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늘 포구로부터 불어왔다.
거기서는
닿을 수 없는 정적이 홀로 젖어 있다.
자정이면 썰물의 향방에 씻기는
그대 맨발.
어느 지체(肢體)도 떠는 듯싶다.
감약조에 몸을 맡긴 뱃전들의 숙취는
안개 저쪽
어떤 날개를 예비하고 있을까.
온몸을 밝혀 뜬 만원의 때에도
우리는 손톱 밑에 숨겨 둔 죄의 의미를 밝히지 못한다.
꿈, 사랑도 그렇다.
문득 낡은 소매의 어둠이 부리는 어망 안으로
근해(近海)의 눈먼 고기들 찾아 헤매는 고향
그것은 최초의 한 가닥 빛이었는가
잠 속의 무한 눈물이었는가
바람의 통로를 따라
더 멀고 강한 구름을 쫓는 바닷새들
(이하 생략)
▷대전광역시 출생. 충남대학교 대학원(박사과정)수료. 1979년『중앙일보』신춘문예 및『문학사상』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그대의 벽지」등이 있으며 현재 대학교수로 재직 중.
이 시인의 작품 경향은 `절제된 언어와 압축된 시 형식을 지향하면서 강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메타포와 상징적인 시어를 구사한다’는 평을 얻고 있다.
벽지는 이른바 외진 곳 또는 으슥하고 한적한 곳을 말한다. 시인은 `그대의 벽지’ 에서도 강한 메타포가 있다. `닿을 수 없는 정적이 홀로 젖어’ 있는 포구의 `썰물의 향방에 씻기는 / 그대 맨발’의 두드러진 이미지에서 이 시인의 시적 기교를 엿보게 한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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