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용무도, 사색당파의 대한민국
혼용무도, 사색당파의 대한민국
  • 승인 2015.12.2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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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식
한국선비문화수련원 교육연구실장
철학박사
일찍이 한비자는 부국강병을 이룩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현명한(賢) 군주와 현명한(賢) 신하를 찾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현명한 군주라면 간사한 신하들이 정권을 농단할지라고 적절히 대처하여 올바른 정치를 구현할 것이며, 설사 어리석은 군주를 만난다 할지라도 현명한 신하들이 잘 보필한다면 큰 변고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비자의 지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만고의 진리처럼 들려온다.

안타깝게도 2015년 대한민국은 현명한 군주도 없고 현명한 신하도 없는 듯하다. 대한민국 지성의 집단인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 혼용무도는 어리석은 군주를 뜻하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에다 천하무도(天下無道)를 합친 말로, 어리석은 군주로 인해 세상이 혼란스럽다는 뜻이다.

고려대 유승환 교수는 메르스 사태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 여당 원내대표의 사임과정에서 청와대가 부당한 압력을 넣어 삼권분립과 의회민주주의가 훼손된 점,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인한 국력의 낭비 등을 선정의 이유로 밝혔다.

이러한 이유 외에도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파당정치이다.

대통령은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 ‘배신의 정치’가 아니라,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고 호소하면서 측근들을 대거 총선에 투입하는 우(愚)를 범했다. 파당을 혁파해야 할 대통령이 파당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파당을 조장하는 우리정치권은 마치 조선의 사색당파가 재현되는 듯 온갖 파당이 범람하고 있다. 여권은 친박과 비박으로 나누어 치열한 권력투쟁을 전개하고 있고, 친박 내에서도 진박, 가박, 중박, 죽박, 망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파벌을 형성하여 권력을 향한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점에 있어서는 야당 또한 마찬가지이다. 친노와 비노는 당권을 쟁취하기 위한 치열한 대결양상을 연출하며 머지않아 분당의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끝을 보이지 않는 당파정치는 마치 조선시대의 사색당파를 방불케 한다. 당파싸움은 권력에 대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형성되며 그 결말은 하나같이 국민의 이익과는 배치되는 파국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이다.

조선시대 당파 역시 조정의 요직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조정랑 자리를 쟁취하기 위한 대립으로 동인과 서인이라는 파벌을 형성했고, 이후 남인, 북인, 대북, 소북, 노론, 소론, 시파, 벽파 등으로 발전되어 사색당파를 형성했다.

조선시대 사색당파는 왕권을 적절히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일당의 독재를 견제하는 등의 긍정적 요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론의 분열, 외척의 득세와 세도정치 등과 같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임진왜란 당시 동인과 서인 간의 의 극단적 당파싸움은 치명적 결과를 가져왔다. 선조시대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동인 김성일과 서인 황윤길은 일본의 정세에 대해 너무나 상반된 보고를 함으로써, 선조임금을 혼미하게 하여 임진왜란에 대비하지 못하고 온 나라와 백성들이 일본의 침략에 유린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은 뼈저린 역사의 경험이다.

한비자는 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맡기는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아 밤만 되면 사람들을 잡아가는 변고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쉽게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온갖 선심성 쪽지 예산을 남발하여 지역구민을 혹하게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국민의 혈세를 마구잡이로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서민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어야 할 복지예산 등의 감소를 가져오는 독이 되고 있다.

그들은 과도한 이념논쟁과 흑백논리에 빠져 국론을 낭비하고, 자신들의 금뱃지에 눈이 어두워 국회의원 지역구조정 문제는 법정시한을 넘겼고, 국회에 계류 중인 민생법안은 심의조차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청년의 고통과 서민의 고달픈 삶에는 관심이 없는 어리석은 군주와 신하들에게 권력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어서는 안 된다. 2015년 우울했던 대한민국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가슴에 교훈으로 새기며 2016년 병신년 새해에는 청년들이 취직걱정 없고, 서민들이 먹고사는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어 줄 어진(賢) 신하와 어진(賢)의 군주의 출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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