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초기대응 실패…컨트롤타워도 없었다
정부 초기대응 실패…컨트롤타워도 없었다
  • 남승렬
  • 승인 2015.06.2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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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남긴 교훈 <상> 무능·무대책이 禍 키워

사태 키운 병원 정보 비공개

전염 병원 조치 미흡…감염 확산

‘우왕좌왕’ 보건당국 역량 부족

다인실 등 의료시스템도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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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경북대병원을 찾은 내원객들이 발열체크를 하고 있다. 지역 의료계는 메르스 사태 이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 질환 퇴치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남승렬기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한달을 훌쩍 넘었다. 청정지역으로 분류되던 대구와 경북에서도 이달 중순께 확진환자가 나왔다. 경북지역에서는 확진환자를 비롯해 모든 의심환자가 모두 퇴원하거나 자가격리 해제됐고 대구에서도 첫 확진자 A(52)씨를 제외하고는 23일 현재까지 이상징후를 보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메르스, 감기의 일종이라는 이 질환이 한국사회에 남긴 생채기는 너무나 크다. 확산 초기 정부의 정보 통제와 초기 대응 부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대구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첫 확진자 발생을 전후해 발생한 정보 통제는 중앙정부의 그것와 너무나 흡사했다. 본지는 메르스 사태가 남긴 열쇳말을 ‘무능’, ‘불통’으로 짚고, 두 차례(상·하)에 걸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초기 대처 부실과 그에 따른 문제점, 그리고 이같은 사태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진단해 본다.

◇능력 없는 정부, 사태 확산의 진범

지난달 20일 최초 환자(68·남)가 확진됐을 때 보건당국은 “대응 조치를 선제적으로 강화했다”며 “가족·의료진 64명의 격리를 즉각 수행했다”고 밝혔다. 이들만 격리관찰하면 추가 감염은 막을 수 있다는 호언장담이었다. 그러나 8일 만인 지난달 28일 첫 격리자 64명 밖에 있던 환자가 6번째(71·남·사망)로 확진돼 정부의 초기 대응은 지나치게 안이했던 것으로 판명됐다. 정부가 64명만 쳐다보고 있던 5월 27~29일, 평택성모병원에서 최초 환자에게 감염된 35세 남성(14번째 환자)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했고 이 병원에서만 80명에 육박되는 사람이 감염됐다.

매뉴얼에만 매달린 것도 패착이었다. 201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메르스는 아직 감염 경로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1시간 이상, 2m 이내 밀접 접촉 시’ 감염된다는 매뉴얼을 기계적으로 적용했다. 10분 접촉 후 감염된 병원 청원경찰이 있고, 병동 전체가 메르스 확진자의 비말(침·가래 등 작은 물방울)로 오염된 병원이 나왔다.

특히나 병원 이름 공개(6월 7일)가 늦어진 것은 박근혜 정부가 ‘두고 두고 땅을 칠 일’로 기록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최초 환자의 메르스 감염을 처음 발견한 삼성서울병원의 오만도 짚는다. 결국 정부의 정보 통제와 삼성서울병원의 오만 탓에 이 병원은 감염 확산의 2차 진원지가 됐다.

◇컨트롤타워도 없었다

메르스 사태에 컨트롤타워는 누구였을까? 가장 많이 등장한 ‘컨트롤타워’는 대통령도, 총리도, 보건복지부 장관도 아닌 ‘질병관리본부’(질본)였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의 컨트롤은 우왕좌왕 그 자체였다.

질병관리본부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혜안을 제공하기보다 행정 관료의 뒷수습을 하기에 바빴다. 첫 환자 발생 후 수일간은 의사 출신 질병관리본부장 주도로 방역작전을 시행했으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돌아온 이후에는 행정관료를 이해시키고 지원하는데 시간을 쏟아야 했다는 것.

현재 질병관리본부장의 위치에서는 각 부처 역할을 조정하고 적재적소에 자원을 투입하면서 병원 봉쇄, 강제 격리 등 선제 격리 조치에 나서야겠다는 판단을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 질병관리본부장은 인사권도 행사하지 못한다. 질병관리본부에 우수한 보건행정 인력이 모이지 않는 이유다. 연구인력의 역량도 부족하고 질병관리본부 내 병원 내 감염을 관리하는 조직도 없다.

질본은 특히 대구에서도 치명적 실수를 했다. 첫 확진환자 A씨의 누나가 지난 10일 확진을 받았음에도 질본은 이와 관련된 정보를 대구시에 통보하지 않았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를 두고 ‘통보누락’이라는 표현을 썼다.

◇취약한 한국의료 시스템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그 질타는 ‘사스’와 ‘신종플루’를 능가했다. 응급실 과밀화에 비전문가 간병, 빅5로 몰리는 환자들 등등. 이름을 밝히지 않는 대구의 종합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메르스 확산의 주범은 효를 중시해 가족들이 우르르 함께 병문안하는 한국식 병문안 문화가 아니라 취약한 한국 의료시스템”이라고 진단했다.

일례로 그는 “평온할 때 푸대접 받는 감염내과 전문의는 너무나 부족했다”며 “국가지정격리병동으로 지정된 대구의료원에 감염내과 전문의가 전무하다는 것을 이를 증명한다”고 자조 섞인 한탄을 했다.

건강보험은 비용 최소화를 위해 감염 리스크가 큰 다인실을 장려했다. 건강보험이 간병을 수가로 보상하지 못하면서 병원은 인력 운영을 줄이고, 간병은 가족의 역할이 된다. 모두가 나름의 합리적 판단으로 움직였으나 그 결과는 혹독했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를 비롯한 수많은 안전사고로부터 간단한 교훈 하나를 배우지 못했다. 안전에는 돈이 든다는 것이다. 메르스를 통해 배워야 할, 되풀이된 교훈이다.

이재성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메르스 사태로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은 그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병원의 민영화가 답이 아니라 의료의 공공성을 지키는 등 기본을 탄탄히 세우는 게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방지하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남승렬기자 pdnamsy@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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