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진흥법, 무엇이 문제인가
인성교육진흥법, 무엇이 문제인가
  • 승인 2016.01.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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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규
경북대 교수
작년 1월과 7월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 시행되어 올해부터 인성교육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인성교육진흥법은 인성은 무엇이고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인성교육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보인다.

인성교육이 제기된 것은 1995년 ‘5·31 교육개혁방안’에서부터이다. 이 방안은 당시 사회문제로 떠오른 학교폭력의 원인을 인성교육의 부재 혹은 파탄에 있다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기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이십 년이 지난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 시행되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인성교육 강화를 줄곧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생들의 일탈행동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그동안 인성이 더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인성교육진흥법에 따르면,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다. 이 법은 인성교육의 핵심 가치와 덕목을 명시해 놓고 있는데,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이 그것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정한 인성의 핵심덕목은 2013년 8월에 발표한 ‘인성교육강화기본계획(안)’에 따른 것인데, 2013년의 계획안과 2015년에 제정한 인성교육진흥법의 핵심덕목은 비슷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2013년 계획안은 ‘나-우리-사회’라는 범주를 설정하고, 각 범주 안에 정직, 책임, 존중, 배려, 공감, 소통, 협동 등을 포함시켰다. 이와 달리 인성교육진흥법의 핵심덕목은 특정한 범주의 구분이 없이, 예와 효를 앞세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차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원래 있던 범주의 구분을 해체하면서까지 예와 효를 앞세우는 데는 뭔가 불편한 사정이 있어 보인다. 혹시 일탈 행동의 근본 원인을 학생들에게 돌리는 것은 아닐까? ‘니들이 예의가 없어서’, 혹은 ‘니들이 효를 몰라서’라는 식의 추궁은 아닐까? 다른 방향에서 물음을 제기할 수도 있다. 예와 효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매뉴얼로 된 교육 자료를 가지고 학생들에게 실천과제를 부여할 것인가? 교육과정을 만들고 이를 운용하기 위한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특정 이익 집단이 개입하지는 않는가?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인성교육 담론이 예와 효와 같은 덕목을 내세워 ‘인성’을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성의 개념을 본질적인 것으로 상정하게 되면 그것을 둘러싼 현실 세계와의 연결성을 고려하지 않게 된다.

예컨대 인성교육진흥법에 따라 학교에서 아침마다 5분간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자. 우리 전통 예절에 대해, 혹은 정직의 유익에 대해 좋은 배경음악과 함께 교훈적인 글을 낭송한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학교에 배포할 수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이를 아침마다 방송할 것이다. 인성 혹은 인성교육을 본질적, 보편적으로 규정하는 관점에서라면, 이런 인성교육이 단번에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이를 통해 인성이 함양되는 학생들도 분명 있을 것이니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적 욕망이 극단적으로 추구되는 우리 교육 현실에서, 사람다움이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개념이 공공연하게 실행되고 있다. 이런 관념을 받아들인 학생들이 명상의 시간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한 학생은 그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다른 학생은 그 시간에 차라리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몇 사람이라도 듣는 사람이 있을 테니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것인가? 아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인성교육’이 설정하고 있는 ‘예’나 ‘정직’ 같은 덕목과 실제 현실에서 작동되고 있는 사람다움의 개념이 한 개인의 내면에서 분열을 일으킴으로써, 인성교육이 분열의 경험을 낳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인성교육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관료제 속에서 급격히 경화되고 만다. 그리하여 인성교육 관련 강의 몇 시간을 수강하였는지, 인성 관련 글쓰기에서 수상경력이 있는지, 인성 관련 봉사활동에 얼마나 참여하였는지, 이 모두가 대학 진학을 위한 ‘스펙’이 된다. 인성교육진흥법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한 균형 있는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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