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안 맞는 중앙-지방…불안 더 키워
손발 안 맞는 중앙-지방…불안 더 키워
  • 남승렬
  • 승인 2015.06.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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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남긴 교훈 <중> 후진적 방역체계

대구 첫 확진환자 발표 늑장

방역당국 시스템 허점 노출

시 독자적 행보로 자체 진화

보건분야 분권화 도입 제기
“바다 건너 먼 중동지역의 얘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예상을 전혀 못하고 연일 허둥대다 오판만 했던 보건당국의 안일한 대처, 후진적 대응 체계…. .메르스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것 같아 참담합니다.”

최근 만난 대구지역 한 대학 교수의 말이다. 이 교수의 말대로 메르스는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사회의 전염병 방역시스템을 철저하게 마비시켰다. 메르스는 대한민국의 후진적 감염병 대응 시스템과 낙후된 의료 문화의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대혼란을 일으켰다.

메르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신종 감염병이 예고 없이 밀려들 수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보여진 후진적 방역시스템의 개선 없이는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는 언제 또 우리 곁을 찾아올 지 모른다.

김건엽 경북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메르스로 인해 우리 사회가 겪은 희생과 사회적 불안을 헛되게 날려버려서는 안 된다”며 “신종 감염병을 물리치려면 대응 시스템의 대대적 개선과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질본만 바라본 대구시…초기 방역 대응체계 사실상 마비

메르스 확산 사태로 온 국민이 불안에 떨던 지난 16일. 메르스 감염자가 나오지 않아 청정지역로 분류되던 대구가 발칵 뒤집혔다. 전날 대구보건환경연구원의 1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남구청 공무원 A(52)씨가 이날 새벽 질병관리본부의 최종 검사에서도 양성 판정을 받은 것이다. 대구지역 첫 감염자였다.

하지만 대구시의 초동 대처는 실망스러웠다. 15일 오후부터 첫 양성 판정자가 나왔다는 소문이 지역 의료계와 언론계에서 파다하고 경찰 정보망에도 감지됐으나 대구시는 이 사실을 철저히 감췄다. 언론의 취재가 들어가자 그제서야 대구시는 15일 오후 9시께 권영진 대구시장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첫 양성판정자가 나왔다는 것을 공식 발표했다. A씨가 첫 양성판정을 받은 시간은 15일 오후 3시께. 대구시는 결국 7시간 동안이나 정보를 통제해 시민들의 불안을 키웠다. ‘질병관리본부의 매뉴얼’에 따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대구시가 보여준 초창기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결국 메르스 2차 진단을 통한 확진 권한을 쥐고 있던 질병관리본부는 16일 새벽 6시 10분에서야 이 환자를 확진자로 정해 ‘154번째 환자’로 공식 인정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와 대구시가 공식 발표를 미루는 사이 시민들의 불안감은 더 가중됐고, 유언비어 역시 확산됐다.

대구시 관계자는 “메르스 1·2차 진단을 통한 확진 검사 시스템은 각 지역 보건환경연구원이 다 갖추고 있다”면서 “효율적인 감염병 관리 차원에서 질병관리본부가 초기에 확진 기능을 유지한 것으로 안다. 결국 이런 이유로 지자체가 발표를 할 수 없었고,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를 기다리다 보니 공식 발표가 늦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중앙 통제 벗어난 의료·보건부문 분권 이뤄져야

방역당국은 최근에서야 각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을 메르스 확진검사 기관으로 인정했다.

우리 보건·방역당국의 감염병 대응 시스템의 허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신속성이 생명인 신종 감염병 확산 사태에서 방역당국은 매뉴얼에 따른 행정 체계와 절차를 따지며 느려터진 대응으로 일관했다.

질병관리본부 등의 엇박자와 소극적 대응으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각 대구시는 독자적인 행보를 걸으며 자체 진화에 나섰다. 권 시장이 중앙의 매뉴얼를 깨면서까지 확진환자의 이동경로와 동선, 방문 시설 등의 실명을 공개한 것.

전국적 메르스 사태에서 방역당국의 허점은 결국 보건·의료 부문의 분권화 목소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권한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전염병 예방관리는 감염 등 전문가만의 영역이라기보다 사실 정치와 행정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일사분란한 지휘체계를 구축하고 방역기관의 정보 독점을 어디까지 시민과 소통하고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침해할 것인가를 신속하게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며 “그러나 대구시는 확진환자 발생 초창기 허술한 중앙정부 매뉴얼만 따라했고 이는 결국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지역 감염내과 전문의는 “정부에서 모든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감염병 대응과 관련해서는 지자체가 해야 할 역할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메르스 사태는 보건 분야의 분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남승렬기자 pdnamsy@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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