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검은 축제’는 희망에 차있다
<대구논단> `검은 축제’는 희망에 차있다
  • 승인 2009.01.1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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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흰색과 검정색은 색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레파스의 종류를 살펴보면 어김없이 흰색과 검정색이 들어있다. 빨강, 노랑, 파랑 등 삼원색 사이에 끼어있는 흰색과 검정색은 그림물감을 사용하는 빈도(頻度)로 따지더라도 다른 어떤 색깔보다도 많이 사용된다. 그 중에서도 검정은 근래 등산복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검정이 등산복에 차용되기 시작한 연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우선 때를 덜 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게다가 여성 산악인이 부쩍 늘어나면서 검정색깔이 주는 타이트한 시각적 효과가 기호를 재촉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요즘 산에 가면 절반 이상이 검정 등산복으로 덥혀있다. 그나마 원색을 입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이런 정도니 몇 년 전에는 온통 검정 일색이었다.

필자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교복은 대부분 검정이었다. 검은 교복에 하얀 테를 두른 모자를 쓰고 거들먹거리던 어릴 때의 모습을 앨범을 들추다보면 보게 되는데 옛 추억에 잠기게 하는 장면의 하나다. 사실 색깔로 치면 검정은 호감이 가는 색이라고 볼 수 없다. 어둡고 칙칙한데다 정반대되는 흰색 외에는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산복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것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의 재주다.

이번에 미국에서 전 세계민의 예상을 뒤엎고 흑인출신의 오바마가 당선했을 때 모두 놀랐다.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와 맞붙었을 때도 힐러리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본선에서 공화당의 매캐인과의 싸움은 경선승리를 그대로 잇는 선거 전략이 먹혀들어가면서 처음부터 리드했다.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흑인을 끌어다 노예로 부려먹던 미국인들이 이제는 흑인출신을 그들의 최고지도자로 선출한 것이다. 그것도 전체 유권자의 10%를 겨우 상회하는 적은 숫자를 가진 흑인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줬다. 링컨 대통령의 영단에 의해서 해방되었다고 하지만 미국의 주류사회는 백인들의 독식이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흑백학교가 따로 있을 정도로 철저히 소외되었던 흑인들이 정권을 휘어잡은 것이다.

그것도 백인 유권자의 43%가 오바마를 찍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흑인들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 오바마는 흑인이라는 것 이외에는 백인보다도 훨씬 극적인 삶을 살아오면서 자기를 개척해 왔다. 뛰어난 두뇌로 일찍이 정치에 입문하여 불세출의 영웅으로 떠오른 사람이다. 41세에 대통령에 당선한 케네디 이후 가장 연소한 47세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1월20일 그가 미국대통령에 취임한다. 그가 집무할 백악관은 건물 전체가 하얗다. 그래서 화이트 하우스라고 부른다. 지금까지는 안팎이 모두 하얗지만 이제는 겉과 달리 안쪽은 검어졌다. 그렇다고 블랙 하우스로 개칭되지는 않는다. 공교롭게도 화이트 하우스는 200여년 전에 흑인노예들의 강제노동에 의해서 지어졌다.

사람 취급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흑인들의 설움과 한이 맺힌 곳이기도 하다. 1800년 2대 존 애덤스 때 완공되었고 역대 대통령들은 집에서 부리던 노예들을 데리고 들어와 살았다. 노예해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링컨의 절친한 친구였던 프레드릭 더글러스는 흑인이란 이유로 문전 축객된 일도 있다. 이러한 흑백차별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이어졌다.

때마침 올해는 링컨 탄생 200주년이다. 44대 대통령에 취임하는 오바마는 노예해방의 마지막 결실이다. 흑인을 비하하여 니그로(Negro)라고 부르던 표현이 이제는 아프리칸 아메리칸(African American)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미국의 주류사회가 아직도 흑인을 무시하는 풍조까지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다.

미국은 지금 최대의 변화를 이루고 있다. 아무리 출중한 능력을 가졌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그 것 자체가 희망이요, 새로운 세상을 의미한다. 이번 취임식 날은 미국 전체의 기쁨이요 축전의 날이다. 세계 각국에서도 전폭적인 축하의 뜻을 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오바마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흑인들의 기쁨은 극에 달한 느낌이다. 취임식을 참관하기 위해서 미리미리 휴가신청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워싱턴에 가기 어려운 사람들은 TV로 시청하기 위해서도 직장을 쉬어야 한다는 들뜬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이들의 기쁨은 가히 축제나 다름없다. 비록 소수자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희망은 세계에 뻗어나간다. 이 희망은 세계민 전체의 행복추구에 다름 아니다. 지금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에 시달리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다. 경제위기에 내몰린 세계민들이 어쩔 줄 모르고 헤맨다. 평화와 복지를 향한 오바마의 힘찬 발걸음은 축하를 받을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는 이를 실천해 내야 한다.

세계대통령의 별칭을 받는 미국대통령으로서 희망을 노래하는 많은 이들에게 축복을 줘야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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