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산촌...순박한 산골에 불어닥친 내전과 혁명
<신간>산촌...순박한 산골에 불어닥친 내전과 혁명
  • 남승렬
  • 승인 2015.07.0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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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쥔젠 지음/갈무리/1만5천원

/news/photo/first/201507/img_169418_1.jpg"산촌/news/photo/first/201507/img_169418_1.jpg"
중국인이 영어로 쓴 최초의 소설이다. 1920년대 산골 마을 사람들의 삶마저 격변에 휘말리던 시기를 다룬다. 현재의 중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하고 싶은 이들이 편하게 읽기 좋은 이야기다.

작가 예쥔젠(1914~1999)은 서방에 중국 혁명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1947년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번역가이자 에스페란티스토, 잡지 편집자, 항일투사였던 그는 17세에 에스페란토를 배워 중국어·영어·에스페란토로 작품 활동을 했다. 중국 최초의 국제 문학잡지 ‘중국 작가’를 창간했고, 안데르센 동화를 중국에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다. 역자는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작품을 한국어로 옮겼다.

소년 춘성은 어머니와 삼촌 판, 형을 위한 민며느릿감 고아 소녀 알란과 함께 살아간다. 넓은 풀밭이 있고 강이 흐르는 작은 산촌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춘성의 눈을 통해 소설은 전개된다. 별별 소리를 자유자재로 내는 이야기꾼 라우라우는 매일 저녁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홀로 연극을 벌이며 즐거움을 주고, 도사 벤친은 한때 권위가 있었지만 천연두 환자를 두고 망령을 쫓겠다고 나서 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다. 농사를 짓지 않아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하는 국화 아줌마는 라우라우의 구애에도 떠나간 남편 민툰만 기다린다. 암소를 무엇보다 아끼는 판 삼촌, 먹성 좋은 부인을 위해 남보다 배로 일하는 마우마우 등 개성 있고 선량한 산골 사람들의 인간애와 해학이 어우러진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산촌은 저자의 실제 고향인 중국 중부 후베이성의 다볘산맥 부근 마을로 추정된다. 1911년 쑨원이 주도한 신해혁명으로 청 왕조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이후 복고파와 군벌들 간의 내전은 끊이지 않았고, 1925년 총통이 된 장제스 역시 중국을 완전히 통합하지 못했다. 내전은 당시 중국인들의 대다수였던 가난한 농민들에게 고통을 안겼다. 책은 당시의 상황을 담고 있다.

나름 평화롭던 마을에는 시간이 갈수록 불행과 불화의 징후들이 나타난다. 패전 군인들에게 약탈당하지 않으려는 대지주 추민의 꾀에 따라 마을 선생님 뻬이후와 도사 벤친은 가짜 마을 대표단이 돼 군인들을 융숭하게 영접하지만 결국 속임수가 드러난다. 대도시로 일하러 나갔던 아버지와 형이 군벌 간 전쟁 때문에 잠시 마을로 돌아오지만 노동조합 야학에서 새 사상을 배워 온 형은 신부 알란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포한다. 군인들의 약탈 때문에 설날이 됐는데도 사람들은 집과 부엌을 지켜준 조왕신에게 바칠 선물도 마련하지 못하고, 지난 대기근 때 식량을 빌려주며 마을 사람들의 토지를 다 빼앗아갔던 지주 추민은 집까지 빼앗으려는 횡포를 부린다.

소설 산촌은 ‘춘성’이라는 한 어린 소년의 눈을 통해 극적인 변화 속에 놓인 중국 농부들의 삶을 자세히 묘사한다. 묵묵히 고향을 지키는 어머니, 천연두에 걸린 고아 알란, 도시로 떠난 젊은 남편을 기다리며 실을 짜는 국화 아줌마, 소프라노와 테너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마을의 이야기꾼(설서인) 라우리우, 교사로서 존경 받는 뻬이후 삼촌, 암송아지를 자식처럼 아끼던 판 삼촌 등 매력적이고 선량한 등장인물들은 정겨운 산골 마을의 모습에 독자가 어느새 빠져들게 만든다.

남승렬기자 pdnamsy@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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