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 넝쿨식물 심고
하나둘 아이디어 내기도
대학생들 바람개비 설치도
16일 오후 대구 서구 비산 2·3동 엄석만 동장이 주민 장병찬 씨를 보면서 하는 말이다. 지난해 10월 달성토성 둘레길 맞은편으로 이사온 장 씨는 이날 집 앞에서 나무를 자르고 붙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장 씨가 하는 일은 아치형의 구조물을 만들어 넝쿨식물을 심고, 자그마한 나무의자를 배치하는 작업이었다. 앞집 할아버지가 구경 겸 작업 감독을 하며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몇달간 주민센터에서 수백개의 재활용 바람개비(본지 6월 15일자 6면 참조)를 만들어 붙이는 것을 본 장 씨가 동네 환경 개선에 팔을 걷어 부친 것. 마음대로 해보라고 멍석을 깔아주니 장 씨도 흥이 난단다.
엄 동장은 “장 사장 손재주가 장난이 아니다”며 “우리 동네에 이렇게 열정 넘치는 ‘미친 사람들’이 나서면서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그동안 다들 본색(?)을 숨기고 있었나 보다”고 너스레를 부렸다.
수십개의 태극기 바람개비를 든 대구경북대학생 봉사단 20여명이 달성토성 옹벽 앞에 모였다.
2~3개 조로 나뉜 봉사단은 오전에 주민센터에서 직접 만든 바람개비를 1㎞가 넘는 달성토성 옹벽 펜스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기존 바람개비에 한달 앞으로 다가온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 무늬를 가미해 제작했다. 한 명이 바람개비대를 구부려 주면, 다른 한 명이 고정, 주민센터 직원이 마무리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노인들만 오가던 동네에 학생들이 나타나자 무슨 일인가 궁금해 얼굴을 내민 주민들은 봉사단에게 물과 커피를 건네주며 작업을 구경하기도 했다.
이달 말 공무원 시험 결과를 기다리며 봉사활동에 참여했다는 신정훈(30)씨는 “달성공원은 와봤지만 공원 뒤에 이런 둘레길이 있는줄 몰랐다”며 “재활용품을 이용한 바람개비도 특이하지만 이를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한편 바람개비와 골목정원으로 비산 2·3동이 작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달성토성 옹벽으로 주민들의 시선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회색옹벽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싹튼 것.
엄 동장은 “달성토성 옹벽 경관 개선 필요성을 말로 설득하는 것보다 조금씩 동네가 바뀌는 모습에 무관심했던 주민들이 ‘옹벽이 너무 칙칙하다’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며 “하나둘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하면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방법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민지기자 jmj@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