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상화와 육사 그리고 백기만
<대구논단>상화와 육사 그리고 백기만
  • 승인 2009.09.1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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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 교육학박사)

민족 저항 시인 이상화(李相和)의 고택을 돌아보는 중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것은 같은 시대 사람으로서 같은 저항시를 쓴 시인 이육사(李陸史)와 생전에 서로 만났을까 하는 점과 상화의 가장 절친한 친구는 누구였을까 하는 점이다.

우선 상화와 육사 두 사람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광야’를 대표작으로 남겼는데 이 두 작품은 모두 1920년대에 발표되었고 항일 저항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살았던 곳도 이웃에 있었다. 상화는 1901년생이고 육사는 1904년생이니 상화가 세 살 위였다. 그러나 이 정도의 나이는 허교(許交)의 범위 안이었고, 더구나 육사는 동생 원조(源朝)와 함께 안동에서 영천으로 이주하였다가 오늘날의 대구 남산동에 자리를 잡았으니 살았던 집도 상화의 집에서 이삼 십 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육사는 동생과 함께 상화의 가문에서 세운 교남학교에서 수학하는데 상화는 후에 이 교남학교에 두 번이나 근무한다. 또한 1920년대 중후반의 비슷한 시기에 육사는 `의열단 사건’으로 상화는 `ㄱ당 사건’으로 둘 다 대구에서 옥고를 치른다. 비슷한 고문을 받았을 것이고 그 울분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또 세상을 떠난 연유와 연대도 비슷하다. 둘 다 항일의 고초 속에서 병을 얻었는데 상화는 1943년, 육사는 이듬해 1944년에 숨을 거두었다. 육사는 북경의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고, 상화는 대구의 집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상화의 경우도 일제의 감시가 심했던 만큼 감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상화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계산동 고택 옆에는 중국에서 독립 운동을 한 그의 형 이상정(李相定) 장군의 집이 있었는데 두 집 모두 헐값이었다고 전한다. 그것은 일본 경찰이 와서 하도 많이 괴롭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민족 저항 시인으로서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며 쌍벽을 이룬 두 사람은 어떤 관계였을까? 많은 자료를 유심히 살폈으나 두 사람이 직접 조우하여 함께 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상화가 육사의 동생 원조와 함께 활동한 자료는 찾을 수 있었다. 1928년 상화는 원조와 함께 0과회(零科會) 시가부(詩歌部)에 함께 시를 출품하게 되는데, 이때 행사장인 조양회관(朝陽會館) 앞에서 같이 찍은 사진을 상화 탄생 백주년 기념 특별전 도록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두 민족 시인이 내왕하며 의기투합하였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왔을까? 이는 앞으로 필자의 숙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그럼 상화 시인에게 가장 절친한 친구는 누구였을까? 세상에는 많은 만남이 있는데 상화와 목우(牧牛) 백기만(白基萬)의 만남은 그야말로 지음(知音)의 관계였다. 상화 사후 백기만이 상화의 작품을 정리하는 일에 소홀히 하였다면 오늘날 상화의 작품은 그만큼 널리 알려지지 못하였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목우는 상화 사후 `尙火와 古月’이라는 책을 통해 상화와 요절한 시인 이장희(李章熙)의 유작을 발굴하는 한편 그 삶의 면면을 그대로 기록하였다. 그리고 상화의 묘비(墓碑)는 물론 달성공원 안의 상화시비(尙火詩碑) 건립 등 상화 및 고월과 관련된 모든 사업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옛 교남학교 터에 상화와 고월의 첫 글자를 딴 `상고예술학원’을 열어 그 문학 정신을 계속 이어가게 주선하기도 하였다.

두 사람은 죽마고우이기도 했지만 문우로서 인생을 동반하였다. 두 사람은 청년 시절 `거화(炬火)’라는 동인지를 함께 내기도 하였고, 1919년에는 대구 만세 운동을 같이 주도하였으며 장가를 갈 때에는 서로 상객으로 오고갔다. 이러한 백기만은 지금 신암동 선렬공원 독립지사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우정은 우리 문단사 뿐만 아니라 우리들 삶을 그만큼 더욱 풍요롭게 가꾸어주고 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을 더욱 깊이 배워야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만남은 아름답다.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이자 권리이고 또한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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