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직도 박해받는 여성인권과 정치참여
<기고>아직도 박해받는 여성인권과 정치참여
  • 승인 2009.09.2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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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성 희 (한국정치평론가협회 부회장)

우리나라에서 흔히 써오는 말 중에 이미 효력을 상실했을 것 같은 낱말 두 개가 있다. 하나는 관존민비(官尊民卑)요, 또 다른 하나는 남존여비(男尊女卑)다. 두 단어 모두 민주주의 정신에 역행하는 것은 물론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현대사회에서는 벌써부터 배척되고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애초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아예 못 박아 놨다.

그렇다면 정말 관존민비가 사라졌는가. 관은 높고 백성은 낮다는 인식이 상당부분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관청에만 가면 저절로 주눅이 든다고 할 정도로 우리 백성들은 절절 기는 형국이었는데 요즘은 많이 개선되었다. 관청을 대표하는 관리들의 태도부터가 공손해진 것은 말 할 나위없고 드나드는 백성들의 몸짓도 당당하다.

관청에 하소연할 일이 있더라도 조금도 위축된 모습이 아니다. 남존여비는 어떠한가. 어디서 남존여비 운운하는 작자가 있다면 그는 정신병자 소리 듣기 십상이다. 거꾸로 여존남비의 세상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가정의 경제권을 틀어쥔 가정주부들의 발언권은 점점 수위를 높여가는 중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도 눈부시다. 서울의 초등학교에는 남자선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여럿이다.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에도 여성 합격자수가 남성들을! 바짝 뒤쫓고 있다.

국회에도 비례대표를 의도적으로 배려하여 여성의원이 13.7%다. 일본보다 높다. 스웨덴이나 남아공, 쿠바 등은 50%에 가깝다. 이처럼 나라에 따라서 여성들의 인권과 정치참여가 활발하기도 하고 침체되어 있기도 한다. 그나마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참여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이슬람권의 여성들은 아직도 얼굴을 가린 모습 그대로 사회적 활동이 제약받고 있다.

며칠 전 수단에서는 여성 언론인이 공공장소에서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벌금 200달러에 처해지는 형을 받았다. 이슬람 율법에는 바지를 외설복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웃지 못 할 얘기지만 이슬람은 아직도 철저하게 여성의 사회진출에 부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5월17일 시행된 쿠웨이트 의회선거에서 여성 4인이 당선한 것은 이슬람 역사상 최초의 변혁이다. 경천동지할 사건이다.

그들이 낙선시킨 사람들이 여성들의 투표권을 반대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라는 점에서 당선 이외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인다. 이슬람권에서도 이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들에게는 정당공천도 없었고 여성할당제도 존재하지 않는 척박한 풍토에서 자력으로 승리했다. 여성 유권자들이 자기 일로 생각하고 여성의원을 선택한 덕분이다. 이들도 2005년도에는 지방의회 출마조차도 거부되었다.

지금은 사형을 받고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후세인이 이라크를 전격 침범했을 때 47인의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트럭을 운전하여 쿠웨이트 사람들을 피난시킨 일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성운전을 금지하는 사우디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창녀라는 호칭과 함께 2년간 취업이 박탈되었다. 박해와 수난을 무릅쓰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인간의 본 모습을 찾고자하는 이슬람권의 여성들은 지금 혁명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슬람권을 제외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대부분의 국가들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오는데 뒤따른 엄청난 희생과 투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유라고 하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혁명구호처럼 여성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여성 선각자들이 싸워야 했다. 프랑스 혁명은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에 큰 기여를 했지만 앞장섰던 여성들의 인권은 반동세력에 의해 개선되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게 된 것이 혁명이후 150년이나 흘러간 뒤였으니 얼마나 철저하게 여권을 탄압했는지 알 만 하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국력신장과 경제부흥에 활력소 역할을 했지만 여성을 비롯한 노동자는 신판 노예로 전락하고 오늘날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인권 옹호국가로 알려진 미국은 어땠을까. 미국이 흑인을 노예로 삼고 그로 인해 남북전쟁을 치른 역사는 다 아는 일이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으로 맞붙은 남북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끝났다. 북군으로 힘을 보탠 흑인들은 투표권을 얻어냈지만 끈질긴 흑인차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번 대선에서 오바마의 당선으로 200여 년간 계속된 흑백차별이 겨우 걸음을 멈췄다. 그나마 미국여성들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1920년부터다.

모두 인내와 투쟁 그리고 희생이 빚어낸 산물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정식 등록된 여성단체만 42개에 이르며 기타 단체를 합치면 수백 개에 달한다. 그러면서도 이슬람권의 박해받는 여성인권과 정치참여금지에 대해서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인권과 참정권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여사처럼 부단히 외치고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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