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술발전소 ‘일등공신’…뚝심으로 문화지평 넓혔다
대구예술발전소 ‘일등공신’…뚝심으로 문화지평 넓혔다
  • 황인옥
  • 승인 2016.01.0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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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발전소 김은영 큐레이터

160억원 예산 맡아 종횡무진

독일 ZKM 미디어 뮤지엄과

개관 후 첫 국제교류 ‘호평’

신예 위한 ‘텐 토픽 프로젝트’

멘토링·오픈 스튜디오 제도 등

실험성 짙은 프로젝트 잇달아

“예술가에겐 창작의욕 고취…

관람객엔 색다른 경험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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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가와 공연예술가들의 합동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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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발전소 다양한 문화행사에 참여중인 입주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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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발전소 ‘문화가있는날’에 참여중인 시민들.

“굳이 내세울만한 것을 생각해보면, 남과 다른 특징적인 것은 있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오래 일한 탓인지, 대구예술발전소 김은영 총괄큐레이터의 자기소개가 평소 성격처럼 똑 부러지지가 않았다. ‘딱히 내세울 것 없다’는 뉘앙스로 먼저 자신부터 낮췄다. 하지만 뒤이어서 한 개인이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이력들이 굴비 행렬처럼 줄줄이 엮어져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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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큐레이터.

◇공공미술기관 개관 멤버로 활동

“세 곳의 공공미술관에서 개관멤버로 일했습니다.”

김 총괄큐레이터는 경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대구예술발전소를 거쳤다. 세 기관 모두 개관멤버로 참여해 전시 공간 조성, 개관기획 및 조성공사 등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이는 국내에서도 드문 케이스로, 그녀의 독보성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 큐레이터가 첫 개관멤버로 재직한 미술관은 경남도립미술관이다. 그녀는 미술관 건립 초기인 2004년 경남도립미술관 개관 T/F팀에 입사해 3년 동안 재직하면서 개관준비와 다양한 기획에 참여하며 신생미술관의 역사를 축적했다.

그녀와 대구시의 인연은 2009년 5월, 대구미술관 개관 T/F팀 큐레이터를 맡으면서부터 시작됐다. 계명대 동양학과와 영남대 문화예술디자인대학원 예술행정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영남대 인문사회계열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 박사학위과정 재학과 경남도립미술관 개관 멤버의 이력을 기반으로 대구미술관 개관 1년 전부터 소장품 구입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에 지금은 작고하신 김우조 화가를 김영동 큐레이터의 추천으로 알게 되면서 그 분의 작업실에 미술관 큐레이터들과 드나들었어요. 그러면서 좋은 작품을 두 점 구입하게 됐죠. 그때 연로하신 선생님의 열악한 사정을 뵈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지역 원로이시며 화단을 꿋꿋이 지켜 오신 분이시지만 미술관 작품평가위원회에서 판화라는 이유로 작품가액이 낮게 평가 될뻔 하려는 것을 저희가 강력하게 어필해 통과시켰죠. 선생님께서 판화작품을 대구미술관에 넣으시고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보람으로 남습니다.”

김 큐레이터는 대구미술관 개관과 함께 미술관으로 직행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대구시에 남았다. 미술관 공사 막바지 무렵에 대구시가 개관을 준비하고 있던 대구문화창조발전소(현 대구예술발전소) 담당자로 김 큐레이터를 추천했기 때문. 2010년의 일이다. 김 큐레이터는 이때부터 대구문화창조발전소 업무를 맡으며 발전소 국비 예산 업무와, 리모델링 공사, 문화행사 기획업무에 본격적으로 투입됐다. 3번째의 공공미술기관 개관 업무 배치였다.

“발전소 리모델링 일로 문화체육관광부를 자주 드나들며 국비업무를 수행했어요. 당시 대구시 예산 80억과 문체부 국비 예산 80억 해서 총 160억원 예산으로 발전소를 리모델링 준공했습니다. 큐레이터 한 명에게 국비 예산 등 모든 일이 부여되어 너무나 힘이 들어서 사실상 그만둘 생각도 여러 번 했었습니다. 하지만 견뎌냈습니다. 경남도립미술관 개관과 대구미술관 개관 업무를 해왔던 기획력과 행정력과 저의 끈기와 독립된 성격이 버티게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구시에서 이런 저를 염두에 두고 발전소로 제안을 해온 것 같았습니다.”

발전소는 2010년 4월 기본 및 실시설계를 시작해 2011년 1월 공사를 착공해 2012년 8월에 대구예술발전소라는 명칭으로 개관했다. 김 큐레이터는 “전문큐레이터가 지금은 1명이 더 늘었지만 당시에는 혼자뿐이었다” 며 “발전소 건립이 국·시비 매칭사업이었는데, 혼자 유일하게 발전소에 남아서 그 큰 예산업무를 다 해야 했다. 힘든 대신에 보통 큐레이터가 경험할 수 없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으니, 얻은 것도 매우 컸다”며 회상했다.

◇대구예술발전소 개관 후 지금까지 총괄 큐레이터로 활동

대구예술발전소는 1920년대 금정(현 태평로)에 건립된 국내 최초 연초제조창이면서 대구원도심의 다양한 민간건물, 상업건물, 종교건물, 교육시설들과 함께 거의 유일한 산업 유산으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장소다. 1950년대 후반 한국전쟁 이재민 수용소로 이용되기도 하며 해방 뒤 한국담배인삼공사가 직영으로 운영하다가 1996년 폐쇄됐다.

2007년 대구시가 KT&G로부터 별관창고 건물을 기부채납 받고, 이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 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문화예술창작벨트조성’ 시범사업으로 선정되면서 발전소는 본격적으로 문화시설로의 조성이 추진됐다. 2012년 8월 준공된 대구예술발전소는 개관 후 지금까지 창조적 예술활동과 문화산업을 연계해 새로운 실험과 융합의 장으로써 문화를 창조해내는 탈장르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며 다양한 기획들을 펼쳐놓고 있다.

대구예술발전소는 개관전으로 ‘대구예술발전소;수창동에서’를 1,2부로 나눠 2012년 1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성대하게 열었다.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다양하고 실험적인 예술작품 전시, 문화예술인들의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공연과 페스티벌, 그리고 포럼 등을 박영택 경기대 교수가 총괄 감독을 맡고 6명의 기획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당시 예술발전소 전담계가 편성되지 않은 상태였고, 저와 이준욱 큐레이터 두 명이 예술발전소 현장으로 나와 근무하였는데, 업무량이 많아 개관전시를 기획하고 행사를 진행하면서 우리 둘은 밤샘을 밥 먹듯 해야 했어요. 대구시가 그려놓은 밑그림을 바탕으로 개관행사에 걸 맞는 총괄감독과 파트별 기획자를 물색하고 운영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죠.”

◇실험성 짙은 기획으로 예술발전소 조기 정착 노력

예술발전소는 개관 1년 만인 2013년에 세계3대 미디어센터 기관인 독일 ZKM 미디어 뮤지엄과의 상호 문화 교류를 위한 MOU를 체결하고 Better Than Universe 전시를 개최했다. 예술발전소를 개관하고 첫 번째 국제교류였다.

- 이 행사가 장르 융합으로 주목 받았는데요.

“이 행사가 예술발전소가 문화와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장르가 소통하는 문화의 장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어요. 당시 이 행사의 핵심 키워드가 ‘장르 융합’이었습니다. 전시를 하면서 전국에서 지자체 공무원들, 국내외 문화계인사들이 벤치마킹하기 위해 예술발전소를 찾았어요. 장르 융합, 문화 재생에 그들이 관심을 보인 것이죠. 사실상 서 너 달 만에 독일 ZKM과의 행사를 추진하기란 정말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이 행사가 발전소가 자리를 잡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듬해 예술발전소는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을 초대하는 ‘실험적예술프로젝트 SUPER ROMANTICS’을 개최했다. 이 프로그램은 발전소의 연중 기획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2012년부터 시작되어 2015년 까지 4년 동안 실험적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400여명에 달하고 발전소를 다녀간 관람객 수는 30만 명에 이른다.

“실험적예술프로젝트는 발전소의 핵심 전시로써 실험성 짙은 국내외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를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술발전소의 전문큐레이터는 김 큐레이터를 포함해 2명이다. 이는 예술발전소의 열악한 민낯이다. 하지만 새로운 실험과 융합의 장으로서 문화를 창조해내는 탈장르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했던 예술발전소는 개관 후 짧은 시간에 정체성을 확립하며 빠르게 정착했다. 김 큐레이터는 그 중심에 있었다. 김 큐레이터는 예술발전소의 터줏대감으로, 개관 준비부터 개관 후 지금까지 총괄 큐레이터로 7년 동안 예술발전소를 지켜왔다. 예술발전소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김 큐레이터가 예술발전소 기획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기획은 신진 예술가들을 위한 공모사업인 ‘텐 토픽 프로젝트’다. 김 큐레이터는 이 프로젝트를 입주공간과 전시공간으로 분리된 예술발전소의 특성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주목했다.

“예술발전소의 실험성을 배가시키는 공간이 입주공간이라고 봤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입주해 개인 혹은 팀을 이뤄서 작업을 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텐 토픽 프로젝트’의 전 과정이야말로 매우 실험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이어서 발전소와 잘 맞았습니다.”

◇ ‘텐 토픽 프로젝트’ 통해 작가 중심 구현

‘텐 토픽 프로젝트’는 무용, 음악 등의 공연 예술분야와 평면, 설치, 미디어 등의 시각 예술분야에서 활동 중인 신진 예술가들을 공모로 선정해 진행하는 입주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입주기간 소통과 협업을 통한 실험의 장을 펼친다. 지난 3년 동안 배출된 작가는 총 79팀 156명이며, 그중 공연예술이 23팀 76명, 시각예술이 53팀 69명, 다원예술 3팀 11명이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텐 토픽 프로젝트’의 핵심 구성이다. 이 프로그램은 평소 대구에서 만나기 어려운 유명 문화예술인 혹은 평론, 미학자, 공연안무가 등의 이론가들을 입주 작가들의 멘토로 초대해 작가들에게 조언하고, 교류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역의 젊은 작가들이 국내 유수의 문화계 리더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들의 멘토링을 통해 실력도 향상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주 작가 지원 프로그램에서 김 큐레이터가 여타 입주 레지던시와 차별화한 것은 시각예술가들과 공연예술가들을 같은 공간에 입주시키고, 협업하는 합동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입주해 있는 시각예술분야 작가와 공연분야 예술가들이 협업해 작품을 함께 만들고 발표하는 구성으로, 작가들 스스로 타 분야와 협업하는 국내 유일의 입주 프로그램이다.

- 작가들의 반응이 좋을 것 같은데요.

“서로 다른 장르의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들의 예술적 지평을 확장하고, 창작 의욕을 고취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에서 작가지원이 늘고 있습니다. 작가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반증이겠지요.”

김 큐레이터는 입주 레지던시에 오픈 스튜디오 제도를 제안했다. 작가들이 입주해 있는 공간을 관람객에게 오픈해 작가와 관람객의 소통을 늘린 것. 시행 초기에는 매일 개방으로 가닥을 잡았다가, 작업 방해 등의 문제로 관람객이 많은 토요일과 일요일 개방으로 제한해 운영하고 있다.

- 오픈 스튜디오에 어떤 효과를 기대한 것입니까?

“작가들에게는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관람객에게는 입주 작가가 작업하는 공간과 작업과정이라는 색다른 경험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예술을 보다 쉽고 친근하게 접근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십년 넘게 공공 기관에 몸담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기획들을 선보여 온 김 큐레이터가 가장 아쉬워하는 분야는 ‘기획자 양성’이다. 평소 발전소와 미술관에서 배출된 인턴이나 제자들을 대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한다.

“큰 기획을 하려면 기획자들이 예산 다루는 법까지 알아야 하는데 유명 기획자들도 잘 모르고 있어 전문가와 행정가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사례들을 많이 봅니다. 폭넓은 경험과 능력을 갖춘 좋은 기획자를 양성하는 일은 대구 문화의 중심을 잡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제는 기획자들도 미술과 음악 등 본인의 전문 분야 외에도 다양한 능력을 키워야 할 때라고 봅니다.”

김 큐레이터는 소신 있는 기획자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왔다. 특히 학연과 지연 등의 고질적인 연결고리의 병폐로부터 자유롭고자 노력했다. 권위적인 대구 문화에서 그런 태도는 사실상 득보다 실이 더 클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녀는 담담했다. “유독 예술계가 학연, 지연에 연연해하지요. 유명 컬렉터나 유명 작가 혹은 무슨 관장 등 누구를 잘 알고 있다거나 자기 뒤에 누가 있다는 식으로 거들먹거리는 작가나 기획자들을 만나면 상대하기가 싫어집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생명력이 길지 않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오직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야 기관도, 개인도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김 큐레이터에게 발전소의 방향성을 물었다.

“올해 대구시가 순수문화예술 분야에 과감한 예산 투자로 지난해보다 22.9% 증가한 961억원을 편성했습니다. 대구예술발전소 근처 舊 KT&G 사택 2개동도 올해 30억 원을 투입해 예술창작거점으로 조성할 계획이어서 앞으로 좋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향후 발전소가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효율적인 운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에서 직접 관리하는 사업소 형태가 지속돼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관리나 예산 면에서 직접 관리가 필요합니다. 지금껏 저를 비롯한 시 소속 공무원 및 전문가들이 잘 운영해 왔듯이 앞으로도 우리 대구시에서 직접 관리하며 예산, 인력 등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시고 지원해준다면 국내 유일의 대구예술발전소는 명실상부 국내 제일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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