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깊이에의 강요
  • 승인 2016.01.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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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
대구지방보훈청장
‘깊이에의 강요’, 아주 오래전에 유행했던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짧은 소설 제목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어느 촉망받는 여류화가가 비평가에게서 ‘당신의 작품에는 깊이가 없다’라는 말을 듣고 그 깊이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고민하다가 결국 좌절해서 139미터 높이의 TV 방송탑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마는데 정작 그 비평가는 여류화가의 죽음을 전해 듣고 삶을 ‘깊이 있게’ 파헤치던 그녀의 예술적 재능을 아까워 한다는 시니컬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평가가 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비유가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유야 어찌 됐건 간에 항상 사물의 본질과 동떨어진 평가와 마주쳐야하고 그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연말에 있었던 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과의 외교적 합의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나니 ‘깊이’가 없다는 것이다. 완벽했다고 옹호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필자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스포츠 경기에 있어서 선수와 해설가의 차이이다. 즉, 해설가가 어떤 스포츠 경기를 아주 잘 설명한다고 해도 실제 그가 갖고 있는 경기 능력은 필경 십중팔구는 선수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는 전지전능한 신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스포츠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입장에서 헤아려 볼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관전할 때 우리는 모두 그 유명한 호날두나 메시가 되지만 정작 자신의 축구실력은 제각각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평가의 이면에 숨겨진 즉흥성 혹은 이해관계의 의도된 왜곡이다. 즉, 어떤 주제에 대한 평가가 터무니없이 낮거나 높은 것은 어쩌면 너무 직관에만 의존해서 툭 던져진 한마디에 불과한 것이거나 아니면 무엇인가 이해타산적인 계산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일 경우가 많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비근한 예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광화문 광장 태극기 게양 문제, 노동개혁 반대 시위 사건 등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현재의 중등학교 역사교과서 대부분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않았어야할 나라라는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고 그러한 역사교육의 폐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최고의 헌법가치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전복시켜야한다는 어느 여고생의 발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역사교육의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정화의 이유가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라고 정치적인 주장을 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흐려버린다.

광화문 광장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태극기가 무엇인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국가상징의 최고격인 국기(國旗)가 아니던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게양에 찬성하는 국민들이 반대하는 사람들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에 불과한 관련 위원회의 결정이라는 점을 들어 서울시는 작년에 사실상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의 대미였던 광화문 광장 태극기 게양을 무산시켰다. 그것도 태극기 게양이 ‘권위주의적이다’라는 설명을 붙여서 말이다. 그러면 중요한 행사나 지역에 국기를 항시 걸고 있는 영국, 미국, 프랑스, 캐나다 같은 경우는 무엇으로 설명한 것인가? 이 또한 태극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아니 좀 더 솔직히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노동개혁 반대 시위는 어떤가? 어느 신문의 신년 여론조사 결과 국민 63%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개혁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근로자의 희생이 지나치게 크다고 주장하며 대규모의 불법 집회를 여는 등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노동 문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 못한 필자가 구체적인 평을 내놓을 수는 없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 경제가 일단 숨통이 터지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면 답은 보이는 것 같다. 최근에 어느 유명 정치인이 한 말처럼 정말 (대한민국 경제가) 죽어봐야 알 때는 이미 늦은 것이기에.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여기저기 신년 덕담도 나누고 스스로나 직원들에게 업무와 관련된 여러 가지를 주문하면서 혹시 필자 또한 깊이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 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강요는 안 되지만 사물과 현상에 대해 좀 더 본질적인 성찰과 연민을 가져보라는 ‘권유’는 할 수 있지 않는가하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앞서 인용했던 소설책 속의 다른 단편이자 맨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공공, 노동, 금융, 교육의 4대 개혁으로 30년 성장기반을 만들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고 싶은 대한민국 국민의 숙명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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