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김연아 꿈꾸는 ‘대구의 딸’…쉼없는 ‘점프’
제2의 김연아 꿈꾸는 ‘대구의 딸’…쉼없는 ‘점프’
  • 승인 2015.07.1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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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상비군 박고은 양
다리 교정 위해 빙판과 인연 맺으며 재능 발견
뛰어난 연기력 인정받아 국가대표 상비군 발탁
대구의 국가대표 목표…내년 주니어 그랑프리 준비
스폰서 없어 연간 5천만원 경비 마련에 어려움 겪어
와이드인터뷰-피겨선수박고은
새하얀 얼음판을 가로질러 한 소녀가 미끄러지듯 다가온다. 얇은 팔과 다리를 우아하게 뻗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공중으로 날아올라 환상의 궤적을 그린다. 빙판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은 넋이 나간다. 사진은 8회 다중촬영. 박현수기자 love4evermn@idaegu.co.kr

‘피겨 여왕’ 김연아(25·여) 선수가 2014년 봄에 열린 아이스쇼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피겨계의 독보적인 존재가 빙판을 떠난 뒤 많은 선수가 제2의 김연아를 꿈꾸고 있다.

올해 피겨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된 박고은(13·여) 양도 그 중 한 명이다. 상비군은 말 그대로 유사시를 위해 상시 대기하고 훈련하는 국가대표 후보군이다. 상비군은 총 12명(남 3명·여 9명)으로 대구에서는 경신고 1학년 김상우(16) 군과 고은 양이 뽑혔다. 고은 양은 이들과 함께 8월 10일부터 29일까지 19박 20일 동안 합동훈련을 앞두고 있다.

◇피겨 국가대표 상비군이 되다

키도 자랐고 실력과 함께 자신감도 부쩍 자랐다. 지난 7일 저녁 대구 북구 동변동 한 음식점에서 만난 박고은(13·여·정화중) 양은 밝고 씩씩했다. 2년 전 대구실내빙상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는 딴판이었다. 낯선 사람 앞에서 입을 꾹 다물고 어머니 강수현(41) 씨를 찾던 고은 양이 아니었다. 인터뷰를 하는 2시간 동안 시종 밝고 환한 표정을 보였다.

작고 조그만 아이는 중학생이 됐다. 동그란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눈매는 또렷해졌다. 피겨 등급은 6급에서 7급으로 한 단계 올라섰다.

“올해는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낼 거예요.”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된 고은 양은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 특별한 성장통은 없는 듯 보였다. 강씨는 딸의 뜻을 존중한다. “웬만해선 고은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두는 편이에요. 피겨가 싫으면 미련 없이 그만두게 할 생각도 있어요. 그런데 고은이가 (피겨를) 하고 싶어해요.”

강씨는 무덤덤한 듯 말했지만, 지난해에는 남모를 고민을 했다. 고은 양은 캐나다 전지훈련을 다녀온 뒤 홀로 연습을 하다가 무릎에 시큰한 통증을 느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의사의 권유로 두 달 정도 운동을 쉬게 됐다. 사고가 났을 때 강씨는 포항에 있었다. 이전까지 그림자처럼 딸의 곁에 붙어 있던 강씨였다. 그는 “포항에서 코치로 일하는 중이었는데, 엄마가 옆에 없는 사이 딸아이가 혼자 아파했을 것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무릎 통증으로 연습하지 못한 탓에 고은 양은 국가대표 선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회에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트리플 점프 5종 가운데 2개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점수를 보고 낙담했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된 것. 강씨는 “어릴 적부터 고은이가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왔었다. 기술은 약했지만, 예술점수(PCS) 채점에선 점수를 잘 받은 것 같다.”고 했다.

13살의 소녀는 곧 2차 성징으로 체형 변화를 겪게 된다. 이때 여성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몸의 중심이 급격하게 변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시기를 잘 넘기지 못해 선수의 꿈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통상 점프기술은 2차 성징이 시작되기 전인 14살 무렵에 완성된다. 2차 성징이 시작되면 골격이 커지고 체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무리하게 새 기술 개발에 치중하다 보면 부상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점프나 심리상태에 영향을 미쳐 균형을 깨뜨릴 우려가 있다. 피겨스케이팅은 날렵하고 고난이도 기술을 구사하는 점프를 요하는 만큼 가벼운 몸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은 양과 강씨는 올해 안으로 부족한 부분을 연마해 최고의 기량을 낼 계획이다.

와이드인터뷰-피겨선수박고은
지난 10일 오전 대구 수성구 상동 수성아이스링크장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박고은(13·여·정화중) 양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고은 양은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이 링크장에서 시범공연을 선보인다. 프리스케이팅 작품은 ‘페르시아의 왕자’이고 쇼트 프로그램은 ‘캐논 변주곡’이다.
박현수기자 love4evermn@idaegu.co.kr


◇피겨의 세계로 들어오기까지

박고은 양이 피겨의 세계로 들어선 건 우연이었다. 어머니 강씨는 고은 양이 3살 때, 사진을 찍던 중 딸의 오른쪽 다리가 조금 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쉽게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피겨 코치로 일하는 강씨의 눈에 띄었다. 강씨는 휜 다리를 곧게 펴기 위해선 스케이트를 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일하는 빙상장으로 딸을 데리고 갔지만, 고은 양은 얼음판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때까진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없었다. 강씨는 “직장 일 때문에 어린 아이를 집에 혼자 두기도 그렇고 휜 다리도 교정할 겸 실내빙상장에 데려왔다. 고은이가 빙판 위에서 자꾸 넘어져서 스케이트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그런데 신체를 교정하면서 재능도 눈에 띄었다. 강씨는 미끄러지듯 빙판을 가로지르는 딸의 모습을 보게 됐다. 다리 교정을 위해 6~7살 때까지 스케이트를 타면서 고은 양은 얼음판이 익숙해졌다. 피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했다. 하지만, 강씨는 딸이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 고된 선수 생활 때문이다. 15년 동안 피겨스케이팅 선수 생활을 한 강씨는 딸이 자신과 똑같은 생활을 하게 할 순 없었다. 그래서 3년 6개월 동안 고은 양이 피겨 승급 심사를 치르게 하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어린 나이에 운동선수로 활동하는 게 너무 힘들다. 또 (예전보단 좋아졌지만) 동계 스포츠의 훈련 여건이 좋지 않다. 아직 부족한 게 많고…”라며 말을 줄였다.

당시 ‘김연아 신드롬’으로 수많은 아이가 피겨를 배우기 위해 빙상장을 찾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등록된 선수는 매년 증가했고 전국 남녀 피겨선수권대회 참가자는 벤쿠버올림픽 1년 전인 2009년 45명에서 2013년 88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국내 피겨 선수층은 두터워졌지만, 질적 향상을 위한 제도와 관리 수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선수들이 훈련할 빙상장도 마땅치 않다. 지역에는 개장한 지 20년 된 대구실내빙상장과 2005년 개장한 수성아이스링크장 두 곳 뿐이다.

“피겨에서 점프나 회전을 할 때 강력한 힘을 내기 위해선 빙판을 반 바퀴 이상 돌면서 추진력을 얻어야 해요. 그런데 좁은 얼음판 위에 20명의 선수가 움직인다고 생각해보세요. 부딪힐까 봐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해요. 사람들이 없는 시간은 새벽이나 늦은 저녁밖에 없는데, 그렇게 몇 년 동안 운동하는 건 아이에게 고역이잖아요.”

강씨의 생각이 바뀐 건 고은 양이 선수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부터다. 딸과 오랜 상의 끝에 선수의 길로 가보자는 결론을 냈고 승급 심사를 치렀다. 고은 양이 초등학교 5학년이던 지난 2013년 피겨 등급은 2급에서 4단계 올랐다. 지역에선 적수가 없었다. 당시 고은 양 또래 가운데 6급 이상의 선수는 전국에서 5명이었다. 대구에서는 따라올 수 있는 실력자가 없었다. 단시간에 ‘포스트 김연아’로 주목받고 있는 선수들과 나란히 설 정도의 위치에 선 것이다.

이때부터 이름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명 포털사이트에는 고은 양이 연기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 올라오고 팬도 하나둘씩 생겨났다. 일부 누리꾼들이 많든 블로그에서는 고은 양을 ‘피겨 유망주’로 꼽았다.

고은 양은 지난해 5월에는 7급 심사에서 합격했다. 피겨의 최고 등급은 8급이다. 최고봉인 8급 테스트의 과제는 3종류의 트리플 점프와 트리플+트리플 점프를 포함한 콤비네이션 점프 등이다. 지난해부터 피겨 등급 심사 기준이 강화됐지만, 트리플 점프 5종을 모두 구사하는 고은 양에게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와이드인터뷰-피겨선수박고은
지난 10일 오전 대구 수성구 상동 수성아이스링크장에서 박고은 양이 연습을 마친 뒤 김은주 코치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현수기자


◇“대구의 국가대표로 키울 것”

어머니 강씨는 수도권이 아닌 대구에서 고은 양을 국가대표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 고은 양이 올해 좋은 성적을 낸다면, 대구에서 처음으로 피겨 국가대표를 내게 된다. 지금까지 대구 출신으로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상비군과 주니어 국가대표로 국제 대회에 나간 사례는 있었다. 하지만, 출신만 대구일 뿐, 대부분 수도권으로 옮겨간 뒤 선수로 활동했다. 강씨는 “현재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은 거의 모두 수도권에 있다. 이 때문에 서울과 경기도의 아이스링크장은 포화 상태”라면서 “물론 수도권에서 뛰어난 선수들과 경쟁하면 ‘라이벌 효과’로 실력이 더욱 늘 테지만,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 지역에서도 훌륭한 선수를 키워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씨의 소망을 이루기까지 모녀가 넘어야 할 ‘고비’가 두 가지 있다. 먼저 고은 양의 ‘나이’ 때문에 국제대회 참가자격을 아직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2002년 8월에 태어난 고은 양은 나이제한에 걸려 올해 주니어 그랑프리에 참가할 수 없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나갈 수 없다. 강씨는 “참가 자격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내년에 열리는 주니어 그랑프리에 맞춰 준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피겨 선수로 활동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2개월가량의 해외전지훈련비, 안무비, 의상비, 링크 대관비, 트레이닝비 등 피겨선수라면 반드시 필요한 경비만 연간 5천만원을 넘어선다. 이에 비해 수입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대회에서 입상을 하더라도 상금은 링크 대관비에 보태 쓸 정도로 미미하다. 힘든 트레이닝을 이겨내고 한 해 수천만원의 훈련비를 감내해 국제경쟁력을 지닌 선수로 크더라도 김연아 급으로 성장하지 못할 경우는 뿌린 훈련비의 절반도 탕감하기 어려운 척박한 상황이다.

김연아 선수의 경우 후원사와 TV CF 활동으로 인한 수익으로 이 비용을 내는 데는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스폰서를 찾기 전까진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였다. KB금융그룹은 2006년 당시만 해도 스폰서가 없어 어려움을 겪던 고등학교 1학년 피겨스케이팅 유망주 김연아 선수를 광고모델로 발탁했다. 김연아 선수는 광고모델이 되자마자 여러 대회에서 우승하며 화려한 비상을 하게 됐다.

KB금융그룹의 경우에는 김연아 선수를 모델로 쓴 이후로 돈으로 살 수 없을 정도의 광고 효과를 누렸다고 알려졌다. 강씨는 “간혹 코치들이 ‘고은이의 스폰서를 구하지 못했느냐’고 물어보는 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현재까지 고은이의 피겨 지원을 위해 들어간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앞으로 들어갈 비용은 더 많을 건데, 그것 때문에 걱정이 크다.”고 털어놨다.

손선우기자 sunwo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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