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 뒤의 단맛과 쓴맛
친절 뒤의 단맛과 쓴맛
  • 승인 2016.01.1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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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은, 무조건반사처럼 당연한 반응이리라. 친절을 베풀었을 때도,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에 가슴이 뿌듯하고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친절을 베풀고도 그 뒷맛이 몹시 개운하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 친절을 베푼 뒤의 두 가지 사례를 비교해보자.

먼저, 작은 친절에도 크게 고마워하는 상대방으로 인해 기분이 매우 좋았던 일이다.

열차를 기다리는 부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KTX 역사에는 열차를 타기 위해 선로 주변에서 대기하는 부스가 있다. 투명한 재질의 직육면체로 열차가 도착하기 전에 잠시나마 찬바람이나 뙤약볕을 피할 수도 있고, 의자에 앉아 TV나 잡지를 볼 수도 있는 요긴한 쉼터다.

그날따라 열차시각보다 한참이나 일찍 도착을 했다. 부스에는 필자가 탈 열차보다 앞 시간의 손님이 대부분인 듯 선 채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TV 바로 앞 기다란 의자의 끄트머리에 빈자리가 있기에 엉덩이를 슬쩍 걸쳐놓았다. 그리고 TV 자막과 스마트폰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옆에 앉은 젊은 남녀가 팔짱을 끼고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잠시 후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남녀가 동시에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방금 편의점에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음료수 병이 그대로 있었다. 고개를 들어 젊은이들을 불렀다.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잘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아, 엉거주춤 일어나 옷소매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음료수 병을 내밀었다.

활짝 웃으며 동시에 고맙다고 합창을 하는 남녀가 얼마나 듬직하게 보이는지. 나가던 몸을 반쯤 돌려세워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라고 큰 소리로 덕담까지 해주니, 고마운 쪽은 오히려 필자인 것 같았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기까지, 아니 온 하루가 정말 즐거워질 것처럼 어깨가 가벼워졌다.

다음은 친절을 베풀고도 모래알을 씹은 듯 뒷맛이 언짢았던 일이다.

아파트 지하의 마트 입구에는 현금지급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중 기계에서 ‘빽빽’하는 경고신호가 울렸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앞의 손님이 카드만 빼고 현금은 그대로 둔 채 자리를 뜬 것이었다.

기계가 작동을 멈추기 전에 얼른 현금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보았던 중년의 남성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일언반구 말도 없이 빼앗다시피 돈을 챙겨 다른 곳으로 향하는 뒷모습이라니. 마치 ‘내 돈을 왜 당신이 갖고 있느냐’며 따지듯 일그러진 표정에, 기가 막히고 황당하여 내민 손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예상 밖의 생뚱맞은 반응에 터무니없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혹시 잘못 전해준 것은 아니었는지? 또는 카드를 우연히 주웠거나 남의 것을 슬쩍한 경우였다면? 공중전화부스나 현금지급기 앞에서 다른 사람의 지갑이나 휴대폰을 발견했을 때도 절대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말이, 공연히 떠도는 유언비어는 아닌 성 싶었다.

경황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며 이해를 하자고 마음을 달랬다. 몹시 내성적인 성격으로 표현이 서툴러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설혹 그렇다하더라도 표정이나 몸짓은 절로 우러나는 것이라 싶으니, 뒷맛이 더욱 찜찜했다.

그래, 표현을 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몸에 배지 않아 어색한 말이나 행동도, 연습을 하다보면 습관이 될 수 있다.

나폴레옹은 ‘습관의 씨를 뿌리면, 운명의 열매를 맺는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도 ‘행동은 습관을 만들며, 습관은 인격을 형성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이는 ‘습관은 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강력한 힘’이라고도 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희망과 꿈을 다짐하는 새해다. 크고 작은 계획들 앞에, 한 가닥 감성적인 표현도 실천해보자. 작은 일에도 감사의 뜻을 표현할 줄 아는 건전한 습관이야말로, 주변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긍정의 씨앗이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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