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입문 16년째 맞은 이영재 정의당 대구시당위원장
정치 입문 16년째 맞은 이영재 정의당 대구시당위원장
  • 승인 2015.10.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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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 부대끼면 지역 위해 활동

색깔 아닌 능력으로 승부

보수 도시에 진보의 깃발을 꽂다

지역공동체 조성…주민 위한 활동 시작

예산 없어 포기한 보건지소 건립 활약

첫 낙선 이후 더 주민 속으로 ‘깊숙히’

2010 地選서 여당 제치고 구의원 당선

대중과 함께 진보정치 실현

지역 여야정치권 만나 대구 현안 고민

새로운 진보정당 만들기 행보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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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정의당 대구시당위원장은 ‘대구의 풀뿌리 민주주의’로 대변할 수 있다. 주민을 위한 지역공동체 활동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지방자치의 현장에 뿌리를 내렸다. 이 위원장은 “후보자가 아무런 토대 없이 출마하는 건 지방자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출마는 자산의 가치마저 넘어서게 된다. 당선 여부를 떠나서 대구의 정치를 바꾸려고 가치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의회 운영 및 우수사례집, 자치법규 길라잡이, 지방자치 가이드북, 지방자치의 이해, 지방자치단체 재무회계규칙정해, 지방자치의 이상과 현실, 지방자치와 주민의 권리.

이영재(48) 정의당 대구시당위원장의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책들이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많았다. 지천명(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의 진보정당 정치인은 정치 입문 16년째를 맞았지만, 여전히 ‘열공’ 중이다. 수십 년 동안 보수의 ‘아성’으로 자리 잡은 대구에서 ‘실력’으로 인정받는 이유다.

‘이영재’라는 이름 세 글자는 대구의 진보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다. 경북지역과 함께 ‘TK’로 불리면서 대한민국의 ‘정치적 분지’로 알려진 대구에서 이 위원장은 이변을 일으켰다. 5년 전, ‘민주노동당’이란 낯선 정당의 이름으로 보수 일색의 도시에서 ‘진보의 깃발’을 꽂아 화제가 되더니, 최근에는 정의당 대구시당을 이끌며 여럿 진보정치인들과 함께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이 위원장을 지난 10일 대


◇ 주민밀착형 생활진보정치

이영재 정의당 대구시당위원장은 지난 2010년 6월 2일 치러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주목을 받았다. 진보정당의 후보로 출마해서 한나라당(옛 새누리당)의 후보들을 제치고 1등으로 구의원에 당선됐다. 대구 북구 ‘아’ 선거구에서 8천476표(26.9%)를 얻었다. 한나라당 후보 3명과 친박연대 후보보다 더 많은 표였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위원장의 당선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건’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거구에서 착실하게 기반을 다져왔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96년 한국농어민신문사에 입사해 8년 동안 기자로 일하다 칠곡지역에서 지역공동체 조직을 결성해 도서관 건립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38살이던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오랜 시민운동 후 불혹의 고개를 넘어 구의원이 된 후에야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 그의 선배 정치인들이 학생운동 지도부로 20대부터 정치적으로 주목받고 30대에 의원이 된 뒤 중진 반열에 오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위원장의 정치는 풀뿌리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시작됐다. 경북 성주 출신인 그가 대구의 신도시인 칠곡지역에 뿌리를 내린 지 올해로 19년째를 맞는다. 검단동에서 칠곡 3지구로 옮겨와 둥지를 틀었을 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던 시기였다. 국우터널도 정식 개통 전이었다. 2000년 주민들과 함께 대구북구시민연대라는 지역공동체 조직을 결성했다. 우선 도서관 건립 운동에 착수했다. 인구 30만 명인 대구 북구에 도서관이 없어서였다. 그는 “1990년대 말, ‘어떻게 하면 주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예전처럼 길가에서 투쟁하는 모습만 보일 순 없었다. 선회해서 동네에서 주민들과 소통하고 부대끼고자 조직을 만들고, 주민들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고 말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운동을 펼친 지 8년 만인 2008년 구립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해당 지자체와 지역정치권 등을 압박하고, 구민들의 여론을 한데 모았던 덕분이었다. 연대의 노력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도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동화작가 초대 강연회와 동화구연대회 등 주민행사가 열린다.

북구에 도시형 보건지소를 설립하는 데에도 이 위원장의 역할이 컸다. 당시 주민들은 1시간 넘게 걸려 침산동 보건소에 갔지만, 강북보건지소 건립은 북구청에서 사실상 포기한 사업이었다. 예산 때문이었다. 보건지소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은 그는 주민 1만5천명의 서명을 받아 관할 북구청과 보건복지부에 탄원했다. 또 보건복지부와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 관계자들까지 만나 설득하고 호소했다. 그 결과, 북구에는 8개의 보건지소가 설치됐다.

젊은 주부층을 위한 운동과 도농결합사업도 전개했다. 첫째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 전문가들과 경험자를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만들고, 농촌지역 주민들과 북구의 아파트 주민들을 도농결합사업으로 하나로 묶었다. 농민들의 친환경농산물을 주민들에게 직거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밖에 아파트 주민들이 베란다에 간단한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들로 대구북구시민연대는 주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렸다. 5명으로 시작한 연대에 회원이 200명으로 늘었다. 이 위원장은 “연대는 일반 시민단체와 다르다. 지역공동체를 목표로 하는 주민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 꿈꾸는 진보정치인

대구 북구에서 수년 동안 노력을 해왔지만, 2006년 5월 31일에는 정치의 쓴맛을 봤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다. 90표 차이로 구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개표 30분도 되지 않았을 때, 당선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시 확인해달라고 했는데, 결과는 뒤집혀 있었다”며 “고배를 마셨지만, 진보진영이 약한 조직력에도 선전했다고 본다. 내용 면은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 진 것”이라고 회상했다. 당시 투표결과에는 선거를 11일 앞두고 터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의 영향이 컸다고 분석됐다. 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지방선거 운동 도중에 피습을 받고 나서는 “대전은요?”라는 한마디로 보수진영은 다시 결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낙선 이후 정치적 행보 더 확장돼 북구 전역으로 풀뿌리 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 도전이 시작됐다. 더욱 깊숙하게 지역 속으로, 주민 속으로 들어갔다. 북구에서 끊임없이 ‘주민·연대사업’을 펼쳤고, 4년 뒤 그의 노력은 열매를 맺었다. 대구 북구 칠곡 3지구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보수니 진보니 하는 차원보다는 10년이 넘게 ‘주민밀착형 생활진보정치’를 펼친 끝에 나온 결과였다.

선거에서 이 위원장은 ‘무상급식’을 핵심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무상급식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서나 가능한 공약이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주부층과 젊은 유권자들에게서 폭발적인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후보와 운동원들은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만나 무상급식의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설파했다”고 말했다.

선거운동 때 지역구 국회의원이 선거차량에 올라 ‘우리 북구에 친북좌파가 웬 말이냐’며 색깔론을 들먹였지만, 주민들은 오히려 그를 지지했다. 아파트 단지의 입주자대표나 동대표들도 ‘우리는 진보·보수, 좌파·우파 이런 건 잘 모르지만, 당신은 우리의 일상적 삶을 개선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지지의사를 표명한 뒤 자발적 선거운동원이 되기도 했다. 유권자들이 ‘왜 굳이 민주노동당이냐’고 질문해 올 때는 당당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10년이 넘게 바로 당신들과 함께 살을 비벼온 이영재를 믿지 않느냐, 그런데 나는 민주노동당의 당원이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에도 한 번쯤은 맡길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해 6월 4일 치러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인 선거구에서 당선된 야권 의원은 이 위원장이 유일했다. 당시 그는 장래의 정치적 기반을 다진 기초의원도 나왔다는 평을 받았다. 진보정당이 매번 받고 있는 독자적인 지역정치 활동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해당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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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위원장의 명함 뒤편에는 건지소 설립 운동, 홀몸노인 반찬배달사업, 소외지역 공부방 사업,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 만들기 사업 등 그동안 그가 지역사회에서 진행하는 갖가지 사업과 운동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 대중과 함께 나아가는 진보정치

정치 입문 16년차 이영재 위원장은 대구에서 지방자치의 현장에 뿌리 내리고 있는 진보진영의 리더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지난 7월부터는 책임감 있는 자리를 맡아 더 높은 꿈을 꾸고 있다. 정의당 대구시당위원장에 당선된 이후 지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정당으로 다가서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의당 대구시당 집행부는 조기석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당위원장과 류성걸 새누리당 대구시당위원장을 만나며 지역 정치 발전을 위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지역경제 활성화 및 청년 실업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권영진 대구시장을 만나 대구의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또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드는 데 참여한다며 노동당을 탈당한 장태수 서구의원 등과 함께 ‘진보혁신과 결집을 위한 연석회의 대구모임’(대구모임)도 발족했다. 이 모임의 모토는 변화와 개방, 소통이다. 이 위원장은 “정의당이 운동권 정당이라서 꽉 막혀 있다는 얘길 많이 듣는데, 이제는 소통하려고 한다”면서도 “하지만 대구시민들에게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냐는 과제가 남아있다. 소통하기 위해선 기나긴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진보정당이 대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게 핵심”이라고 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첫발은 정의당 대구시당 내부의 변화다. 이 위원장은 “이달 중순쯤 시당 차원의 토론 행사를 진행한다. 당원들과 대구의 미래 비전에 대해 명확하게 정하고, 정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자리”라며 “당비만 내고 활동을 하지 않는 당원들이 있는데, 이를 바꿔 당원과 변화의 흐름을 같이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앞으로 정의당 대구시당을 이끌어 갈 2년 동안 대구 진보정치의 확장을 목표로 두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를 안 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여당에 맞설 후보를 내는 식으로 대응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지역사회에서 정당 색깔이 아닌 능력 있는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내년 총선 후보자들도 큰 테두리에서 진보정치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할 것.” 손선우기자 sunwoo@idaegu.co.kr


이영재 위원장은?

△1967년 경북 성주 출생 △1996년 경북대 농과대 졸업 △전 한국농어촌신문 기자 △전 대구북구시민연대 대표 △현 제7대 대구 북구의회 의원 △현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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