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사는 법
나답게 사는 법
  • 승인 2016.01.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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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자연 요리연구가
새해라는 보자기를 헐어 놓기 무섭게 한주가 휙 빠져 달아났다. 오는 것은 부산스럽게 와도 가는 것은 잠시다.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이즈음 서로 계획을 묻기도 하고 부질없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아울러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누가 올해 계획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난 늘 같은 대답을 한다. ‘무계획이 곧 계획이라고’ 달리 새롭게 세울 계획도 없지만 살아보니 그 날 하루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 계획 없이도 맞춤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오십을 넘고서야 알았다. 벽에다 써 붙이지 않아도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일이 있다. 그 일을 무심히 하다 보면 묵은해나 새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새해라고 더 잘해야지 하는 맹세도 거창한 구호도 필요 없다. 묵은해에 미뤄 둔 일이 없고, 새해에 할 일이 주어져 있다면 그만만 해도 잘 산 거다. 물어볼 것도 없이 득 본 인생이다.

충만함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혼자 일하다 보면 크게 바라지 않아도 저절로 와 쌓이는 것이 있다. 대부분 먼지같이 소소한 것들이지만 그 가치를 알아가는 것이 충만함과 친해지는 길이다.

새해인사로 지인이 섬진강 매화 중에 가장 먼저 핀다는 소학정 매화가 피었노라 안부를 전한다.’벌써‘하는 마음에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굽은 등걸에 한두 개 핀 것이 아니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제법 무리 지어 피었다. 음력 섣달에 매화라니. 겨울에 꽃을 만나니 반갑기는 해도 물색없이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봐도 매화답지 못하다. 보통은 이르게 핀 몇 송이가 서설을 머리에 이고 추운 겨울바람을 견딘 모습이라야 진정한 매화의 자태인데 푸근하기 짝이 없어 뵈는 매화는 영 생뚱맞아 보인다. 꽃도 때를 거스르니 가히 꽃답지 못하고 어여쁘지 않다.

연일 이상기후에 대한 뉴스가 줄을 잇는다. 베를린에 벚꽃이 만발했다고 하더니 뉴욕 길거리에 장미가 피었다는 소식도 해외토픽에 오르내린다. 유럽에는 홍수가 나고 날씨가 겨울답지 않으니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정취도 사라졌다고 한다. 국내는 얼음이 얼지 않아 축제를 취소하고 겨울 방한용품이 재고로 쌓이고 있다. 기상청 예보로는 1월 한 달간의 기온이 평년보다 높겠다고 하니 겨울에 심어 초여름에 수확하는 양파나 마늘이 또 웃자라 걱정이겠다. 노력은 사람이 하지만 그다음에는 자연이 도와야 사람살이가 풍요로워지는데 세상도 각박한데 날씨마저 야속하다.

아무리 날씨가 겨울답지 않아도 할 일은 해야 하는 법. 부지런히 고두밥을 찌고 말린다. 흑미를 불렸다 찜 솥에 쪄낸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낮에는 볕이 나야 고슬고슬 제대로 마르는데 날씨가 영 도와주지 않는다. 밤사이 마당에 내놓고 얼렸다가 녹였다 하며 말려야 고두밥에 실금이 가고 그렇게 균열을 품은 고두밥이라야 불에 올려 튀기면 곱게 꽃이 핀다. 대충 찌고 말려서는 튀밥이 곱게 일지 않는다. 나만 부지런히 움직여도 안 될 일이고 쨍한 겨울 날씨가 도와줘야 제대로 된 음식을 만질 수 있는데 봄날 같은 겨울이라니 근심이 아닐 수 없다.

겨울의 품에서 다시 봄이 시작되는 줄 알았더니 봄 같은 겨울이 내내 이 모양으로 봄을 맞을 태세다. 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날씨지만 어쩌겠는가. 자연에 기대 사는 처지로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넘치면 또 재빨리 퍼내며 살아야 옳다. 날씨를 거스를 수 없으니 주어진 온도에 맞춰 일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날씨 좋을 때보다 좀 더 수고스럽고 귀찮겠지만,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기(技)와 술(術)을 바탕으로 몸으로 일하는 사람은 언제나 주어진 환경보다 불시에 처할 환경에 더 민감해야 한다. 앞으로 지구의 환경을 보면 나날이 겨울이 따뜻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 올 해의 날씨가 나에게는 대응능력을 길러주는 약(藥) 아니겠는가. 기후변화에 발맞춰 내 음식도 새롭게 진화함이 마땅하다. 그러니 널뛰듯이 달라지는 날씨도 공손한 마음으로 맞고 보내야 한다.

세상은 늘 변하게 마련이다. 그 무엇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진화한다. 변화의 물꼬는 짐작하는 쪽 보다 예측할 수 없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불시의 상황에 맞는 행동이나 결단력이 준비되어 있다면 분명 미래는 든든하다. 상대보다는 나 자신과 먼저 타협하고 스스로의 목소리에 힘을 낼 수 있다면 이것이 곧 나다워지는 길이다. 봄처럼 따뜻한 겨울에게 묻는다. ‘부디 겨울다워질 수는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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