이유로 지적을 받는다. 그래서 대구에서는 ‘투쟁’, ‘민중’ 등의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투쟁은 누군가에게는 고행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메시지다. 대구에서 삶의 바닥을 드러낸 투쟁을 주로 다루는 대안언론은 두 곳이 있다. 2004년 2월 창간한 ‘평화뉴스’와 신생 인터넷매체 ‘뉴스민’이다. 뉴스민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할 수 있게 된 첨단 세상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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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대구 북구 산격동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천용길(29) 뉴스민 편집장은 “진보 진영의 소식을 다루는 것을 넘어 민중의 삶 속에서 진보의 가치를 이끌어내는 기사를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천 편집장은 석 달간의 휴식을 마치고 출근했다.

◇대안언론으로 자리매김하다

“사실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잖아요. ‘뉴스민’이란 이름도 생소하고 처음 보는 기자니까…”

‘허허’ 웃으면서 말하지만, 표정엔 씁쓸함이 묻어난다. ‘언론인’으로 활동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정작 기자를 만나면 저자세가 나온다. 신생 인터넷 언론인 탓이다. 그렇다고 위축되진 않는다. 두둑한 배짱으로 전혀 기죽지 않는다. 신생 대안언론 ‘뉴스민’의 천용길(29) 편집장의 모습은 이랬다.

천 편집장은 지난 3월부터 5월 말까지 휴식을 했다. ‘안식월(1개월)’과 ‘육아휴직(2개월)’을 더해 석 달 동안 일을 쉬었다. 휴가였지만, 쉬진 않았다. 취재와 기사 작성은 하지 않았지만, 뉴스민 홈페이지 수정 작업은 계속해 왔다. 대학 때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해 온 LPG 가스배달과 매주 토요일마다 후마네르도서관에서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일도 거르지 않았다. 휴가기간 동안 쉬지 않고 일한 그는 6월 1일 본래 업무에 복귀했다.

뉴스민의 하루 평균 홈페이지 조회건수는 1만5천여회에 달한다. 뉴스민은 누리꾼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연예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 높은 수치다. 그는 “창간 초기에는 하루 300여회 안팎이었지만, 지난해 12월 들어 하루 1만5천여회대로 올랐다. 지금은 7천~8천여회의 조회건수를 유지하고 있다.”며 “그런데 대구지역의 다른 언론사에서 홈페이지 조회건수를 공개하지 않으니까 이 수치의 높낮이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뉴스민은 그동안 지역에서 터부시돼 왔던 노동 문제를 다뤄 시민사회단체의 이목을 끌었지만, 지역 여론 주도층의 관심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주류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창간 3년여 만이었다. 뉴스민은 지난해 9월 22일 뉴스민 홈페이지에 <시민의 ‘우환’ 이우환 미술관, 농락당한 대구시>라는 제목으로 ‘이우환 화백이 2009년 대구시에 보낸 편지 원문’을 공개했다.

뉴스민이 공개한 편지 내용에는 이우환 미술관 건립 초기 이 화백이 내건 요구 조건이 명시돼 있다. 이 화백은 2009년 10월 12일 쓴 편지에서 ‘(미술관 건립의) 여론 형성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 회화 작품은 상당 부분 기증할 수 있지만, 조각은 재료비와 제작비가 필요하다. 미술관에는 동료 거장 작가 20여명의 작품이 구입돼 진열할 수 있게 됨이 바람직하다. 위와 같은 여건이 갖춰지고 추진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미술관 건립에 동의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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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공원에서 경북지역 농민 1천여명이 쌀 시장 전면 개방에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사진은 천용길 뉴스민 편집장이 취재하던 중 가방을 메고 도로에 앉아 있는 모습.

이 화백은 이듬해 10월 16일 ‘만남의 미술관(안)’이라는 서한을 한 통 더 보내왔다. 미술관 건립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전이었다. 이 편지를 보면, 대구시가 밝히길 꺼리던 국외 작가들의 명단이 나와 있다.

편지의 원문이 공개되자 대구시의 관계자들은 뉴스민 측에 거래를 제안해 왔다. “처음에는 담당자가 ‘(홈페이지에) 공개하면 어떡하느냐? 기사를 내려달라. (이우환 화백을 가리켜) 선생님이 노하신다’고 했어요. 1시간 간격으로 대구시에서 연락이 왔고 다음날에는 대구시의 높은 분이 ‘광고’ 얘기를 꺼냈어요.” 하지만 천 편집장은 대구시의 거래를 거절했다. “왜 제안을 받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일단 창간 초기 때부터 관공서의 광고를 받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워 거래 대상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와의 대화 내용은 천 편집장의 휴대폰에 담겨 있다.

천 편집장은 “이 화백의 편지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다. 그 편지가 ‘비밀문서’인 것도 아닌데 이 화백이 노한다는 이유로 기사를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구시에는 기사 내용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정식으로 이의신청하라고 했지만, 기사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고 했다.

당시 대구는 ‘만남의 미술관-이우환과 그 친구들’을 짓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란을 빚었다. 대구시는 수백억원을 들여 ‘이우환 미술관’을 지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고 문화예술계에서 거세게 반발했다. 시민단체들은 대구와 연고가 없는 작가의 미술관 건립에 반대하며 감사 청구에 이어 1인 시위까지 펼쳤다. 이 화백은 지난해 9월 29일 서신으로 사업 포기 의사를 밝혔고 대구시는 편지를 두 달 가까이 숨기다 미술관 건립 백지화를 발표하면서 서신의 내용을 공개했다. 대구시가 지난 5년간 장기 운영 비전과 작품 확보에 대한 밑그림 없이 지역 브랜드를 만드는 것에만 집착하다가 미술계에 유례없는 참화를 남긴 것이다. 미술 거장의 경력에도 큰 흠집을 냈다. 대구시는 미술관 건립에 대한 여론을 모으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지난 4월 10일 부산시립미술관 별관에서는 이우환 화백의 이름을 내건 전시실 ‘이우환 공간’이 문을 열었다. 이 전시실을 마련하는 데에는 47억2천만원(국비 18억원, 시비 29억2천만원)의 예산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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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3월 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열린 ‘송전탑 반대 문화제’에서 천용길 뉴스민 편집장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대구지역의 새로운 언론의 대안

‘뉴스민’의 제호는 민중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의미다. 뉴스민을 창간하는 데 노조와 시민사회단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설립 기금을 지원받고 사무실도 얻었다.

그렇다고 뉴스민이 노조와 시민단체에 우호적인 기사를 양산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노조와 시민단체의 문제를 비판하는 기사도 여과 없이 내보낸다. 지난해 1월 24일부터 2월 10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부실, 부정선거를 다뤘다. 이 기사로 당시 공무원노조의 선거는 무산됐다. 노조 측에서 “같은 편끼리 왜 그러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며 기사를 내려달라는 항의전화가 왔다. 하지만, 이 기사는 아직도 뉴스민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천용길 편집장이 ‘언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다.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던 천 편집장은 학교의 두발 제한 규정을 납득할 수 없었다. “교사가 바리깡(머리를 깎는 미용도구)으로 학생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걸 이해할 수 없었어요. 두발과 복장을 제한하는 것으로 학생 관리하겠다는 발상이잖아요.”

그래서 친구들과 두발 제한에 반발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학교 벽면에 붙였다. 학교 측은 이를 ‘비행 행위’로 간주했고 징계를 내렸다. “며칠 동안 수업시간에 화장실 청소를 했어요. 그런데 그 처벌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우열반 중의 열반이었거든요.” 그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대학에 가야 내 얘기를 들어주겠구나 하고 생각했거든요.”라고 회상했다.

천 편집장은 2004년 경북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학생회’, ‘학보사’, ‘동아리’ 등을 고민하다가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생활 도서관’에 가입했다. 이 도서관은 사회과학 서적 위주의 책을 읽거나 토론하는 학생 기구다. 또 ‘진보 모임’에서도 활동했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집회에도 참가했다. 진보 모임에 활동한 탓에 학교 수업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6학기를 다녔지만, 졸업 학점을 못 맞춰서 유급을 당했다. 학사경고는 네 번 받았다. “지난 3개월 동안 쉬면서 대학에서 남은 학점을 채웠어요. 몇 달 동안 바짝 열심히 한 덕분에 12년 만에 경북대 사학과를 졸업하게 됐어요.”

2006년부터는 경북대 교지 편집장을 맡게 됐고 후배들과 언론사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고 2010년 말부터 실행에 옮겼다. 후배들과 대구지역 언론사의 기사를 모아서 분석하거나 대안 매체의 성격을 연구했다. 이듬해부터는 참세상과 미디어 충청 등의 매체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면서 ‘언론’을 배웠고 근로자의 날인 2012년 5월 1일 ‘뉴스민’을 창간했다.

창간 4년째를 맞은 뉴스민은 기사에 천편일률적인 단체장 인사말은 빼고 ‘민포차’, ‘청년 실업률 전국 2위 대구, 캄캄한 앞날’ 등 사람 냄새가 나는 읽을거리를 다뤄 반향이 크다. 현장의 목소리를 ‘날것 그대로’ 전달하는 형식이어서 독자들의 공감이 크다. 이 때문에 뉴스민의 가능성은 높게 점쳐진다. 이런 특성 덕분에 대구지역 언론의 현장성과 다양성을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남다른 출발이지만 갓 출범한 언론사를 본궤도에 올리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부족한 점은 자꾸 눈에 띄었다. 현재 뉴스민에서 취재와 편집을 담당하는 이는 천 편집장과 박중엽, 김규현 기자 세 명이다. 하루 24시간도 모자란다는 말은 엄살이 아니다. 취재하는 시간도 빠듯한데 인터넷 편집까지 해야 한다. 상황이 힘들어도 뉴스민은 대안 언론으로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있는 여러 섹션이 이를 증명한다.

천 편집장은 “요즘 느끼는 건 ‘우리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구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소식을 다루는 것을 넘어 민중의 삶 속에서 진보의 가치를 이끌어내는 기사를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손선우기자 sunwo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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