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다움과 교육
사람다움과 교육
  • 승인 2016.01.1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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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규
경북대 교수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는 높지만, 사람다움에 대한 생각은 극히 피상적이다. 앞에 쓴 글에서 인성교육이 사람다움의 개념을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막연히 상정하고 있다고 지적하였거니와, 이처럼 사람다움에 대한 생각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 인성교육이 제대로 시행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람다움에 대한 규정은 시대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져왔다. 근대초기 사상가였던 이광수에게 있어서 강조점은 ‘감정의 해방’이었다. 그가 보기에, 당시 조선 사회는 봉건체제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세 요소, 즉 지·정·의 중 두 번째 요소인 감정이 억압됨으로써 사람다움이 발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광수의 소설 ‘무정’이 자유연애를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감정을 해방함으로써 사람다움을 구현하고자 하는 기획이었던 셈이다.

사람다움의 교육에 대한 규정도 시대에 따라 달랐다. ‘무정’은 근대교육이 사람다움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하였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장면을 보여준다.

근대교육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자연인인 한 개체를 지식을 갖춘 사람으로 계몽하는 것이었다. 그 시대가 요청한 사람다움이란 근대의 지식과 기술을 갖추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근대의 지식과 기술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야만의 상태에 있으며, 따라서 사람다움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민족을 계몽하기 위해 문명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주인공들의 포부는 이 시기 사람다움의 이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다움이란 무엇일까? 최근 출간된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저자인 김현경은 사람다움을 ‘성원권’과 관련지어 논의하고 있다.

즉,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공동체 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으로,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이는 취업을 성원권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하지 못한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그의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는 부모가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아들은 그 가족 내에서 사람다움을 상실하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사람다움의 개념이 실행된다.

또 어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사람다움 여부와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어떤 회사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면서,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의사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하자. 이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는 회사 안에서 사람다움을 상실한다. 여기에도 사람다움의 개념이 실행된다.

이처럼 사람다움은 보편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회가 한 개체로서의 인간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조건으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각 사회마다, 각 시대마다 그 내용을 달리하는 것이다.

사람다움은 본질적으로 규정되는 개념도 아니다. 한 사회가 어떤 이유로 한 개체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같은 이유로 다른 개체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된다.

여기에는 선택과 배제의 논리가 작동된다. 어떤 이에게는 사람다움이 자연스럽게 주어지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성원권을 얻지 못한 사람은 고단한 인정투쟁을 견뎌내야 할 수도 있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사람다움은 어떤 방식으로 실행되고 있을까?

성적을 올리는 것, 특정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가 된 학교에서 학생들의 사람다움은 성적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성적은 사람다움을 결정하는 최종 심급의 기준이 된다.

사람다움의 교육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 사회 전반, 그리고 학교와 가정의 모든 상황에서 촘촘하게 실행되고 있다.

교육당국이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하여 인성교육을 하겠다고 나섰다면, 이런 방식으로 실행되고 있는 사람다움의 교육 전반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적절히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현실 세계와의 연관을 잃고 표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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