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개헌 보고서
<대구논단> 개헌 보고서
  • 승인 2009.09.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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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大記者)

헌법이란 한 나라의 기본법이기 때문에 자주 고쳐서도 안 되고 함부로 논의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불합리성이 노정되어 있는 헌법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헌 당시부터 권력이 개입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된 이후 개헌 때마다 권력논리에 휩싸여 누더기 헌법이라는 별칭이 붙어있을 정도다.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된 후 미군정 3년을 흘러 보내면서 우리는 남북분단을 잉태한 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나선다.

유엔의 결의를 핑계로 선거가 가능한 한반도 남쪽만 정부를 수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구는 남북협상을 시도하여 끝까지 통일정부를 세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미국과 소련의 조종을 받는 이승만과 김일성은 각자의 길을 선택함으로서 실패한다. 이에 김구는 새로운 정부구성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경교장에 칩거 중 정부수립 1년 후 안두희에 의해서 암살되는 불운을 겪는다.

이승만은 새 정부의 권력자가 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기초위원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원안이었던 내각책임제를 뒤로 물리고 대통령중심제로 만든다. 이는 헌법 기초위원이었던 유진오의 확실하고 명백한 증언이다.

그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국민이라는 말도 처음에는 인민이었다고 한다. 국민이란 원래 일제 강점기에 천황폐하의 신민이라는 의미의 황국신민(皇國臣民)을 줄여 쓴 말이어서 헌법기초위원들은 인민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을 북한 측에서 선점했다는 이유 하나로 하루아침에 일제잔재를 그대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줄곧 `국민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나마 요즘에 들어서 `초등학교’로 제 모습을 찾은 셈이다. 이처럼 용어 하나까지도 권력자의 의지를 반영해야 했던 헌법은 사사오입개헌을 비롯하여 4.19혁명, 5.16쿠데타, 삼선개헌, 10월 유신, 5.18신군부집권, 6.10민주항쟁 등으로 얼룩지며 개헌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단 한 차례도 정상적인 논의와 합리적인 토론을 거치지 못했다. 오직 권력과 정치논리에 의해서 짜깁기되었을 뿐이다. 현재의 헌법은 5공하에서 직선제를 주장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배어 있지만 그 골격은 군사정권의 논리로 가득 차있다. 직선제만 되면 군사정권을 쫓아낼 것으로 확신했던 국민은 양김씨의 분열과 배신으로 노태우에게 정권을 헌납하는 치욕을 겪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지역감정은 더욱 기세를 부린다.

영호남의 화해와 단결이라는 절대 절명의 호기를 날려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도 양김씨의 정치술수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 볼모가 되어 버렸다. 국민은 그들의 세치 혀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비틀거리며 아무 이득도 없는 지역감정의 노예로 전락했다. 이번에 김대중 서거를 계기로 김영삼과의 병원 화해가 이뤄져 민추협을 중심으로 한 화합과 단결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두 김씨가 대통령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정권의 정상을 차지해봤고 자살한 노무현까지 그 덕을 봤지만 헌법만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명박정부가 취임한 후 개헌의 필요성이 각계각층에서 대두되면서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속으로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국회 본연의 모습이다. 이들이 이번에 `개헌 보고서’를 내놨다. 헌법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게 권력구조다. 대통령중심제냐 내각책임제냐 하는 문제다.

개헌보고서는 이 두 가지 쟁점에서 살짝 방향을 틀었다. 어느 한 쪽만을 우선시하면 논란이 자심할 것으로 본 때문일까. 그러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한 듯싶다. 이른바 이원집정부제다. 이에 반발할 것을 예상하고 4년 중임 정· 부통령제 안도 제시했다. 물론 어느 안이 다수의견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대변인 등은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했다.

서울시장 오세훈, 경기지사 김문수 등 잠재적인 대권주자들은 국민들이 지도자의 선출을 의회에 위임하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다. 정몽준은 속내를 감추고 있으며 가장 대권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 박근혜는 현재 대통령 특사로 외국에 체류 중이지만 지난 5월 스탠퍼드 대학에서 연설할 때 4년 중임 대통령제지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의 정세균, 손학규, 무소속의 정동영 등 대권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기피하는 경향이다.

다만 일반 국회의원들은 제왕적 대통령제보다 이원집정부제를 선택했을 때 자신들의 활동 지평이 넓어진다는 현실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기 어렵다. 어차피 개헌문제는 치열한 토론과 여론의 향배를 거쳐야 한다. 어느 개인이나 그룹의 이해로 조정되어서는 안 된다. 5년 단임(單任)이라는 불합리성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모처럼 맞이한 개헌논의가 이번에는 권력의지와 상관없이 100년을 내다보는 국민의 헌법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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