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의 봄
겨울 속의 봄
  • 승인 2016.01.1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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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대진초등학교 교장
굿네이버스 글로벌 시민학교 전문위원들이 봉사활동 떠날 날이 가까워졌다. 살면서 누군가를 위해 내 여력을 보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져 축복받은 봄날을 사는 것만 같다.

축복의 날 D- Day 일주일 전. 예방주사부터 맞아야 한다. 오늘도 대구의 아침은 영하 4도라 한다. 이 추위 속에서 열대지방 라오스에서 생길 파상풍을 염려하며 동네 병원에서 예방 주사를 맞았다. 말라리아 예방약은 처방전을 가지고 대학병원 근처 약국을 뒤져야 한단다. 집에서 가까운 G대병원 앞 약국 너뎃 곳을 돌아봤는데 ‘처방전 내어 준 근처 약국에 가서 사라’‘주문해둘 테니 나중에 찾으러 오라.’등의 반응이었다. 특수 약이라서 일반 약국에서 취급하지 않는 모양이다.

돌아돌아 Y대병원 앞 약국까지 갔다. 도로변에 <봄약국> 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약국 이름이 봄이라?’수성구 대백 프라자 옆에 있는 <봄날> 카페가 떠오른다. 따스한 기운을 품고 있는 그녀가 운영하는 찻집이라 글 쓰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그래, 카페라면 모를까. 악국 이름이 봄이라니’궁시렁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진열장에 진열되어 있는 약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없을 것만 같다. 되돌아 나갈까?’싶지만 처방전을 내밀어보였다. 안경 낀 청년 약사의 가느다란 눈이 전형적 샌님처럼 보이는데 “어디로 가십니까?”묻는다. “라오스로 봉사활동 가는데요. 이‘라리암’예방약 구할 수 있나요?” “저도 라오스 봉사활동 갔다 왔어요. 이 약 구해서 배달해드릴까요?” 여기서 우리 집이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도 배달해주려나 싶어 주소를 말해보았다. “아, 여기 알아요. 일주일 전에도 이쪽 동네에 배달 갔어요” 하며 저녁 9시에 배달해주겠단다.‘약국에서 배달까지?’ 치킨도 아니고 짜장면도 아닌 말라리아 예방약 라리암을? 약값도 얼마 안 되는데.

나오려다 너무도 신통방통하여 앞 진열대 위에 놓인 명함을 집어 들고 이름을 읽어보았다. 「봄약국 대표약사 신00」 혼자 운영하는 것 같은데도 대표라는 말에 의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다. 호감 탓일까? 젊은 약사의 인격을 더 무게 있게 느껴지게 한다.

돌아와 기다렸다. 그는 저녁 9시에 정확하게 우리 집 벨을 눌렀다. 약을 전해주고 총총 돌아서는 바람에 고맙다는 인사도 정중하게 하지 못했다. 약 봉투를 열어보니 라리암정과 쿠이피자 과자 2개가 애교스럽게 담겨있다.‘참,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약 봉투 겉면에는 떠나기 전 일주일, 떠나는 날, 다녀와서 일주일 후. 등, 약 먹는 시일을 정확하게 적어두었고 봉사활동 잘 다녀오시라는 메모도 적혀 있었다.‘정체성 없이 쉽게쉽게 살려는 젊은이답지 않다.‘그깟 푼돈 안 벌고 말지’하며 손님을 내칠 수도 있었는데 영하의 추위 속에 이 먼 곳까지 배달해주는 성의를 다하는 이런 자세로 손님을 맞는다면 머지않아 번창하리라.

하지만, 그는 번창을 꿈꾸는 약사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천성적인 사람됨의 향기를 맡으며 약국 이름 <봄>의 이미지를 곱씹어 보았다.

불의 옛말 ‘블(火)’과 오다의 명사형인 ‘옴(來)’을 합쳐 ‘블+옴’이 되고 ‘ㄹ’이 떨어져 ‘봄’이 되어 따스한 불의 온기를 뜻한다는 어원으로 미루어봐도 ‘봄’ 약국은 그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보다(見)가 명사형 ‘봄’으로 바꿔어 새 움 돋는 기운을 본다는 뜻이나 튕겨 오르는 용수철을 근거로 붙여진 영어권에서의 Spring(봄)과도 같은 뜻으로 봐도 그렇다.

봉사활동을 다녀왔다는 그 한마디로 미루어봐도 그는 온 들판, 온 사회를 초록 희망으로 물들이는 싱싱한 젊음이요. 삭막한 세상에서 이다지도 아름답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젊음이 있다는 사실에 이 나라 젊은이들을 다시금 우러러보게 된다.

따스한 온기와 신선한 공기로 느껴지는 맑은 영혼의 그가 운영하는 약국은 번창하리라. 앞으로 그가 만들어 낼‘봄’도 따스한 사랑 가득한 약국으로 널리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그의 행함을 닮고자 하는 이들로 이 사회 한 귀퉁이가 조금씩 아름다워져 가리라. 그를 대한민국 대표 약사로 추천하며 그의 넉넉하고 온화한 인격에 갈채를 보낸다.

그리고, 우선 나부터 주위사람들에게 이같이 친절과 정성을 쏟는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배움으로 스스로를 정화시키며 봉사활동 갈 배낭을 멘다. 그에게서 배운, 사람 따스하게 대하는 봄을 라오스에 가서부터 뿌리고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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