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마을이야기] 600년 된 거목 벗삼아 거닐며 나도 선비가 되어본다
[의성 마을이야기] 600년 된 거목 벗삼아 거닐며 나도 선비가 되어본다
  • 김병태
  • 승인 2015.08.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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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사촌마을

조선시대 대과 13명 배출 마을 송은 김광수·서애 류성룡 나와

상수리·느티나무·팽나무 등 선조들의 자연관 알 수 있어

국내 최고령 목조건물 만취당 명필가 석봉 한호 현판글씨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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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마을’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영남의 대표적인 반촌으로, 기와지붕이 바다를 이룬다고 해서 와해(瓦海)라 불릴 만큼 번성했던 마을이다.

시골마을은 우리에게 아무 조건 없이 많은 것을 안겨준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걸음걸음 마다 푸른 소리로 가득하다. 도시에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어서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잠시 여유를 부려본다. 고택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냉수한잔 들이키니 먼 산이 벗이 돼 오랜 추억의 이야기를 꺼낸다. 아쉬움에 황토가 깔린 널찍한 마당을 거닐어 보니 마치 선비가 된 듯 마음이 더 한가롭다. 1㎞나 되는 가로숲도 600년 된 느티나무가 함께하니 느긋하게 한발 한발 내딛게 한다. 그러고 보니 시골마을을 언제 찾았는지 기억이 까마득하다. 여유 없이 살았다는 방증일까. 그래서 찾은 곳이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이었다.

◇기와지붕이 넘실 넘실대는 명문마을

중앙고속도로 의성나들목에서 5호선 국도를 따라 15분 정도 달려 의성읍에 도착하면 ‘청송 옥산’ 이정표가 있는 914호 지방도가 이어진다. 이 도로를 따라 14.5㎞를 지나면 도로 왼편에 ‘사촌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사촌마을’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영남의 대표적인 반촌으로, 기와지붕이 바다를 이룬다고 해서 와해(瓦海)라 불릴 만큼 번성했던 마을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과 병신의병(1896)을 주도한 마을이기도 하다.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 따서 지은 사촌마을은 최치원의 장인 나천업의 고총이 뒷산(자하산)에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역사는 약 1천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392년 감목공 김자첨이 안동 회곡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부터의 기록만 전해질 뿐이다. 조선시대에 대과 13명, 소과 28명을 배출한 마을로 유명하다. 송은 김광수, 서애 류성룡, 천사 김종덕 등이 이 마을에서 났다.

안동 김씨 김광수는 연산군대에 당파주의를 반대하며 600여 년 전 이곳에 내려와 영귀정(泳歸亭)이라는 작은 정자를 짓고 은거하다 98세에 세상을 하직한다. 그는 후대에 이르기를 ‘과거는 보되 높은 벼슬에 출사치 말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마을 전체 분위기는 시대를 못 이겨 새로운 형태의 집들이 곳곳에 들어서 옛 모습을 많이 잃었다.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이 마을에 왜군이 와서 불을 질렀고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에 분개해 다시 의병을 일으키자 일본군들이 몰려와 다시 불을 질러 마을을 황폐화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마을 북편은 송림이 뒤덮인 자하산이 있으며, 서편에는 안동 김씨가 사촌으로 입향 할 때 조성한 남북 방향으로 길게 놓인 가로숲(천연기념물 제405호)이 마을의 방풍 겸 경관지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퇴계 이황의 제자인 김사원이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자신의 호를 따서 세운 만취당(경상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69호)과 그 뒤에 수령 500년 된 향나무(경상북도 지방기념물 제107호)가 있다.

송은 김광수(1468∼1563)가 연산군 때 관직을 버리고 은둔 생활을 하며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지은 영귀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4호)이 남아있다.

안동김씨 종택, 후산정사, 김정수 가옥(김태성 010-9367-4832), 초해고택(류근하 010-2910-2092)에서 한옥체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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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마을 가로숲은 고목들이 빽빽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600년 고목들이 1㎞ ‘쭉’...사천 가로숲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왕버들…. 사촌 가로숲은 고목들이 빽빽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얼른 그 속으로 파고들어보니 따가운 햇빛이 은은한 조명으로 바뀐다. 서로 엉켜 자라는 나뭇가지와 제각기 다른 모습의 잎이 이채롭다. 숲이 있는 마을은 왠지 친근함이 더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나무, 물 등 자연과 동떨어질 수 없음에서 연유한다.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 가로숲은 김자첨이 안동 회곡에서 이곳으로 삶터를 옮겨와 조성한 것으로, 서쪽의 평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방풍림이다. 또 풍수지리학상으로 마을 뒤의 자하산은 문필봉의 형국으로, 우백호가 부족한 형상이라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하여 숲을 조성하고 가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서림(西林)이라 부르기도 했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은 대개가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활엽수로, 높이는 20~30m에 이른다. 수령은 400~600년 정도이며 숲의 길이는 정확히 1천50m다. 이 숲은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을 알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됨에 따라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 중에 있다.

/news/photo/first/201508/img_172862_1.jpg"사촌만취당-2222/news/photo/first/201508/img_172862_1.jpg"
사촌 만취당. 퇴계 이황의 제자 김사원 선생이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1582년(선조 15년)에 착공,1584년에 완성한 임진왜란 이전의 건물이다.

◇하늘 가장자리에 걸린 아름다운 나무와 ‘만취당’

아름드리 숲에 둘러싸인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만취당(晩翠堂)은 사촌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이다. 조선조 특유의 11간 대청 건물인 만취당은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無量壽殿)과 더불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현판의 글씨는 김사원과 동문인 명필가 석봉 한호가 썼다. 전체적인 건물은 누각 형태를 하고 있다. 도리(서까래를 받치는 부재)와 대량(대들보)의 구조결구법, 종대공(종도리를 받치는 부재)과 종량받침의 치목수법, 평고대(처마 곡선의 긴 부재)와 연함(기와 받침 부재)의 단일부재 수법 등 여러 가지 건축기법이 잘 보존돼 있다. 앞서 언급한 화마에도 만취당이 온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앞에 우물이 있어 가능했단다. 한 낮에도 높은 단 위에 세워진 만취당 안은 그늘이 져서 시원하다.

대청마루에 앉아 내다보면 하늘 가장자리에 걸리는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 바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107호인 향나무다. 김광수가 이 나무와 벗하여 청빈하게 살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의성=김병태기자 btkim@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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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국 고분에서 발굴된 금동관.

고운사서 템플스테이…조문국박물관서 삼한시대 유물 감상

사촌마을 주변에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 유적들이 즐비하다. 선비의 숨은 손길을 직접 느끼며 체험해보자. 무더운 여름날 아주 뜻 깊은 여행길이 될 듯하다.

◇글을 읽고 시 한수 읊으니...‘영귀정’

점곡면 소재지에서 남쪽 앞산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오면 산기슭의 노송 숲 사이에 있다. 김광수가 자연과 더불어 학문에만 전심하기 위해 1500년경에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아주 작은 방 두 개와 작은 마루 한 칸이 전부다. 지금은 안동김씨 문중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최치원의 얼이 살아 숨쉬는 ‘고운사’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운사도 의성을 찾았다면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다. 구름을 타고 오른다는 뜻의 등운산(騰雲山)에 있다. 사찰 앞에까지 차로 갈 수도 있지만 입구에서 약 10분 정도는 걷기를 추천한다.

입구에서부터 솔향 흐르는 천년 솔숲을 따라 황토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온다. 일주문과 절을 지키는 사천왕은 속세의 탐욕과 욕심이 부질없음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원래는 높을 고(高)자를 썼는데 최치원의 호를 따서 孤雲寺(고운사)로 바꾸게 됐다. 한가지 눈여겨 볼 것은 우화루 건물에 걸린 ‘孤雲寺’ 라는 현판. 19세기에 이수철이라는 10세 어린이가 쓴 글씨라니 놀랍다. 새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산사를 체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가 연중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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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신발.

◇삼한시대 속으로 ‘조문국박물관’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들이라면 금성면의 조문국박물관을 함께 둘러보자. 해설사들이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다는 조문국은 한자로 召文國으로 사람 이름이 아닌 삼한시대 진한의 12부족국가 중 하나다.

조문국박물관은 조문국의 역사와 의성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전시하기 위해 2013년 문을 열었다.

박물관에는 삼한시대의 토기류, 농공구류 등 소장유물 76점이 전시되어 있다. 또 어린이 고고발굴체험관이 있어 유물복원을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박물관 옆에는 민속유물전시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의성지역에서 보존되고 있는 민속놀이를 살펴볼 수 있다. 밖에는 미로공원과 공룡놀이터도 있어서 아이들이 즐거운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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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제 귀걸이.

◇조문국 경덕왕릉 ‘금성산고분군’

박물관 건너편에 보이는 올록볼록 봉분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금성산고분군으로 삼한시대 부족국가 조문국의 경덕왕릉과 주변에 200여 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지름 15~19m, 높이 3~4m의 대형분과 지름 10~15m, 높이 2~4m의 중형분, 지름 10m 미만의 소형분이 고루 밀집되어 있으며, 원형봉토분이 대부분이다. 산책길이 잘 정비돼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

의성=김병태기자 btkim@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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