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류
역류
  • 승인 2016.01.1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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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락 수필가
신통찮게 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 하필이면 연말연시에 이 무슨 가혹함인가. 처음엔 잠시 거쳐 가는 감기쯤으로 알았다. 그런데 갈수록 예사롭지 않은 기침에 몇몇 의원을 전전해도 도무지 나을 기미가 없다. 마침내 집사람이 수소문해본 바, 다른 한 동네 의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번 의사와 간호사만 봐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고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디가 어떻습니까?” “기침이 한 달이나 지나도 잘 낫지를 않습니다.” 어젯밤에도 심한 기침으로 잠을 설쳤다. 한번 시작하면 혼을 다 빼놓는다. 혹여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또 밥을 먹다가도 실수를 할까 두렵다. 포근한 잠자리가 힘든 잠자리로 변한지 오래이다. 잠이 깨면 다시 잠이 드는데도 생고생을 한다. 새삼 아무 탈 없이 활동하는 사람이 부럽다. “자, 혀를 쑤욱 내밀어 보세요.” 진료 방법부터 달랐다. 환자 말만 듣고 약 처방전을 받아오는 게 전례였다면, 이곳 의사는 잘 경청하며 진중하게 대해주었다.

“역류성 후두염입니다. 여기 사진을 보세요.” 모니터에 비친 나의 불그스레한 기도, 그중 희부연 게 염증이란다. 뚜렷이 보였다. 그게 나를 이토록 괴롭힌 것이다.

한편 속에서는 얼마나 저들끼리 치열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단 후련하다. 병명을 알았으니 안도가 되었다. 자신감부터 생긴다. 이 의원은 이래서 환자가 많구나! 요즘 개원 후 문 닫는 곳이 부지기수라고 하는데 환자 없다고 하소연할 일이 아니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앉아서 환자를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지, 난 혼자서 중얼댄다.

어릴 적 홍수로 집안 마루까지 물이 차 오는걸 봐 왔다. 그게 바로 역류현상이다. 문명이 진보하고 순류를 해도 가당찮을 이 시국에 안도하거나 역류하면 패하기 일보 직전 아닐까. 문득 의사한테 불만의 화살이 날아간다. 한 달이나 기침으로 고생한 것이 모두 안일함인 것 같아 화가 치민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병만 더 키운 셈이다. 귀한 시간, 말도 제대로 못하고 고통 속에서 보냈다는 게 야속하기 그지없다. 살펴보면 세상사 역류하고 있는 게 너무 많다. 쉽게 갈 길을 자꾸 거슬러 가고 있는 탓이다. 정치가 그렇고 인심이 그러하여 피로감만 더 쌓인다.

역류의 여파가 생각보다 힘들고 세었다. 졸도라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심한 기침을 하면서 정신을 잃었던 게 몇 번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와중에 목욕을 하면 좀 나으려나 싶어 온천을 찾았던 게 화근이다. 샤워장에서 양치질하다가 쓰러지고 만 것이다. 오랜 기침을 참지 못하고 이내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게 바로 죽음의 문턱이었을까. 마침 옆 사람이 부축해주어 깨어나긴 했지만,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은 순간이었다.

이상하게도 아내와 동시에 그 병이 왔다. 다행히 전염병은 아니라고 한다. 필시 음식을 잘 못 먹었거나 무언가 역행하였음이 틀림없다. 아내더러 한번 유추해 보자고 했다. 더 확대하기 귀찮은 아내는 우연으로 돌리고 만다.

인정하거나 현실과 타협하기 싫은 탓이다. 하지만, 원인이 있을 게 분명하다. 아마도 일반으로서 그걸 밝혀내면 대단한 발견이 되리라. 하긴 이 시점에서 삶을 한 번 쉬어가거나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계시 인지도 모르겠다.

연어는 그 험하고 먼 바다를 헤엄쳐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투 끝에 알을 낳고 번식의 의무를 다한다. 비로소 거룩하게 생을 마감하지 않던가. 그렇게까지 눈물겨운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나 자신에만은 충실했어야 했다. 이번에 필시 내 속은 골병이 들었던 게다.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먹지 말라는 것, 하지 말라는 것을 유독 골라가면서 마침내 도를 넘은 것이다. 오히려 더 큰 일을 막아 준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모름지기 우리 살면서 얼마나 많은 역행을 하는가. 벌을 내린 것이다. 자연을 파괴하니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해치는 일을 서슴지 않으니 건강이 악화되는 건 당연하다. 백 세 인생이 되었다지만, 과연 순류하면서 보람되게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저 혼자 잘 먹고 잘살려고 하다가는 곧 엇길로 빠지고 만다. 한해의 시작이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역류하는 삶을 살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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