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법적 사회 관행에 맞서 투쟁의 길 20여년
비합법적 사회 관행에 맞서 투쟁의 길 20여년
  • 승인 2015.07.01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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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한국국토정보공사 노동조합 대구·경북본부장
부정 팽배한 세태에 의욕 잃어 27살때 경북지부 노조 밑그림
2006년 대구경북 본부장 선출 노조원들 많은 지지에 힘 얻어
회사의 독주 견제·방향 제시 불합리성에 대해 시스템 정비
협의회 만들어 정기적 회의 노조 권익·복지·세력화 노력
와이드인터뷰3
이종호 본부장은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야 회사 측에도 문제 제기와 질타를 할 수 있는 명분이 세워진다”며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비합법적 사회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많이 싸웠다”고 말했다. 박현수기자

“저는 저를 ‘잡놈’으로 소개합니다. 산과 들로 구석구석 다니면서, 사람들도 많이 접하고요. 이 일만 해와서 누구보다도 일에 대해 잘 알죠.” 자신을 스스로 ‘잡놈’이라고 부른다.

한여름의 시작을 앞두고 까무잡잡하게 탄 구릿빛 피부가 눈에 띈다. 지난달 29일 만난 이종호(48) 한국국토정보공사(옛 대한지적공사) 노동조합 대구경북본부장은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다. 한 손은 주먹을 지고 연신 ‘투쟁’을 외치던 그의 모습은 없었다.

처절한 단식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눈빛과 얼굴 아래 덥수룩한 수염도 없었다. 이 본부장은 “곱게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라서 공식적인 행사에는 수염을 일부러 기른다”며 쑥스러운 듯 미소를 띠었다. 그는 요즘 수염을 자주 기르는 편이라고 한다. (편집자 주)

◇땅을 밟고 일어서기까지

“땅만 밟던 잡놈이죠.” 이종호 한국국토정보공사 노동조합 대구경북본부장은 1992년 첫 직장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당시에는 블루칼라(blue collar) 직군이었다.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땀을 흘려서다. 이른바 현장에서 고된 ‘막일’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IMF 사태에 터지자, 이 직업이 황금기를 누렸다. ‘기술직 공무원’이라는 전문성과 안정성, 두 가지 특성이 최고의 궁합으로 맞아떨어졌다. 이 본부장은 “저는 그냥 땀을 흘리는 게 좋았어요. 측량 장비를 메고 산과 들을 다녔는데, 현장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면적을 나눠 규격화하는 과정이 시간이 꽤 걸렸죠. 보통 새벽 3~4시까지 야근할 때가 많았어요”라고 말했다.

‘일’만 열심히 했던 그에겐 마음속에 하나씩 불평이 생기기 시작했다. “‘막걸리 한 사발 먹이면 연필을 저쪽으로 대준다’는 말이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니에요. 모든 시스템이 전산화가 되기 전인 1990년대 후반까지 이런 부분들이 종종 있었죠. 특히 지자체 공무원이 무조건 갑인 관계에서 부정·뇌물수수·연줄 등은 팽배했죠. 선배들이 소위 ‘한 건 해먹었다’는 이야기도 그 시대 상황을 잘 나타내죠.”

그는 중간 세대였던 셈이다. 경쟁에 이기는 방법은 자유·공개경쟁이 아닌 뇌물과 연줄 등이라는 점을 깨닫고 일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선배 세대가 주는 비합법적인 거래가 또 다른 먹이사슬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격적인 모독이 많았어요. 알력 다툼도 많았고요. 우리만의 소신대로 격을 높이고 싶었어요. 위상을 되찾고 싶었죠”라고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1988년 정치적 기류와 시대적 상황은 민주화 바람으로 나타났다. 이때 대구경북 노동조합도 들불 중 하나로 생겨났지만, 회사 측의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지부장이 퇴사하게 되는 곤욕을 치렀다. 1996년 나이 27세였던 이 본부장은 경북지부 노조의 밑그림을 그렸다. 6~7년 만에 다시 경북 노조가 만들어졌다. 그는 46명의 노조원과 함께 ‘쟁의부장’을 맡아 경북지역 간부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대구경북지역본부가 통합되면서 1999년에는 전국 총무국장으로 선임되고, 최연소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2006년에 대구·경북 본부장으로 처음 선출된 뒤 지금까지 노조를 이끌어왔다.

그는 “경제 위기와 사회 전반의 개혁 열풍 등이 노조원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쳤지만, 회사 측에선 노조원이라고 하면 굉장히 눈치를 줬죠. 46명으로 시작했지만 하나둘씩 떠나다 보니 7명까지 남았던 적도 있어요”라고 회상했다. 그의 신념은 모든 중심에 나 혼자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행복을 최고 가치로 둔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자세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물론 그가 본부장으로 자리를 굳건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조원들의 높은 지지율이 한몫했다.

◇민주화의 땀으로 이룬 성과

“회사에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하는 동시에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서로를 배척하는 게 아니에요. 함께가자는 거죠”라고 그는 말했다. 대구경북의 직원들은 자존심도 강하고 각자의 야성이 강해 뭉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모든 지역을 돌아다니며 직접 만나 대화를 이어갔다. 그의 의지는 대구경북본부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노조 가입률(97%)로 나타났다.

고민과 반성, 싸움의 시간은 계속됐다. 2006년 처음으로 본부장이 됐을 땐 노조의 인식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했다. 이 본부장은 “노조가 약자라는 인식 때문에 지나친 또는 불법적인 요구를 하는 게 보편화가 됐어요. 최소한의 원칙은 지키고 맑아야 회사 측에도 문제 제기와 질타를 할 수 있는 명분이 세워지거든요.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비합법적 사회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많이 싸웠어요”라고 말했다.

2009년 2기 때는 본격적으로 회사 측과 발생하는 불합리성에 대해 시스템을 정비해나갔다. 대표적으로 인사·채용 규정에서 사전 심사 위원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는 국가경쟁력과 비교하면 노사관계 경쟁력이 한참 뒤처져 있어요. 기본 틀을 벗어난 행위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비판해야 하죠. 회사 측도 원칙을 지켜줘야 합니다. 공공기관도 다르지 않아요.”

이명박 정부가 공공부문 단체협약을 손대면서 노조 활동은 진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이 본부장은 2010년 ‘공공노동조합협의회’를 꾸렸다. 그는 “민주노총이니 한국노총이니 제3노총을 따지지 않고 합법적으로 인정된 단사들을 중심으로 대구에서 단체를 만들었어요. 자치단체장 공공기관의장이나 여·야당 인사들을 만나 소통하자는 목적이었죠. 이런 움직임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상태죠”라고 했다. 협의회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회의를 한다.

2012년 3기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 본부장이 노동조합장의 명맥을 이어갔다. 지부마다 노동조합장들이 모두 물갈이가 됐다. 그는 더욱 노조의 권익과 복지, 세력화에 노력했다.

“반노동조합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있었죠. 하지만 우리도 주인 의식입니다. 회사의 발전, 나아가 나의 발전, 구성원들의 발전이 있기에 서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발전해가는 거죠. 까다로운 현안은 서로 머리 맞대어 이겨낼 수 있어야죠.”

대구경북본부 정기총회 모습.


◇미래를 위한 준비

이 본부장은 요즘 고민이 늘었다. ‘한국국토정보공사’란 8글자 때문이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지난달 4일 LX대한지적공사에서 38년 만에 바뀐 사명이다. 공사는 단순히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관리하고 지적 정보를 알려주는 한계에서 벗어나 공간 정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무인자동차 지능화를 위한 프로젝트와 무인항공기·로봇, 3D 프린터 등 신기술 활용 업무를 확대해나간다.

그는 땅의 의미를 공간화하는 데 진일보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두고 있다. 동시에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끊임없이 지적한다. “지금까지는 ‘X 좌표’ 하나였다면 인제야 2차인 ‘Y 좌표’를 엮어냈어요. 성공했다고 보기 이르죠. 우리는 더 나아간 3차 ‘Z 좌표’를 보지 않고 있어요. 굉장히 중요하고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또 “‘Z 좌표’만 있겠습니까? ‘T’도 있어요. 시간(Time)이죠. 시간까지 엮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목표에 충분히 도달하게 될 겁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아스팔트 도로 아래의 상·하수도를 예로 들었다. “3차(Z좌표)와 T까지 엮은 4차 시스템이 구축됐어요. 자, 대구에서 갑자기 도로 지반이 가라앉는 싱크홀이 발생했어요. 그 지점을 클릭해봅니다. 상·하수도가 언제 깔렸는지, 언제쯤 교체를 해야 하는지 시기가 나옵니다. 물론 싱크홀이 발생하기도 전에 도로 아래가 붕괴할 조짐이 보인다고 시스템에서 알려줬겠죠. 도로의 수리비가 얼마 정도 나오는지 경비까지 시스템이 알려줍니다. 어때요? 이는 국민과의 안전이 직결되는 문제에요.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죠.”

이처럼 공간 정보 구축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상·지하·수상·수중 등 모든 국토 공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뒤 이를 통해 새로운 공공 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거죠. 도로명, 문화재 복원, 재난·위험 정보 사전 제공 등 공간 정보를 통해 생산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무궁무진합니다”라고 그는 단언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을 갖출 노력조차 보이지 않은 공공기관에 답답함을 드러냈다. 정부는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국토정보공사로 회사명이 바뀌었어요. 말 그대로 토지 정보에 다양한 공간 정보와 행정 정보 등을 융·복합적으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건데, 4차 시스템을 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대요. 지금부터라도 하나둘씩 우리가 주장하고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공사가 공간 정보 오픈 플랫폼 고도화 기술 개발, 공간 빅데이터 구축 사업 참여 등 국토정보 인프라 구축 사업의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가장 기본 계획은 직원들의 고용 안정이다. 혁신과 창의를 앞세우는 조직문화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또 부적절한 인사 단행이나 비능률적인 업무 등을 꾸준히 지켜보면서, 과학화·전산화로 합리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재산권과 거래의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떤 일을 이뤄내기 위해선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어야 합니다. 노조도 국가 경쟁력·효율성과 기업 생산력을 생각해야 하고, 단순한 권익 주장을 넘어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 하죠. 앞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노조가 되도록 힘을 쏟을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지홍기자 kjh@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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